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은 순수를, 소비는 창조를 이길 수 있을까?
(※이 리뷰에는 강력한 스포가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브루탈리즘 :
1950-70년대 2차세계대전 직후에 나타난 건축양식으로, 프랑스어 Béton brut (가공되지 않은 콘크리트)에서 유래한 말. 노출 콘크리트, 기하학적 형태, 기능적 디자인을 특징으로 하며 장식을 배제하고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특징.
가공되지 않은 재료를 마감으로 사용해 흉물스럽게 보일 정도로,
삭막하고 과격해 (brutal)해 보이기도 하다.
심지어 마감처리도 없다.
하지만 솔직하다.
어떤 꾸밈도 없이 건물의 골격과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며 굳건히 존재한다.
브루탈리즘은 주인공 라즐로, 또 영화 그 자체와 많이 닮아 있다.
벤 뷰런은 억만장자다.
희귀 초판본이 가득한 서재로 알 수 있듯이 가지고 싶은 건 다 살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타인을 조종하고 지배하는 법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조부모에게 서명 없는 수표를 주며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을 즐긴다.
영화를 본 이후 알게 된 그의 성격으로 보건데, 벤 뷰런의 행동은
단순한 복수심이 아니라 철저한 통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주인공 라즐로는 헝가리 출신 유대인 이민자다.
고국에서는 존경받는 건축가였으나, 이 땅에서 그 누구도 그를 환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무료 급식소에서 흑인 아이를 위해 항변하고,
자신의 몫을 양보할 정도로 타인을 위한 배려와 신념을 지킨다.
뭐 하나 가진 것은 없어도 그 안에는 그를 표현할 수 있는 창조성이 가득하다.
이렇게 영화 속 라즐로와 벤 뷰런은 완벽하게 다른 것을 표상한다.
벤 뷰런은 세속과 소비, 변덕스러움과 통제를
라즐로는 예술과 창조, 존재와 자유를.
상반되는 두 사람이지만,
두 사람은 초반 벤 뷰런의 강한 구애에 빠르게 가까워진다.
하지만 라즐로가 벤 뷰런이 의뢰한 문화센터를 건축하기 시작하며 벤 뷰런의 본색이 드러난다.
라즐로를 칭송하다 모욕하고
신뢰한다 말해놓고, 배후에선 감시하고 조종한다.
그러다 결국 라즐로의 영혼을 파괴하는 일, 그를 성폭행하는 일까지 저지른다.
감독은 이렇게 상반되는 두 인물을 통해
'세속은 왜 자유를, 예술을, 친절함을, 진실함을 파괴하고 싶어할까?
과연 세속은 아름다운 것들을 파괴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나름의 답을 남긴다.
감독은 세속은 아름답고 순수한 것들을 질투하기 때문에 소유하거나 관리하려 하나,
결국 세속은 진실한 것들에 비해 너무 나약하기에 그럴 수 없다고 답한다.
영화의 서사도 마찬가지로 감독의 답변을 따른다.
라즐로는 그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질기게 존재하며,
본인의 신념과 노력으로 빚은 창조물들을 결국 인정 받는다.
반면, 벤 뷰런은 라즐로의 아내 엘리자벳이
홀로 저택에 거동기로 걸어와 벤 뷰런이 저지른 성폭행에 대해 고발하던 순간,
즉, 라즐로에 대한 엘리자벳의 사랑을 목격한 순간
그는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이 궁극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고
결국에는 고해하듯, 그가 가장 질투하던 라즐로가 만든 예배당에서 자살한다.
2) 영화 <브루탈리즘>
영화를 보기 전 내가 이 영화에 대해 알고 있었던 유일한 사실은
러닝타임이 215분이라는 사실이었다. 정말 길다.
인터미션 있는 클래식 공연은 가봤어도 인터미션 있는 영화는 처음이었다.
브루탈리스트는 1.66:1 화면비의 비스타비전으로 촬영되었다.
특수한 비스타비전 필름으로만 구현 가능한 이 화면비는
1920년대 히치콕 영화에서나 자주 쓰인 화면비라고 하니
구현하기 정말 힘들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참 불편한 촬영방식과 불친절한 상영시간을 가진 영화다.
이 밖에도 배 안 장면의 어마무시하게 긴 롱테이크 , 느린 편집
대중친화적 서사와 먼 이야기 등등
어떤 꾸밈도 없이 건물의 골격과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브루탈리즘 양식처럼
고집스럽게 오래된 필름을 쓰고 길고 불친절한 러닝타임을 고집한다.
감독의 신념은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의 형식을 통해 표현된다.
자신이 만든 영화가 누군가에 의해 소비되기 보다 온전히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이 온전히 느껴진다.
브루탈리스트는 이야기와 형식으로 말한다.
진정한 것들은 끝까지 살아남는다고.
비록 힘든 길을 걸어야 하지만, 진정한 것들은 타협 없이 존재해야만 한다고.
나는 거칠지만 묵직한 콘크리트처럼 <브루탈리스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네이버 블로그 놀러오시면 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https://blog.naver.com/yujeans_667/223761652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