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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Oct 14. 2024

노벨문학상과 스모크햄 한 개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나는...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깜짝 놀랐다. 고은, 황석영, 이문열 등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노벨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지만 매번 영광의 축포는 언제나 다른 나라에서 터졌다.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구나, 혼자서 박수를 치며 축하를 전했다. 끼니때가 지난 탓에 허기가 진다. 냉장고를 열었다. 스모크햄이 조금 남았다. 스모크 햄을 자주 산다. 단골 마트에 갔다. 마트가 집에서 조금 멀지만 가격도 저렴하고 운동삼아 간다.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캔을 고르고 식품 매대에서 늘 구입하던 스모크 햄을 골랐다. 스모크햄 가격은 4,980원이다. 물건을 다 고른 후 카운터에서 계산을 했다. 카운터에는 앳된 얼굴의 신입 캐셔가 해맑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9,900원입니다."


나는 익숙한 몸짓으로 뒷주머니에서 검정 반지갑을 꺼냈다. 검정 반지갑에서 빳빳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캐셔에게 건넸다.


"손님, 포인트 적립하시나요?"

"네."

"전화번호가?"

"6910"입니다.

"성함이?"

"김인철입니다."


캐셔는 여전히 밝고 해맑은 표정으로 내게 잔돈 100원을 건넸다. 나는 스모크햄 한 개와 소주 한 병, 캔 맥주 하나가 담긴 재활용 백을 든 채 마트를 나왔다. 하지만 중간쯤 왔을 때 방금전의 상황이 조금 어긋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사소한 차이였지만 분명이 무언가 어긋났다. 카운터 모니터에 9,900원이라는 숫자가 떴을 때부터 어긋난 느낌이 들긴 했었다. 소주 한 병, 맥주 한 캔, 그리고 스모크햄 한 개. 9,900원. 에잇 그냥 갈까? 아니 그래도 이상하잖아. 나는 집으로 향하던 길을 멈추고 약 삼십 초간 내적 갈등을 했다. 어긋난 상황의 원인을 찾기로 했다. 걸음을 돌려 마트 쪽으로 향했다. 먼저 스모크햄이 있던 매대로 가서 가격을 확인했다. 4,980원이었다.


"손님, 뭐가 잘못되었나요?"

"어.... 계산이 어긋난 것.... 아니 틀린 것 같아요. 확인 좀 해주세요."

"네, 잠시만요."

"소주와 캔 맥주는 가격에 이상이 없었다. 그렇다면 스모크햄이 어긋난 원인이었다."

"아, 스모크햄 할인이 끝났네요."

"네? 할인이 끝났다고요?"

"네, 정상 가격으로 구매하셨어요."


마침내 어긋난 상황의 원인을 찾았다. 그리고 나는 순간 이 해맑은 표정의 캐셔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조금 망설여졌다.


"그렇군요. 그런데 상품 할인이 끝났으면 할인된 가격표는 매대에서 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죠."


앳띈 얼굴의 캐셔는 여전히 해맑은 표정으로 답했다. 나는 다시 카운터 앞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선채 할인이 끝난 스모크햄을 반납해야 할지, 내 기준에서 추가로 지불한 금액을 요구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할인된 가격표를 떼지 않으면 손님들은 헷갈릴 수가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 어긋난 상황이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할인이 끝난 상품은 가격표를 떼는 게 맞지 않나요?"



나는 목소리를 평소대로 유지하려고 했지만 톤이 약간 올라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마트 안쪽 채소 코너에서 나를 응시하는 한 여인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그쪽으로 돌리자 계란 한 판을 막 집어 들려던 여자가 내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아침이면 이따금씩 좁은 골목길에서 차를 빼 달라고 전화를 했다. 나도 몇 번 차를 빼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인사 정도는 주고받는 사이였다. 어긋난 상황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이 상황이 조금 민망했다. 어긋난 상황은 계속 이어졌다. 그때 입구에서 한 남자가 구부정한 자세로 등에 짐을 가득 짊어진 채 들어왔다. 마트 사장이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그게... 손님이 산 스모크 햄 가격이...."


여전히 해맑은 표정의 캐셔는 사장에게 방금 벌어진 상황을 설명했고 재빨리 상황을 파악한 마트 사장은 스모크햄이 있던 매대로 가서 할인된 가격표를 떼더니 카운터로 왔다.


"할인이 끝났으면 가격표를 뗐어야지. 손님에게 차액 환불 해줘."


마트 사장은 캐셔에게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지 않았고 알아듣도록 자분자분 설명을 해줬다. 그리고 나에게도 정중히 상황을 설명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할인이 끝난 가격표를 떼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네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마트 사장님은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닌 듯 자연스럽게 차액을 환불해 줬다. 나는 뭔가 어긋난 상태에서 설명 불가해한 감정에 사로 잡힌 채 마트를 빠져나왔다. 지구의 한 곳에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했고 또 지구의 한 작은 동네 마트에선 어긋난 스모크햄 한 개로 한 남자가 캐셔와 실랑이를 벌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까맣고 아득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십분 남짓 있었던 상황에 기분이 묘했다. 다른 평행 우주의 지구에서는 세계사적인 영광과 마트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입장이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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