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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이 필요한 밤들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설명이 필요한 밤들이 지나고 있다. 밤은 대개 수동적이다. 낮은 너무나 명징하여 굳이 자세한 설명이 필요치 않다. 단지 묘한 긴장이 주는 모종의 아우라 속에서 나는 아슬아슬한 생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어느 때부턴가 나는, 내 주변은 왕의 남자의 외로운 ‘공길’처럼, 그리스도인의 붉은 성호처럼, 나도 모를 경계를 내 안에 긋고 그 선 안에서만 왔다 갔다 할 뿐이다. 설명이 필요한 밤들이 지나고 있다. 어떠한 해명도 없이 밤은 대개 수동적이다. 칼날 같은 어둠을 베고 꼿꼿이 서 있기보다는 누워있거나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사진출처-pixabay


설명이 필요한 밤은 고요한 외침이자 소란한 침묵이다. 설명이 되지 않는 밤은 은밀한 카타르시스를 주며 모든 것들이 공감각적으로 흐른다. 나는 옆으로 누운 어둠과 칼날이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가장 격심한 긴장을 억누른다. 포이어바흐의 '테제'처럼 난해하거나 인터스텔라의 '큐브'처럼 주변의 상황들을 왜곡한다. 5차원적으로. 12월. 아무렇지도 않게 떠나지도 보내기도 서럽지도 않은 애매한 계절, 며칠 전에 새로 산 극세사 차렵이불이 생각보다 따듯하다. 일차원적인 따스함, 차원을 넘어서는 어쩔 수 없는 나의 유일한 해방구.


휴우. 하아. 후아~. 숨이 차다. 모든 상황들에 이후의 모든 이상한 만남들에 오늘 밤 열 시가 훌쩍 넘은 퇴근길은 눈 오다 비 오다 그런다. 아니 그랬다. 이십 년 지기 친구의, 아마도 여섯째 형님의 느닷없는 부고와 초등 동창의 어머니의 부고와 잠깐 인연으로 스쳤던 그녀가 수줍게 건네는 청첩장과 무더운 여름날 남한산성 비탈길에 수박 오십 통을 굴려버린 어느 과일장수의 사연을 떠올리며 나는 눈 오다 비 오는 밤 열 시에 퇴근을 한다. 사람들은 춥다고 말을 하는 대신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움츠린다. 이토록 시린 계절을 사는 사람들의 대화는 말이 아닌 몸짓이다.


사진출처-pixabay

내 왼손엔 수년 전 지하철 3호선 에서 샀을 메이드 인 차이나의 접이식 우산 대신 낡은 가방이 들려있고 내 뒷목의 곤 색 후드 티엔 모자가 주름진 채 달려 있었지만. 그냥 눈 맞고 비도 맞았다. 요즘은 감기가 좀 찾아와도 좋을 시간들이니까. 모든 일에 무책임해지고 싶은 그런 시간들이니까. 나는 좀 그래도 되는 사람이니까. 이런 내게 누가 한마디라도 할라치면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 식으로 격하게 소리를 치면서 멱살잡이를 할지도 모르거든. 내 안에는 아직은 얌전한 황소 한 마리가 살고 있으니까. 아마도 중3 때부터였을 거야 내 안에서 황소가 살기 시작한 게. 황소는 늘 내게 인내와 타협과 고통을 극복하라지만 정작 내가 그를 필요로 할 때는 내 뒤에 숨어버리고선 나타나지를 않았지. 언젠가는 너를 꺼내고 말 거야 오랜만에 김광석의 노래를 듣는다.


지난 몇 달 동안 노래 한 자락 들을 여유도 없이 지나간 내 시간들이 장난 아니게 억울하지만 이미 잃어버린 시간을 아쉬워하기보다는 슬픔과 절망과 기쁨이 위로가 되는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에 훠이훠이 실려 보내자. 과잉된 감정에 너무 취해 오버하지 않게 해주는 이 노래를 듣는다. 쓸쓸하지만 그렇다고 축 늘어지지 않은 시간들을 번쩍 일으켜 세우는 김광석! 그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좋다. 북풍한설이 이는, 혼자 있는 초겨울 밤에 다시 찾아온 찌릿한 동통을 잊는 망각의 새벽에.


2014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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