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어머,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요?
사람들이 평소에 나를 바라 보는 두 가지 시선이 있다. 살이 빠졌다는 것과, 착하다는 것. 요즘은 그 빈도가 조금 더 늘었다. '착하다'는 말은 꽤 오래전부터 들었다. 지난 십 년간 나를 거쳐 간 푸른 학교 학생들이 이 말을 들으면 놀라서 뒤로 자빠지겠지만 살이 빠졌다는 말은 하루에 한 번은 듣는다. 내가 봐도 요즘 살이 많이 빠지긴 했다. 일부러 살을 빼는 건 아니다. 일부러 살을 찌우지 않는데 찌듯이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을 사람들은 매번 확인 사살하듯 전해준다.
이쯤 되면 살이 빠졌다는 소리는 꽤나 스트레스다. 살이 빠지는 이유를 알고 있다. 그것은 내 몸의 내적 모순 때문이다. 의학의 발전으로 내 몸의 내적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다시 살이 찌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내 몸의 부실함을 일일이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아! 나이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요?라고 물으면 나는 그들에게 딱히 해줄 말이 없다.
인철 씨는 참 착한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착하다'라는 말을 듣고 산지는 꽤 오래전부터 다. 아마 초등학교 시절부터였을 것이다. 졸업후 몇십 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들도 나를 착했던 친구로 기억할 정도니 나의 '착함?'은 역사가 꽤나 길다. 내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의미였을 것이다. 혹은,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미생의 장그래식 버전으로. 그런데 '착하다'의 의미는 뭘까? <미생 6화>의 박 대리 에피소드를 보면서 '착하다'의 정의가 매우 궁금해졌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리자면 '착하다'는 말은 이 세계에서 조용히 사라지거나 세빠시 신상 단어로 대체되어야 한다.
왜냐고? 말할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하니까. 착한 것은 착한 게 아니라 어리숙함 혹은 호구로 변질되었으니까. 미생의 원인터내셔널 IT 파트의 박 대리가 대표적이다. 박대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사람이다. 거래 회사가 선적 날짜를 어겨도 그는 거래처 사람들에게 갑질을 하거나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거래처 사람들은 착한 박 대리의 선량한 호의를 이용하고 물렁한 호구로 대한다. 심지어 박 대리는 자신이 그들에게 호구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오히려 거래회사를 걱정한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박 대리보다 이백 배는 안 착하다.
사람들에게 이용 당하는 박대리의 착함은 나쁜 것일까?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걸까? 이 시대의 가장들에게 착하게 산다는 것은 심각한 난센스다. 박 대리의 친구가 말했듯이, 장그래가 말했듯이 때로는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일에는 과감히 무책임해져야 한다. 호의를 호구로 되갚는 게 몰염치가 아니라 능력이 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착하다'에 한해서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는 틀려야 한다. 착한 것은 진짜로 착해야 하니까.
2014년 11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