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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Oct 14. 2022

어느 날 나에게 찾아온 가슴통증

22년 초였다. 나는 새로운 팀으로 발령을 받았다. 나의 의지는 아니었다. 새로 온 팀의 주요 미션은 매출/비용/손익관리. 주요 미션을 보면 대충 짐작이 가겠지만, 업무 강도가 세고 끊임없는 경영진 보고를 해야 하는 팀이다. 나는 매출/비용/손익관리 중 비용 관련 일을 하게 되었다. 발령을 받은 연말에 '아 22년 쉽지 않겠는데...' 싶었는데, 혹시가 역시가 되었다.



22년의 중반 무렵에 22년의 초를 되돌아보면,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비용 관련 업무를 수년간 해오던 전임자는 21년 말에 돌연 퇴사를 했다. 21년 말부터 3년 차 사원 A가 업무를 이어받아 2개월 정도 업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A는 21년 12월 새로운 부서로 발령이 난다. (나는 오래도록 A만은 다른 팀을 보내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며 상사들을 좀 원망했다.) 결국 22년 1월에 내가 새로운 팀에서 업무를 하려고 보니 전임자가 아예 없는 상황. 그 상황에서 매주 있는 경영진 보고와 수시보고가 이어졌다.



도저히 업무 처리가 불가능한 환경이어서 팀장님께 말씀드렸다. 비용 관련 일이어서 업무의 정확도가 중요하기에 제대로 업무를 익혀야 했다. 수시로 있는 보고에도 대응하려면 허허벌판인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팀장님, A사원한테 인수인계받을 수 있게끔 A사원네 팀장님한테 업무 협조 좀 구해주실 수 있나요?"

결국 A사원이 근무하는 사옥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출장을 가서 업무를 배우기로 했다. 직장에서는 일을 아는 사람은 갑, 일을 모르는 사람은 을이 되는 법. 8년 차인 나는 4년 차 A사원 앞에서 철저한 을이 되었다. A사원은 본인도 새 팀 업무에 적응해야 한다며 콧대 높게 굴었다. 나는 A사원에게 업무를 많이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에 비위를 맞추느라 애를 먹었다.



그냥 야근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나는 팀장님들끼리 합의한 일주일에 두 번은 공식적인 인수인계 시간이니 근무 시간 내에 인수인계가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A사원은 자신의 일을 느긋하게 처리하고, 근무시간 후에 인수인계를 해주는 것을 선호했다. A사원의 업무 스타일도 느긋한 편이어서 '습관적 야근러'였다. 그래서 나는 A사원의 자리에 가서 하염없이 그녀가 가르쳐줄 때까지 기다리다가 매번 9시 넘어서까지 야근을 하게 되었다.

지속적인 야근은 나의 일상에  지장을 초래했고, 가족들의 희생을 요했다. 내가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있는 동안 양가 부모님이 번갈아 아이들을 늦게까지 돌봐줘야 했다. A사원에게 양해를 구했다.

"A님, 제가 야근을 너무 자주 하다 보니 부모님께 매번 늦게까지 집에서 애들을 봐달라고 부탁해야 해서요... 혹시 인수인계를 근무시간 내에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콧대 높은 A사원의 답변이 돌아왔다.

"가족들이 아이들 봐주고 그냥 야근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야근이 왜 어렵다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A사원의 말에 새 팀에, 새 업무에 적응하고자 노력했던 맥이 탁 풀렸다. A사원은 나보다 나이가   어린 미혼이었다. 나도 미혼이었을 때에는 아이를 키운다는  무엇인지 전혀 몰랐으니 그녀의 마음도 이해해보려 한다.



내 생에 첫 심장초음파

그렇게 22년 초는 새로운 업무에 대한 압박감, A사원을 구슬리고 달래 가며 업무를 배워야 하는 철저한 을의 설움으로 얼룩졌다. 그즈음 나는 회사에만 들어서면 숨이 턱 막히며 가슴이 조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업무를 보다가도 수시로 통증이 와서 화장실에 가서 심호흡하기 일쑤였다. 심호흡을 한다고 증상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며칠 더 지나자 회사에 있는 시간뿐 아니라 집에서도 수시로 왼쪽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심장이 두근거려서 잠을 이루지 못해 하루에 3시간 정도 자고 출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나는 분명 나의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결국 회사 근처의 큰 내과에 가서 심장초음파를 받았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검사 결과는 정상. 의사는 내게 물었다. 약간은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혹시 요즘 스트레스가 심하진 않았나요?"

"회사 관련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했어요."

의사는 내게 신경안정제를 처방해주었고, 약을 먹고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면 다시 찾아오라고 말했다. 그날 저녁 나는 처방받은 신경안정제를 먹었다. 그날 두 달 여만에 처음으로 깊은 숙면을 취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어느 정도 새로운 업무와 새로운 팀에 적응을 했다. 직장에서 일하는 엄마의 애환을 말하자면 구구절절 한 트럭이다. 그만큼 이 사회에 일하는 엄마로서 굳건히 발 디디고 서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삶을 버거워하자 혹자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맷집을 키워야 해." 그 말을 듣고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나의 마음은 살짝 발끈했다. '왜 워킹맘이 맷집을 키우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지? 근본적으로 일하는 엄마들이 버티기 어려운 환경이 문제가 아닌가?' 어찌 되었든 오늘도 버틴다. 내가 버티는 것이 후배들이 일하는 엄마가 되었을 때 힘이 되리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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