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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원 Dec 20. 2020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

마지막 뒤안길이 된 그 날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  불타오르는 것은 나의 심장만이 아니었구나.

 

2주 동안 식이요법을 진행한 그는 2Kg 정도 빠진 듯해 보였다. 푸근한 느낌에 샤프함이 더해졌다.  긴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달라진 모습에 가슴이 뛰었다. 도전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는 그가 새롭게 느껴져서 일까? 떨리는 마음을 숨긴 채, 편안하게 안부를 묻고는 덤덤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사랑을 확인하는 나의 반복적인 질문으로  우리 관계에 고민할 기점을 가졌다고 했다. 사랑인지 아닌지, 만남을 지속해야 하는지 그만둬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 잠시 떨어져 있자.’였다.


지난 일 년 동안 서로 사랑한 것을 우린 인정했다. 그는 행복한 순간이 있었지만 그동안 만난 그녀들과는 많이 달라 도전도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게 스트레스는 아니었다고. 지금 내린 결론이 나의 탓은 아니라고 다정하게 말했다.


“우리의 내부 혹은 외부의 문제가 영향을 준 것은 아니야.”


이렇게 말하는 그의 눈에서 진실이 보였다. ‘나의 염려와 상상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구나.’ 안도감이 가슴을 쓸며 훅 지나갔다. 그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 앞으로 만날 마지막 여자로, 너만을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그의 남은 인생에  내가 유일한 사랑이 맞는지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질문과 갈등이 타당하게 들렸다.


천천히 우리의 사랑을 한 번 들여다보라고. 나에게도 소중한 시간이 될 거라는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사려 깊고 책임감 있게 보였다.


오직 그만을 바라보며 헌신한 슬픈 사랑이라고 혼자 아파했다. 하지만 그처럼 이성과 성찰의 시간이 내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힘이 났다. 살며시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그의 말이 또렷이 잘 들렸다.


“자유롭게 한 두 달 지내다 보면 알 게 되겠지.”


이 말을 내뱉는 그는 정말 자유로워 보였다. 조용하면서 따뜻했고, 그 안에 강함과 명확함까지 느껴졌다.


혼자 있으면 자유보단 외로움이 더 크게 느껴졌고, 연애가 구속보다는 안정을 준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만의 틀로 혼자만의 사랑을 만들어 온 게 아닐까? 그의 말대로 서로에게서 떨어져 있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겠지. 아마도 그때가 되면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빠, 예전에 우리 언니가 프러포즈받은 스토리 들려준 거, 생각나?

그때, 마저 안 한 얘기가 있어.


2년간 사귀면서, 때론 외롭고 힘들었지만,

“그 사람이 행복하면 좋겠다” 가 진심이었다고 해.

그래서 행여나 헤어지는 걸 선택한다 해도 “그가 행복할 수 있다면 괜찮다”라는 마음으로 급하게 다가가지 않고 기다렸대.


“사랑한다면서 왜 헤어져? 난 헤어지기 싫어.”라고 언니한테 말했지.

“아니야, 너도 정말 사랑하면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줄 거야. 너와 헤어지기 원한다 해도.”


언니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이제 알 것 같아.

그래서인지, 오빠의 얘기가 편안하게 들리네.”


우리가 동료나 친구로 만났더라면. 자연스레 우정이 사랑으로 물들었다면 어땠을까? 처음부터 결혼을 고려하며 맞추려는 모습에, 오히려 서로의 본모습을 보지 못한 게 아니었을까? 


특히 완벽을 추구하는 그에게 도전- 자주 연락하길 바라고, 사랑을 표현하길 원하는 나의 요청- 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해했을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억지로 움직이는 그의 모습에 나 또한 상처 받았다. 결코 충만하지 않은 감정에 쓰린 지난날이 떠올랐다. 억지로 맞지 않는 옷을 애써 끼워 맞춰 입은 것처럼 내 가슴도 옥죄여왔다.


그는 뒤돌아 가는 나를 끝까지 지켜보았다. 이전에는 늘 내가 그의 뒷모습을 봤는데... 이번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뒤안길. 그는 내가 보이지 않는 순간까지 개찰구 너머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배웅에 사랑이 보이지는 않았다. 오로지 친절과 배려 그리고 미안함이 있을 뿐이었다.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몸을 맡기자 서서히 그의 얼굴과 머리칼이 내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마지막 그의 실루엣까지 사라지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몇 개나 지나 보냈는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박원의 Try(노력), 이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하루하루 사랑에서 멀어져 가는 그와 닮아서 그랬던 걸까?  ‘내 연락을 기다리다가 또 잠들겠지’ 가사처럼  ‘잘 자’라는 문자를 받아야 잘 수 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픈 몸을 이끌고 할 일을 끝낼 때처럼’ 자다가 깨서는 졸린 눈을 비비며 굿나이트 인사를 보내고 다시 잠든 그가 그려졌다. 반복되는 노래와 함께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그와 떨어져 있는 두 달 동안 난 어떻게 지내야 할까?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게 무엇인지. 내가 진정 바라는 삶이 뭘까... 찾아야겠지. 이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나다운 것이 뭔지 , 이미 알았어야 했던 나의 본모습깨닫게 될 것이다.


연인관계에서 사랑이 자유와 어우러짐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우고 싶다. 이 여정에서 내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게 되겠지? 자유, 힘, 그리고 내 안의 평정을 갖고 싶다. 더 큰 꿈을 나 자신에게 그려 본다. 상상할 수도 없었던 나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할 지도! 이 모든 영감을 그는 내게 선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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