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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는 우리들의 힘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football-1678992_960_720.jpg 사진출처-pixabay


내일은 황송공원 축구장에서 지난 6개월의 축구 동아리 활동을 마무리 짓는 날이다. 그동안 축구 멘토가 되어 주셨던 이우 FC 코치님도 나도 아이들도 모두가 기다리던 시간이다. 그런데 시합을 앞두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시합 이틀 전 포지션 문제로 주장인 D와 일 학년 B가 다퉜다. D는 주장을 맡은 뒤로 열심히 팀을 이끌었다. 그런 D가 내일부터 푸른 학교를 나오지 않겠다는 것이다. 처음엔 장난이려니 생각했다. 단지 축구 포지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다른 데서 터졌다. 학교 내신 성적이 좋지 않아서 부모님이 푸른 학교를 가지 말라고 했단다. 며칠 전에 응시한 고등학교 면접에서도 떨어졌다. 그런데 공부할 생각은 하지 않고 축구에만 빠져 있으니 부모님 입장에선 속상할 만도 했다. 부모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막상 시합이 내일인데.


"왜 안 와?"

"저 내일 못 갈 거 같아요."

"어제 일 때문에 그래. 아님 내신 때문에?"

"아니요."

"그럼 이유가 뭔데?"

"잘 모르겠어요."


수업을 마치고 D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지만 집전화도 핸드폰도 받지 않았다. 다시 D에게 전화를 했다. D의 목소리는 들릴락 말락 했다. 수화기 너머로 빨리 끊으라는 음성이 날카롭게 들렸다. D의 어머니였다. 집에 있으면서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일 년에 서너 번은 이러저러한 일로 한동안 푸른 학교를 나오지 않았었다. 그래도 설마 내일 시합은 뛸 수 있겠지, 라며 퇴근하기 전에 아이들의 축구복과 축구화를 챙겼다.


다행히 일기 예보는 빗나갔다. 날씨는 아주 화창했다. 시합은 오후 세시부터다. 아이들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하나둘씩 황송공원 축구장으로 모였다. 함. 청과 정자동 선생님들과 아이들도 하나둘씩 모였다. 세시가 다 되어 가는데 D는 오지 않는다. 연락도 없다. 아이들도 오늘 오기 힘들 것 같다고 한다. 게다가 수비를 맡아야 할 M도 오지 않았다. 사실 그는 축구보다는 야구를 더 좋아했다. 다른 센터의 선수들은 모두 온 듯했다. 2학년 K는 축구를 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공을 찰 때도 배드민턴을 하고 놀았다. 열한 명을 맞춰야 해서 K에게 유니폼을 입으라고 했다. K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두말없이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휘슬이 울리고 드디어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멀리서 보니 신장 차이가 너무 났다. 우리는 일 학년이 주 멤버고 정자동은 삼 학년이 주축이었다. 마치 고등학생과 중학생의 대결 같았다. 체력과 신장이 열세인 데다 멤버마저 모자라니 경기는 우리 팀이 일방적으로 몰린다. D와 M은 여전히 연락이 되지 않는다. 역시나 수비가 불안했다. 결국 경기를 시작한 지 오 분도 안 되어 한골을 먼저 내주었다. 이내 또 한 골을 내주었다. 경기는 일방적으로 몰렸다. 게다가 종료 직전 자살골마저 넣었다. 결과는 3대 0. 완패다. 풀이 죽은 채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괜찮아, 잘했어!' 용기를 북돋워 주었지만 소용이 없다. 그때 D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지금 D형, 여기로 온대요."

부모님이 못 가게 해서 지금껏 삼촌 집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오고 있다는 것이다. 함. 청과 정자동의 두 번째 시합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현재까지 두 팀은 무승부였다. 연락이 안 되던 M도 운동장 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연락도 없이 속을 태운 생각을 하면 화부터 나야 했지만 우선은 반가웠다. D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택시비가 없단다. S에게 택시비를 주고 공원 입구로 보냈다. 다행히 두 번째 게임은 완전한 멤버로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두 팀은 무승부로 끝났다. 쉬는 시간은 십 분이었다. 하지만 쉬는 시간이 다 지나는데도 D는 오지 않았다. 심판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마침내 D가 나타났다. 경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마치 영웅을 기다렸다는 듯이 멀리서 뛰어오고 있는 D를 향해서 우르르 몰려 나갔다.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D는 재빨리 공격 라인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도 신장이나 체력에서 열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첫 번째 게임처럼 우리 팀이 일방적으로 밀리진 않았다.


