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헛소리 아니냐고? 현실은 더하다는....
https://youtu.be/9aVUoy9r0CM?si=LyNiko4tfwffEBF-
전설적인 미국의 모큐멘터리 시트콤, <더 오피스>의 한 장면이다.
이마에 인종을 적은 카드를 붙인 후
온갖 오해와 고정관념을 총동원해 상대방의 인종을 맞추는 게임이라니....
내가 영어를 잘 몰라도 뭔가 잘못돼도 확실히 잘못되었단 건 알겠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이렇게 오해와 편견으로 얼룩진 이 영상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다.
웃는다. 다들 불쾌함을 느끼기보다 웃는다.
왜일까?
왜 우리는 이 명백하게 '선 넘은 개그'를 보며 웃는 걸까?
<인지적 거리 이론(Benign Violation Theory)>에 따르면,
웃음이 발생할 때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한다:
위반 (Violation) → 기존의 규범, 기대, 사회적 상식을 깨는 요소.
안전함 (Benign) → 하지만 이 위반이 위협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
너무 안전할 경우 웃기지가 않고, 너무 위험할 경우에는 그냥 불쾌함만 남기게 되는데,
'웃음'이 생기는 지점은 바로 이 둘의 교집합 부분이다.
이 안전과 위반이라는 두 요소 사이에서 줄을 타며 교집합을 찾아내는 감각이야말로,
모큐멘터리 (fake documentary) 장르가 가진 진짜 매력이다.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멍청한 인물들의 ‘위반’,
그것이 모큐멘터리라는 형식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느껴지는 ‘안전함’ 사이의 묘한 간극.
이 어색하면서도 터무니없는 조합이 우스꽝스럽게 다가오는 거다.
아직 뭐가 그렇게 웃기고, 왜 모큐멘터리가 좋은지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아래 두 이유로 당신에게 모큐멘터리 영업을 성공시키겠다.
지극히 주관적인 내 웃음 코드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진지하게 멍청한 짓을 보는 게 정말 웃기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와 같은 웃음 코드를 가졌다면
기쁜 마음으로 이 명작을 소개하고 싶다.
퇴물이 된 락 밴드를 조명하는 모큐멘터리 영화....!
이름하야....
< This is spinal tap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
포스터가 너무 짜친다고?
인정한다.
'겉은 이래도 속은 다르다'....같은 말은 못한다.
겉과 속이 아주 같은 영화고,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이 영화의 최애 장면을 꼽자면 '고인돌 참사 장면'.
이 밴드는 석기시대를 주제로 한 음악(대체 왜)과 웅장한 공연을 위해
웅장한 스톤헨지 조형물을 무대에 세우기로 한다.
그런데, 스태프의 실수로
피트(feet)가 아닌 인치(inches)로 조형물을 주문하는 대참사가 일어나고,
그 결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는 우리는 웃음이 터지지만,
당사자들은 이걸 엄청난 비극처럼 받아들이는 이 갭이 모큐멘터리의 핵심이다.
하나도 안 웃기다고....?
그럼 이만 내 저질스러운 개그 코드 자랑은 멈추겠으나
다음 이유 때문이라도, 나는 당신이 모큐멘터리를 봤으면 좋겠다.
마지막 이유가 아니었다면 이 장르를 주제로 글까지 쓰진 않았을 것 같다.
모큐멘터리는 그냥 웃기기만 한 게 아니라
때때로 현실을 극단적으로 왜곡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장르다.
이 분야 갑에는
영국의 정치 모큐멘터리, <The thick of it>이 있다.
많은 주옥 같은 에피소드들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료 인터넷 사건'...!
정부가 국민들에게 무료 인터넷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하는데,
문제는… 예산이 1도 없는 상태에서 장관이 실수로 이걸 공식적으로 말해버린 것.
이 사태를 목격한 욕쟁이 말콤 터커 (Malcolm Tucker) (aka. 말콤 퍼커) 가 뛰어와 마구 소리친다.
말콤: X발, 우리가 발표한 게 뭐라고?
(What the f** did we just announce?)
보좌관: 장관님이 무료 인터넷을 제공한다고 하셨는데요…
말콤: 무료 인터넷? 이 나라가 디즈니랜드냐?
(Free internet? What is this, f**ing Disneyland?)
보좌관: 근데 이미 뉴스에 나갔어요…
말콤: 좋아, 이제부터 이게 원래 계획돼 있던 거라고 우기자.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예산 문제를 묻자,
말콤이 내놓은 해결책은.....
말콤: 더 큰 X소리를 던져서 묻어버려 .
(Bury the mess with a bigger mess.)
보좌관: 어떻게요?
말콤: 전국 모든 공공장소에 와이파이를 깔겠다고 해!
결국, 실수 하나가 전국적인 IT 혁신 계획으로 둔갑해버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말도 안 되는 정책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정치인들,
기존 논란을 덮기 위해 더 말도 안 되는 정책을 급조하는 상황들까지.
처음에는 작품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웃다가
잠잠해질 때 쯤 이런 생각이 몰려온다.
"근데 가만 보면, 진짜 현실이랑 다를 게 없네?"
모큐멘터리는 사회를 망원경으로 멀리서 관찰하는 대신, 돋보기로 바짝 들이대는 장르다.
멀리서 보면 대충 멀쩡해보였던 것들을
극단적으로 조명해 그 허점과 추함을 보여준다.
바로 이 지점에서 모큐멘터리는 단순한 코미디를 넘어, 사회를 풍자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웃긴 장면 속에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부조리가 너무 적나라하게 담겨 있기 때문.
픽션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우리가 사는 현실이 더 우스꽝스럽고
비현실적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을 준다.
결국, 좋은 모큐멘터리는 단순히 허무맹랑한 상황으로 웃음을 주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묻는다.
이게 정말 터무니없는 이야기야?
아니면 우리가 그냥 이렇게 살아온 거야?
모큐멘터리는
세상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읽는 날카로움과
세심한 공감이 있어야 완성되는 장르 같다.
단순히 웃기기만 한 시트콤이 지루해졌다면,
이제 모큐멘터리를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