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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서울 Oct 20. 2020

비주류 감성 충만한 이곳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은 초면에 인사할 때 내게 이렇게 묻곤 했다.

 "고향이 어디세요?", "@@씨는 고향이 어디야?" 

 솔직히 질문이 매우 후지다고 생각하지만 처음 만난 사람한테 면전에 대고 "저는 지연, 학연, 혈연 질문을 싫어합니다" 할 순 없잖아. 그냥 건조하게 "전북 정읍입니다" 대답한다. 그러면 보통은 자기가 언제 정읍에 가봤다는 둥, 자기 아는 사람도 정읍이 고향이라는 둥 하면서 아이스 브레이킹을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속으로 어떤 이미지를 그리겠지. 나는 그 이미지와 한 묶음이 된다.


그렇게 이 도시는 내게 어떤 정체성을 부여했다. 첫 대면에서 '정읍'이란 프레임으로 날 보는 사람들과 만나기를 10여 년. 한 번은 회사 상사한테 "시골에서 온 애"란 말을 들었다. 말 그 자체는 나쁜 말이 분명 아닌데. 하지만 모든 것이 대도시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리나라에서, '강남키즈', '목동키즈'로 자라온 내 또래 직장인들 속에서 '시골에서 온 애'는 뭔가 소수자적 감수성을 선물해주었다. 난 주류적인 것에서 벗어난 사람이란 느낌 말이다.


나쁘지는 않았다. 소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본 투 비 비주류' 감수성을 갖고 있다. 이 감수성은 8년 사회생활에서 나를 사내 '인싸'로 만들지는 못했을지언정 업무에는 상당히 도움을 주었다. 아이디어 회의에서 아이템이 신선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늘 새로운 걸 갈구하는 업계에서 창의적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태양광이 있는 정읍 천변 벤치들. 다행히 오늘 사람 한 명 있다. 저분은 친절하게도 개를 무서워하는 나를 위해 내가 지나가는 동안 자신의 반려견을 잡아주었다. 

사진에서 멀리 보이는 다리 밑엔 '청소년 물놀이장'이 있다. 정읍천 물을 막아 여름이면 어린이들 물놀이장으로 활용했는데, 미끄럼틀도 있고 나름 이용자도 많았다. 고등학교 때 반 전체가 저기로 놀러 갔는데 둔치에서 노란색 양동이(바께쓰)에 10인분 이상의 라면을 끓여먹었던 기억.


본격적으로 정읍에 머물며 제대로 돌아다닐 곳을 찾아봤다. 정읍을 여행지로 오는 사람들은 어떤 코스로 구경할까 궁금했다. 네이버 지식인에 '정읍', '여행', 두 단어를 쳐보았다. 나오는 말들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Q:전라북도 정읍 여행 질문이요~. 정읍으로 여행을 가려하는데 차 없이도 쉽게 둘러볼 수 있을까요? ㅠㅠ 숙박은 어디가 좋을까요 ㅠㅠ

A:정읍은 특별한 볼거리가 시내에는 없습니다. 일단 정읍은 내장산이 있고요.~~


Q:제가 정읍으로 혼자 여행을 갈 건데 정읍역에 내려서 어떻게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추천 좀 해주세요~맛 집하 구 관광지

A:정읍에는 놀거리가 별로 없는데 맛집은 상동 롯데슈퍼 옆에 보시면 순대국밥 집이 있을 겁니다


Q:통영 vs정읍 vs 광양 vs곡성 vs여수. 님들 같으면 어디로 놀러 가고 싶나여 어디 지역이 젤로쎔?

A: 정읍 빼곤 다 가본 곳인데요... 통영은 가장 최근에~~



아웃사이더 기질 충만한 나의 감성은 여기서 왔다. 고만고만한 소도시 중에서도 이름 없는 곳, 참 안 유명한 곳, 한적한 여름 휴가지 목록에도 들어가지 않는 곳. 그래서 좋다. 안 유명해서 좋은 곳. 사람 없어서 좋은 곳. 은둔 하기 좋은 최적의 휴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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