몇 차례 위험한 상황이 있었지만 골키퍼인 K가 멋지게 선방을 했다. 나는 웬만해서는 피가 끓지 않는 성격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피가 끓고 끓어서 몸속에 있던 피가 거의 말라버릴 지경이다. 공이 상대편으로 넘어가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국가 대표 간 경기를 할 때도 이렇게 열광적이진 않았다. 공 점유율은 이번에도 우리가 뒤졌다. 그런데 경기 중반으로 넘어갈 무렵 패스를 받은 D가 상대편 골대에서 회심의 킥을 날렸다. 그렇지만 공은 골대를 맞고 튕겨 나왔다. 아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렀다. 하지만 골대를 맞고 나온 공은 수비를 맡고 있던 J에게 넘어왔다. 골대 앞에서 일대 혼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몇 초 뒤 거짓말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일 학년 J가 찬 공이 상대방의 골대를 갈랐다.


끼얏호. 나도 모르게 울부짖었다. 우리가 선제골을 넣은 것이다. 지난 육 개월 간 친선 시합을 포함 공식적인 경기를 통해서 선제골은 처음이다. 잘했어, 잘했어. 들리지 않아도 좋았다. 나는 히딩크처럼 연신 허공을 향해 주먹질을 해댔다. 이우 FC 코치님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처음으로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수비만 잘하면 된다. 골이 우리 편으로 넘어올 때마다 오금이 저려오고 심장은 거칠게 펌프질을 해댔다. 하지만 선제골을 넣은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몇 분 뒤 허무하게 동점골을 내주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날 무렵 상대편 선수가 날린 중거리 슛이 골키퍼 K를 넘어 우리 편 골대를 갈랐다. 믿을 수 없었다. 우리 편 응원석은 침묵했고 상대편 응원석은 열광했다. 잠시 후 종료 휘슬이 울렸다. 1대 2. 아쉽게도 역전패다. 아이들은 숨이 턱에 찬 채 돌아왔다. 몇 명은 바닥에 쓰러진 채 한동안 일어나질 못했다. 하지만 첫 번 째 게임처럼 침울해하거나 낙담하는 표정은 어디에도 없다. 졌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뿌듯함이 아이들의 얼굴에 생생히 살아 있었다. D는 준비운동도 하지 않은 채 체력소모가 극심했던지 화장실에서 토를 하고 말았다. 그것도 두 번이나 토했다.


시합은 한 번 더 남았다. 이번엔 멘토(코치)와 멘티(학생) 간 시합이었다. 두 번이나 토했던 D는 이번 경기에도 뛰고 싶어 했다. 메인 경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아이들은 시합을 구경하기보다는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두 경기의 패인을 분석했다. 그들의 표정엔 다음번엔 꼭 승리하고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가득했다. 두 번이나 게임에 져서 풀이 죽어 있을 법도 했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다름 팀보다 더 수다스러웠고 활발했다. 몇 명은 걱정이 될 정도로 사방을 뛰어다니며 남아 있던 에너지를 내뿜었다. 잠시 후 멘토와 멘티 간 시합도 끝나고 간단히 소감을 나누고 단체 사진으로 오늘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근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선생님, 저 지금 가야 해요."

"왜? 밥이라도 먹고 가자"

"안돼요. 엄마가 지금 당장 오래요."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잘 가."

"안녕히 계세요."


D는 아직 시합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아이들과 나를 남겨둔 채 집을 향해서 터벅터벅 운동장을 걸어갔다. 평소 같으면 야단을 쳐서라도 밥을 먹고 가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힘없이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어쩌면 오늘이 D의 마지막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와는 수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여기까지 잘 왔다. 이제 몇 개월 후면 졸업인데 여기서 멈춰야 하나.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 건가! 저 작은 등판에 묻어나는 쓸쓸함이 D의 마지막 모습이라면 나는 또 하나의 석연찮은 이별을 마음 한구석에 담아야 한다. 이제 몇 개월만 지나면 푸른 학교 졸업인데. 때로 패배는 나에게 힘이 된다. 우리는 패배를 통해서 승리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이별은 어떤 형식이든 힘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아프게 다가와서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2011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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