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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페이퍼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지난주 금요일 신흥동 푸른 학교 오 년의 시간에 마침표를 찍었다. 지나고 보니 오 년이란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 처음 이 낯선 공간에 발을 들여놓을 땐 이런 시간이 올까? 싶었는데 결국 오고 말았다. 결국 모든 것은 변하고 변하지 않는다, 라는 사실만 변하지 않는다. 감당하기 벅찬 상황에 휘둘리면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잘 버티었다.


언제 재개발이 될지 모르는 불안함, 힘겹게 4층 계단을 올라오면 삐걱거리는 현관문, 장마철에 비만 오면 교실에 흥건한 빗물, 수업 중에 팍! 팍! 떨어지는 차단기, 5시 이후부터 소란스러워지다가 청소시간에 왁자함의 정점을 찍는 아이들의 비명소리들, 웃다가 울다가 그리고 다시 슬퍼지는 상황들, 한 뼘 영상수업, 오케스트라, 동아리 활동, 인문학 수업, 자치회의, 한 뼘 영상 발표회, 문화제, 제주도 여름캠프, 인천 발 제주행 오하마나호와 세월호의 비극과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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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동 푸른학교를 떠나는 날 선생님과 아이들이 나를 위해 깜짝 송별식을 열어주었다. 감사 편지도 낭독해주고 꽃다발도 주고 여학생 YJ는 용돈을 털어 내가 즐겨 입는 청바지 한벌을 선물해줬다. 아이들이 한자 한자 써준 롤링페이퍼는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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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년 내내 학부모 대표를 맡아서 많은 푸른학교 운영과 아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셨던 D 아버님이 멋진 감사패를 만들어서 오셨다. 학부모에게 감사패를 받을 줄은 감히 상상도 못했다. 너무 기뻤다. 두고 두고 자랑해야지.


이 모든 시간과 장면을 아우르는 4층 어두 컴컴한 복도에 연도별로 전시된 신흥동(중등부)의 빛바랜 페이지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내일이면 볼수 없을 아련한 시간들. 신흥동 푸른 학교에서의 나의 페이지는 2014년 8월에 끝났다. 나는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이 서툴다. 왜냐하면 내 인생에서 그런 일들은 자주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해서 이렇게 묘한 감정들이 낯설게 충돌하는 장면과 직면할 때면 어떤 표정과 몸짓을 해야 할지 모른다.


지난 오 년 동안 신흥동 푸른 학교에서 지낸 시간은 <향기로운 우물> 속의 시간이었다. 우물 속에 가득 숨겨진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나를 거쳐간 칠십여 명의 아이들과 정신과 몸으로 부대끼며 경험했다. 두고두고 꺼내 볼 향기로운 우물 속의 이야기들이 내 안에 가득하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나는 세상 누구보다 부자다. 즐겁고 유쾌했다고만은 할 수 없는 시간들 많았다. 당황스럽기도 했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내준 숙제에 답을 찾지 못해 몇 날 며칠을 밤잠을 설치기도 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지난 오 년은 정말 후회 없는 시간들이었다. 육개월만 버티자. 이년만 더 지내자. 엘리베이터가 없는 계단을 매일 오르내리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힘들거나 고민이 생길 때면 입버릇처럼 되뇌던 다짐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새로운 곳에선 어떤 마음으로 임할까? 또 어떤 동료와,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까? 나는 또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2014.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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