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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Oct 13. 2022

죄송한데... 반차 좀 내도 될까요?

회사와 가정 사이 골치 아픈 저울질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생각했다. 아이가 있는 삶과 아이가 없는 삶은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세상이라고. 아이의 존재는 나의 생활패턴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아이가 없던 시절을 어렴풋이 생각하면, 기간은 약 5년 정도 지났는데 마치 전생 같다. 나는 아이가 없는 삶도 살아봤고, 아이가 있는 삶도 살아봤다. 그러나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아이가 있는 삶을 살아보지 않았다. 따라서 아이가 있는 삶을 이해해달라고 강요하거나 보채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아이가 있는 삶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이다.



코로나가 최대 확진자를 찍던 3월. 우리 가족도 코로나를 비켜가지 못했다. 결국 우리 가족은 나→둘째→첫째와 남편 순으로 확진자가 되었고, 회사에도 방침에 따라 일주일간 공가를 냈다. 코로나로 인한 네 식구 격리생활은 매운맛이었다. 코로나에 걸려 몸이 아픈 와중에, 아픈 아이들 둘을 집 안에서만 돌보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공가 일주일이 끝나고, 아직 격리 중인 아이들과 남편만 두고 회사에 왔다. 남편도 몸이 성치 않은 상태에서 홀로 아픈 아이 둘을 돌보는 것이 여간 마음에 무거웠다. 특히 둘째는 열도 많이 오르고 구토와 설사 증세도 있는 상황이었다.



오후 반차 좀 내도 될까요..?

고민하다가 팀의 리더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오후 반차를 내도 되겠냐고 물었다. 답변은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리더 입장에서는 코로나로 일주일을 비워놓고 복귀한 날 오후 반차를 낸다고 한 것이 황당했을 것이다. 리더는 팀을 차질 없이 이끌어야 하는 자리기에 그 답변을 이해한다. 또 평소에 합리적이고 말이 안 통하는 성향은 아니었기에 거절하는 그의 마음도 무거웠으리라 짐작했다.

다만 리더가 아이를 키워 본 경험이 있었다면, 나의 설명에 아마 우리 집의 풍경이 머릿속에 딱 그려졌을 것이다. 그는 40대 초중반의 기혼 무자녀이다. 그는 우리 집의 상황을 심정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와 그는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골치 아픈 저울질

회사생활을 하며 가장 어려운 순간 중 하나다. 회사와 가정 사이에서 저울질해야 하는 순간들. 아이 둘을 키우며 일하다 보면 자꾸만 회사에도 가정에도 미안한 순간들이 생긴다. 팀에 미안함을 무릅쓰고 갑작스러운 연차나 반차를 쓴다고 말해야 하거나, 오늘은 야근이 어렵다고 말하기도 해야 한다. 반대로 가족에게 미안함을 무릅쓰고 등원을 부탁하기도 하고, 오늘은 엄마가 늦으니 아빠랑 밤잠을 자라고 이야기하기도 해야 한다.



최근 몇 년 간 일가정 양립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회사의 육아 관련 제도들도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그 좋은 제도들을 실제로 쓸 수가 없다. 왜냐하면 육아 관련 제도에 대한 심정적 공감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담당 내 구성원들을 간략히 살펴보면 저출산 사회가 비로소 실감 난다. 40명 정원인 담당에 일하는 엄마는 단 4명이고 그중 나만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일하는 아빠들은 일하는 엄마들보단 많으나 다수는 아니다. 초혼연령이 늦어져 30대 후반 또는 40대 초반이어도 미혼인 분들이 많다. 기혼이어도 아이가 없는 분들이 많다.



구성원들이 곧 조직의 문화를 만든다. 구성원들 중 아이가 있는 직원이 많아지지 않는 이상, 앞으로의 내 회사생활은 마음이 부담스러운 순간들이 자꾸 발생할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우리 사회가 아이 낳기 좋은 사회가 되길 바란다. 아이를 낳고 일하는 것에 대한 심정적 공감이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결국은 일하는 엄마들의 회사와 가정 사이의 골치 아픈 저울질이 조금이라도 줄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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