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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야, 불이야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금요일이다. 센터에선 다시 혼자가 되었다. 출산 휴가를 낸 ㅂ선생님 후임으로 같이 일할 선생님은 아직 구하지 못했다. 괜찮다. 항상 이런 식이었으니까. 공부방에서 교사 수급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시스템의 문제니까. 혼자서라도 버티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하루 빨리 나와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그리고 오래 같이 할 수 있는 선생님이 왔으면 좋겠다.


사진-pixabay


지난주 오케스트라 수업을 중단 하며 잔소리를 한 것이 약간은 효과가 있었다. 오늘은 아이들이 제 시간에 오고 수업시간에 연습도 열심히 했다. 종례시간에 그래 오늘만큼만 하자! 하고 기분 좋게 이번 주 일정을 마무리했다. 청소를 마친 아이들은 집에 가지 않은 채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 어디서 타는 냄새나는데요."

정말 타는 냄새가 났다. 급히 주방을 살폈지만 가스레인지는 꺼져 있었다. 밥솥이나 전자레인지도 이상이 없다. 사무실과 교실 전기선도 멀쩡했다. 그런데도 어디선가 연기가 스며들더니 교실은 점점 매캐해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싶어서 창고 쪽 베란다로 나갔다. 아래를 내려다 보다가 기겁을 했다. 옆 건물 일층에서 활활~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이쪽 건물을 타고 연기와 불이 올라오고 있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옆 건물에 불났어. 모두들 지금 당장 계단으로 내려가! 어서 빨리"

아이들은 옆 건물에서 불이 났다는 말을 듣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연기는 교실 안을 가득 채웠다.

"빨리! 빨리 내려가."

아이들은 황급히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아이들을 모두 밖으로 내려 보낸 다음 나도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차단기를 내리지 않고 내려왔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연기가 많이 차지 않았다. 다시 4층으로 뛰어 가려는데.

"선생님, 들어가지 마세요."

뒤에서 h가 잔뜩 겁먹은 얼굴로 나를 불렀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안심 시키고 단숨에 4층으로 올라갔다. 일층 건물 외벽에 있던 가스통이 터지는지 펑, 펑,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급히 차단기를 내리고 짐을 가지고 내려왔다. 혹시 불이 잡히지 않으면 어쩌지. 화재 보험은 들었지만 저 많은 악기들은. 내려오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일층 현관문을 나오는데 h가 울먹이며 말했다.

"아앙. 선생님 위험한데 왜 다시 들어가셨어요."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요. 다시 들어가지 마세요."

j도 겁이 났던지 h옆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는 사이에도 가스통이 연달아서 펑펑 터졌다. 소방차가 속속 도착했다. 소방관들이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도록 건물 주변에 폴리스 라인을 쳤다. 소방 호수를 든 소방관들이 불길이 번지는 곳을 향해 일제히 소방수를 분사했다.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들렸다. 아이들은 걱정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에도 계속 울먹이며 불길이 더 이상 번지지 않기를 기도했다.


다행히 소방관들의 노력으로 불길은 잡혔다. 우리 건물까지는 불길이 번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외벽을 타고 있던 전선이 녹아내려서 건물 전체 전기가 나갔다. 잠시 후 소방관들의 허락을 받고 푸른 학교로 들어갔다. 교실에선 연기와 탄 냄새가 흥건했지만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하지만 금요일이다. 주말 이틀 동안 냉장고에 든 식자재들이 문제였다. 대표님에게 전화를 했다. 한걸음에 달려오신 법인 대표 차에 식재료를 실었다. 그리고 상대원 푸른 학교 냉장고에 임시로 보관을 했다.

"선생님 푸른 학교 괜찮아요?"

"월요일 푸른 학교 갈 수 있어요?"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아이들에게 푸른 학교는 이상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체 메시지를 보냈다. 평소에 아이들과 화재 예방 훈련을 했었다. 하지만 화제를 실제로 겪고 보니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소방관들의 소중함과 고마움도 느꼈다. 실전만한 훈련은 없다지만 다시는 이런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았다.


2011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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