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대에게 필요 없어진다는 것
시절 연인, 한 시절 나의 곁에 있었던 그 누군가를 칭하는 말이지만 연인 하나 없던 나에게 요즘 이상하게 불쑥 생각이 나는 단어이다. 우습지만 저 단어를 꺼내 봐야 할 정도로 내 마음이 많이 외로운 걸까.
공허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이 있지 않냐는 사람들의 반문이 나를 더욱 부끄럽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고 난 이후 내가 온전히 느끼게 되어버린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의 퇴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시절 연인처럼 한 시절이 지나가고 사람들의 눈빛이 바뀐 것 같았다.
나를 이름으로 기억해주기보다는 누군가의 엄마로 먼저 떠올려 주고, 나와의 일상적인 대화는 언제나 내 아이의 안부부터 시작한다. 예전처럼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고 그 옆에서 고민과 힘듦을 나눌 수 없기에 나 또한 사람들로부터 당연히 멀어지고 또 잊혀가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지나간 흥겨운 시간들을 붙잡고 "당신, 왜 나에게 예전처럼 대하지 않나요?"라고 응석부리며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은 너무 어리고 어리석게 느껴질 뿐이다.
남편이 나에게 그랬다.
당신은 누구보다도 어른이라고
하지만 나는 언제나 아무도 보이지 않는 깊고 깊은 심연에 차마 부끄러워서 꺼낼 수 없는 관심 받고 싶어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넣어둔다. 시절 연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 지난 나의 아름답고 의연한 모습들마저도 조악하다고 얘기할까 봐 겁이 나서 꺼내 볼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
꾹꾹 눌러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은 이 공허한 마음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크리스티나의 불편한 다리와 병약한 뒷 모습에서 이상한 동질감 마저 느끼는 요즘의 내 공허한 마음을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문득 허공에 대고 나의 마음을 외치고 싶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