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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퉁이극장 Oct 28. 2022

사랑에 대한 고찰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작성한 에세이 입니다.

박기영

사랑은 변화를 요구하게 마련이다. 상대방을 변화시키고, 상대방을 위해 나를 변화 시킬 권리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이 사랑이다. 나를 사랑 해 줄 것, 나를 보아 줄 것,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 줄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며, 당신을 사랑할 권리, 당신을 바라볼 권리, 당신을 위해 무언가를 할 권리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행위이다. 당신을 위해 기꺼이 나를 변화 시키고 나를 위해 당신을 변화시키는 과정.


변화는 필연적으로 파괴이다. 당신을 사랑하기 이전의 나를 파괴하고 나를 사랑하기 이전의 당신을 파괴하기를 요구한다. 끊임없는 사랑은 끊임없는 파괴의 연속이다. 계속해서 나를 파괴하고 그 조각들을 태워 사랑은 마침내 불이 된다. 불은 당신과 나의 조각들을 태우며, 일렁이며, 춤을 춘다. 불은 자신의 몸이 닿는 모든 것에 자신을 나눠주고, 다시 합쳐지며 거대해져 간다. 당신과 나는 환희 속에 자신을 파괴하며 불을 키워 나간다. 


불은 만족이라는 것을 알까. 불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모든것이 타들어 없어질 때까지 멈출 줄 모른다. 그러한 화염 속에 당신의 모든 것이 타들어 가 없어지고, 나의 모든 것이 타들어 가 없어질 때 비로소 불은 꺼지고 우리의 사랑을 증거하던 모든 것은 회색빛 재가 되어 남겨진다. 재는 고요하다. 서로를 향한 요구는 중단된다.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여기까지. 나를 향한 당신의 사랑도 여기까지. 여기가 우리의 끝. 당신과 나는 서로에게 의미 없는 존재가 되어 간다. 


재는 더 이상 타오를 수 없다. 그러나 불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 자신을 파괴해 본다. 자신을 무너뜨리고 깨트려본다. 그러나 재는 더욱 잘게 부서질 뿐 더이상 불은 일어나지 않는다. 무심한 바람은 재를 날려버린다. 당신과 나를 증거 해 줄 모든것은 더이상 남아있지 않다. 바람은 그저 어딘가로 재를 옮길 뿐이다. 그것에는 어떠한 감정도 없는 듯하다. 당신과 내가 얼마나 밝게 타올랐는지, 바람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 무엇도 될 수 없는 재는, 바람을 따라, 흩날린다. 과거의 기억만을 가진 재는, 이윽고 바다에 다다른다.


바다는 자신의 존재를 증거해줄 무언가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바다 역시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한때 찬란하게 타올랐던 재는 바다에 삼켜진다. 바다에 삼켜진 재는 파도에 휩쓸려 어디론가로 사라진다. 거대한 바다에서 더이상 재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바다는, 조금은 회색빛을 띄는 것 같다.


당신과 나의 기억을 담은 바다는 서서히 물들어간다. 당신과 나의 사랑을 증거하던 재의 색으로. 바다는 불을 기억한다. 화려하게, 찬란하게 타오르던 불이 조금씩 사그러 들던 그때. 불의 마지막 기억. 누군가는 결심을 한 것이 분명하다. 헤어질 결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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