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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원 Dec 18. 2020

예고 없이 찾아온 기별

소담스럽게 매달려 있는 담쟁이, 사랑을 품고 있나 보구나.


이 지경이 된 것은 모두 나의 망상 때문일까? 평화로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그에게서 어색하고 소원한 기운이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침에는 잘 잤는지, 점심에는 맛있는 식사를 했는지, 오후 6시에는 퇴근한다며 매일 연락하던 다정한 그였다.  


그래, 다시 생각해봐도 어느 날부터 연락이 뜸해진 게 확실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느라 데이트가 미뤄지는 날이 자주 생겼다. 일과 관련된 미팅이려니 크게 마음에 두진 않았다.


왜 하필 편안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지금, 그는 저 멀리 있다고 느껴지는 걸까? 옛 연인 그녀가 다시 나타난 걸까? 아니면 새로운 누군가 그의 삶에 등장한 걸까?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급기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상상으로 여러 밤을 뒤척였다.


“최근 들어 많은 생각을 해봤어.

네가 나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하겠다며,

몇 번씩 사랑하냐고 물어보고 확인하는 것이 반복되었을 때,

문득 이 사랑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고 싶어 졌어.


네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 때문일까.

확실히 바빠지고, 그 이유로 표현을 적게 하고 있어서 그렇겠지.

그런데 나는 왜 예전보다 표현을 적게 하고 있을까?

단순히 바빠져서 일까, 다른 이유가 있을까?


같이 있을 때, 떨어져 있을 때, 통화할 때, 톡 보낼 때, 톡 안 보낼 때,

그때마다 나는 어떤 경험을 하고,

그때마다 너는 어떤 경험을 할까?


틈틈이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했어.

아무 일 없는 거냐고 물어볼 때마다,

아무 일 없다고 답했는데,

결론을 내지 못해서였어.

스스로도 많이 혼란스러웠고.

미안해.


다만 지금 내린 결론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시간이 필요하겠다 라는 거야.

잠시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

서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 경험, 생각을 각자 느껴보면 어떨까 싶어.


애매할지도 모를 이런 결론이 싫다면,

헤어지는 걸로 생각해도 돼.

너라면 그렇게 확실히 하고 싶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것도 감수하고 있어.

내일 만나서 이 말을 하려고 했어."



평화로운 오후 2시. 내일 그를 만날 생각-아무 일 없는 듯 그의 품에서 순진한 아이처럼 행복하게-  한가로운 시간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연락에 나의 평화는 산산이 부서졌다. 첫 구절을 읽자마자 순간적으로 지독한 독감에 걸린 것처럼 몸이 덜덜 떨렸다.


“많은 생각을 했군요. 바빴을 텐데...

 당신을 힘들게 했네. 미안해요.


당신의 사랑을 느끼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

몇 번씩 사랑하냐고 물어보는 건.

달달하고 싶은 바람 때문이었어요.

연인인데, 부부처럼 무덤덤한 게,

신이 안 나서 그랬어요.


이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싶다는 게..

무엇일까, 염려가 앞서네요.

하지만 긴 문장 속에서 당신의 사랑을 읽었어요.

사랑하기에 우리 관계에 더 생각하고 싶은 거죠?

나도 궁금하긴 해요.

왜 예전보다 표현을 적게 하고 있을까?

단순히 바빠져서 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나의 성향이 부담을 줘서인지,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게 있는지,

당신의 본마음이 뭔지는 정말 알고 싶어요.


'같이 있을 때, 떨어져 있을 때, 통화할 때, 톡 보낼 때, 톡 안 보낼 때

그때마다 나는 어떤 경험을 하고,

그때마다 너는 어떤 경험을 할까..'


나도 그 부분을 나누고 싶었는데 먼저 말해줘서 고마워요.


난 같이 있을 때 너무 좋아서 헤어지는 게 두려워요.

떨어져 있을 때,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으로 안절부절못하죠.

통화할 때, 길게 대화하고 싶지만,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톡을 받으면 내용을 쓰고 있을 당신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좋고,

톡이 오지 않으면 궁금해서 미칠 거 같아요.

단순하죠?


아무 일 없는 거냐고 물어본 건,

조금 불안감이 느껴져서 그랬지.

당신의 사랑을 확인하려 한 건 아니에요.

당신의 마음을 알고 보니 조금 더 선명하게 우리의 상황이 그려지네요.

그저 당신이 혼란스러워서 그랬던 거군요.


잠시 시간을 갖고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

서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 경험, 생각을 각자 느껴보는 게,

확실히 도전이 되겠네요.


난 처음 당신을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생각이 바뀐 게 없어요.

그래서 헤어질 생각은 안 해요.


하지만 사랑은 그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가장 순수하고 신성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극히 자연스럽고,

나도 모르게 이유 없이 뜨거워지는 거라서.


음, 사랑은 억지로 하는 게 아니니까, 뭐가 되었든  당신의 의견을 존중해요.



무너지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풀을 메겨 까슬한 면 이불이 변해버린 그의 모습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나의 온기로 녹이고 싶었다. 온몸으로 꼭 끌어안고 울고 잠들고 다시 울고 잠들기를 반복했다.


어서 내일이 되어 그를 만나고 싶다. 그의 마음을 듣게 되겠지. 그게 뭐든 상관없이 그의 눈을 들여다보고 싶다. 나의 눈을 바라보는 그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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