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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Jul 18. 2022

일하는 엄마의 버티는 시간과 즐거운 시간


마법의 실뭉치 이야기

내가 초등학생 때 교과서에 실린 글이었다. 정확하게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련다.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는 아이에게 도사가 나타나 실뭉치를 쥐어준다. 그 실뭉치는 마법의 실뭉치인데, 실뭉치를 풀 때마다 시간이 훅 지나가 버린다. 아이는 처음에 수업을 듣다가 너무 지루해서 실뭉치를 조금 풀어본다. 바로 쉬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는 점차 수업시간만 지루한 것이 아니라, 공부하고 시험을 치러야 하는 학생인 기간을 쭉 뛰어넘고 싶다. 그래서 실뭉치를 조금 더 풀어본다. 대학생이 된다. 대학생이 된 아이는 군대에 간다. 군대에 가 있는 시간은 끔찍한 시간이니 또 실뭉치를 더 풀어본다. 풀고 나니 제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이는 직장인이 된다. '이 지루한 밥벌이..' 성인이 된 그는 이번엔 좀 더 과감하게 실뭉치를 쭉~ 푼다. 거울을 본 그는 깜짝 놀란다. 이미 백발 머리 노인이 된 자신의 모습에.

어릴 적 교과서에서 본 글들은 휘발성으로 머릿속에서 날아가버리기 마련이다. 마법의 실뭉치 이야기(정확한 원제를 모르겠다.)는 어린 내게 매우 충격적이었는지, 지금까지 종종 생각이 난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보내는 시간을 취사선택할 수 없음을 말한다. 지루하고 버티는 시간은 실뭉치를 풀어 건너뛰어 버리고, 즐거운 시간만 취사선택하다가는 골로 간다는 교훈을 준다.



버티는 시간이 8할, 즐거운 시간이 2할

지금 내 삶에서 실뭉치를 풀어버리고 싶은 '버티는 시간'은 언제이고, 실뭉치를 풀어서 도달하고 싶은 '즐거운 시간'은 언제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버티는 시간'이 80%, '즐거운 시간'이 20% 정도 된다. 버티는 시간은 길기도 하고 종류도 많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시간, 회사에서 업무 보는 시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등. 써놓고 보니 사회인으로서 밥벌이를 하는 시간의 대부분이다. 미친 듯이 괴롭지도 않지만, 견딜만한 정도로 괴롭고 지루한 시간이다. 마법의 실뭉치 이야기 속 주인공은 아마 이런 시간에 실을 풀었나 보다.

반면 즐거운 시간은 비교적 짧고 종류도 단순하다. 즐거운 시간이 내 하루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즐거운 시간은 아무래도 아이들과 살 비비고 상호작용 하는 퇴근 후의 시간이다. 사회인으로서의 나를 내려놓고,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내가 될 때 더욱 나답고 즐겁다고 느낀다. 그리고 더 즐거운 시간(?)은 아이들이 잠든 후 찰나의 자유시간이다. 이 찰나의 자유시간은 아주 감질나게 조금 주어진다. 나는 이 감질나는 시간을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방전된 스마트폰에 충전기를 꽂듯이 나를 충전하는 시간이다.



즐거운 시간이 더욱 즐거우려면

만약 즐거운 시간으로만 내 일상이 꽉꽉 차 있었다면? 즐거운 시간 중 더 즐거운 시간과 덜 즐거운 시간이 있을 테니, 덜 즐거운 시간이 버티는 시간의 자리를 대신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버티는 시간도 즐거운 시간을 빛내주는 중요한 조연의 역할인 셈이다.

그래도 하루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버티는 시간은 마냥 반갑지 않다. 버티는 시간을 우직하게 견뎌내야 한다. 마법의 실뭉치 이야기처럼 버티는 시간에 실뭉치를 풀어버릴 수 없으니, 그 시간을 최대한 덜 고통스럽게 보내야 한다. 버티는 시간이 고통스러우면 즐거운 시간에 악영향을 미친다. 회사에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클 때에는 퇴근 후 아이들과 평소 같은 텐션으로 즐겁게 놀기가 어려웠다.



일하는 엄마로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주연(즐거운 시간)과 조연(버티는 시간)의 밸런스가 깨졌을 때였다. 조연의 비중이 너무 높아져 주연의 비중을 작게 만들거나, 조연의 연기가 너무 발연기라 멱살 잡고 극을 끌고 가는 주연의 연기조차 빛바래게 만드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결국 일하는 엄마로 롱런하기 위해서는 주연과 조연의 밸런스 맞추기를 기가 막히게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멀었지만, 나도 언젠가는 기가 막히는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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