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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Jan 13. 2024

눈 내리는 풍경

눈이 내린다.

폴~

폴~

아주 느리게 하얀 솜털이 내린다.

한 송이가 바닥에 닿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한 송이가 내려온다.


아무 생각 없이 보면 눈이 내리고 있기나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다.


시간이 좀 흐르자 눈송이가 점점 커졌다. 

내리는 속도도 빨라졌다.

펑.

펑.

이제야 제법 눈답게 내린다.


눈은 고요하게 내린다.

하얗게 점멸하는 눈송이들은 정신없이 번잡해 보이지만, 눈이 내리는 날은 신기하게 고요하다. 

모든 소리를 덮어 고요를 넘어 적막하다.  


눈 내리는 날, 방학 중인 가게 안은 그래서 더욱 적요(寂寥) 하기만 하다.


© guillepozzi, 출처 Unsplash


내리는 눈은 바닥에 닿아 물이 되어 사라진다.

한동안 내리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눈이 그쳤나 보다. 


하늘은 여전히 무표정한 잿빛 얼굴을 하고 있다.


잠시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린다.

이번에는 송이가 아주 작다.

너무 작은 눈이라 눈 같지가 않다.


작은 먼지 같은 눈이 쉬지 않고 내린다.


어느새 가게 앞 나뭇가지에 눈이 쌓여있다.

가게 앞 공터에도 하얗게 쌓여 순식간에 겨울 풍경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하나 둘 지나간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눈 집게로 여러 모양을 만든다.


가게 앞 쌓인 눈을 언제쯤 치워야 할까?

계속 눈이 내리니 지금 쓸어도 또 쌓일 테지만, 그래도 나는 눈을 맞으며 가게 앞 눈을 쓱싹쓱싹 쓸어준다.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쌓여 있던 눈.

내리는 눈과 함께 끓여먹던 라면..

나뭇가지마다 하얗게 피워 낸 눈꽃들의 세상...

자고 나니 온통 새하얀 눈 세상이 되어 있던 어느 깊은 산....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오랜 옛날의 어느 순간이 느닷없이 흰 눈과 함께 떠오른다.


눈송이 하나가 펄렁 날아와 까만 옷에 닿았다.

이 눈송이 하나하나의 결정체가 모두 다른 모양이라지?

윌슨 벤틀리에 의하면 세상에 똑같은 눈송이는 없다고 한다.

어떻게 그는 모두 같아 보이는 이 눈송이를 관찰해 볼 생각을 했을까?


<눈의 결정들>


눈의 결정들은 어쩜 이리 아름다운 모습들일까?

그저 수북이 쌓여 있는 눈 하나하나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렇게나 아름다운 고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녹아 없어지는 눈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사람은 어떨까?

그 많은 사람 중 누구도 나와 같은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고유한, 오직 하나뿐인 존재들인 것이다.


어느새 세상은 다른 세상으로 바뀌어 있다.

차갑지만 포근한 눈으로 뒤덮인 세상...


© pudding8_8, 출처 Pixabay


모든 것들이 다 하얗게 덮였다.

그 속에 있는 본질은 변한 게 없건만, 두 눈에 가득 찬 새하얀 풍경이 따스하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눈을 보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이 순간만큼은 그저 두 눈에 보이는 풍경만 마음에 담기로 한다.

하얗게 하얗게 이 세상의 모든 어둠마저 하얗게 물들이는 각기 다른 눈 결정들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눈은 더할 나위 없이 고즈넉하고 자유롭게, 소리 없이 조용하게 주변의 잡음을 지우며, 모든 흠결을 덮으며 내리고 있다.  눈은 겨울이 주는 선물이다.



◇◈◇◈◇◈

◇ 제목사진 : © chanphoto,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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