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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Oct 31. 2020

Never give up

엄마의 희망이 되어 준 아들

내 삶은 언제나 장밋빛일 줄 알았다. 사람들이 흔히 행복의 조건으로 말하는 좋은 차, 좋은 집, 풍족한 생활, 거기에 모범생 아들 딸까지 가진 나는 불행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한 세상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러나 순탄하던 내 삶에 어느 날 갑자기 태풍이 몰아쳤다. 그 태풍은 너무나 뜻밖이어서 어떻게 손 써 볼 짬조차 없이 후림불이 되어 우리 가정을 휩쓸어버렸다. 십수 년 간 혈육처럼 믿고 물품을 거래해 오던 남편의 거래처가 남편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힌 채 해외로 잠적해 버렸던 것이다. 남편은 인간적인 배신감에 치를 떨며 한낱 종잇조각이 되어 버린 당좌수표와 약속어음을 들고 어떻게든 그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다고, 자취도 없는 거래처 사람을 무작정 찾아 나섰다.


점포는 부도를 맞았고 43평 래미안 아파트인 우리 집에 경매 통지서가 날아들던 날, 나는 정말 죽고만 싶었다.

혹여 잠든 아이들 깰 까 봐 경매 통지서를 움켜 쥔 채 안방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잇 사이로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남편을 기다리던 그날 밤, 소리도 없이 다가 온 아들이 등 뒤에서 가만히 내 목을 끌어안으며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 나는 우리 집이 없어지거나 돈이 없는 건 슬프지 않은데 엄마가 우는 걸 보면 여기가 너무 아파요.” 

아들은 집게손가락으로 제 가슴 명치끝을 가리켰다.

“우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열심히 공부하면 자기가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하셨어요. 

제가 어른이 되면 성공해서 엄마한테 이 집보다 더 좋은 집 사 드릴게요. 그러니까 이 아들 믿고 울지 마세요. 

그리고 엄마는 책을 많이 읽으셨으니까  웬스턴 처칠이 했던 그 짧은 연설 아시지요?  

Never give up, Never give up, Never give up."


어떻게 알았던 걸까 아들은, 지금 엄마가 삶조차 포기하고 싶을 만큼 끔찍하게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아들이 어느새 엄마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자랐구나 싶어 대견하면서도, 이제는 이 자식에게 가난을 안겨 줘야 하는 현실에 가슴이 저며왔다. 하염없이 흐르는 아들의 눈물을 닦으며 내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듯했다.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데, 이 자식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데, 나는 자신이 없었다. 앞날이 너무 두려웠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섬광처럼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영혼의 지축을 흔들었다. 

"모든 일이 어긋난다고 느낄 때, 이제 1분도 더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그래도 포기하지 말라. 

바로 그때, 바로 그곳에서 다시 기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튿날, 나는 간직해 두었던 돌반지 몇 개를 들고 금은방에 나갔다. 그 반지를 녹여 가족들 손가락에 맞는 크기로 표면에는 아들이 내게 했던 그 말 ‘Never give up’을 새겨서 5개의 가족 링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했다. 그리고 그 반지를 찾아온 날 저녁, 나는 정성을 다해 음식을 장만했다.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해 놓고, 남편과 가끔 나누었던 와인도 한 병 사다 놓고, 특별한 날에 꺼내는 촛대를 꺼내 식탁에 불을 밝히고, 아끼던 크리스탈 잔도 꺼냈다. 오랜만에 풍성한 식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으니 눈물이 먼저 달려 나와 목이 메었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가장 먼저 남편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며 말했다.

"여보, 비록 금전적 재산은 다 잃었지만 돈으로 따질 수 없이 귀한 보석, 우리 자식들이 있잖아요. 

저 자식들 앞에서 우리에겐 포기라는 단어조차도 사치일 뿐이에요. 

신은 사람이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는데 우리 그 말 믿고 한번 이겨내 봐요. 

앞으로 살면서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거든 우리 아들이 나에게 했던 말, 

이 반지에 새겨진 글귀를 보며 견뎌내세요." 

고개를 숙인 채 내가 끼워준 반지를 내려다보는 남편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결혼 생활 25년 동안 그 누구보다 아내와 자식을 사랑했고 가정만이 삶의 낙이었던 가장이 울고 있었다.

그 남편이 가여워 격하게 물결치는 어깨를 안고 토닥이자 남편은 내 가슴에 무너져 통곡했다. 

그동안 '어떻게 이 지경까지 만들었느냐'라고 남편을 원망하고 가시 돋친 말로 

남편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던 나의 어리석은 모습이 그때서야 보였다. 


그리고 스물세 살 큰 딸, 열아홉 살 작은 딸, 열다섯 살 아들의 손가락에도 반지를 끼워 주며 힘주어 말했다.

"앞으로 엄마 아빠는 힘든 일 거친 일도 마다하지 않고 돈을 벌어 너희들 공부만은 뒷바라지할 거야. 

그러니까 너희들이 가졌던 꿈, 미래, 버리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흔들림 없이 너희들의 길을 가거라. 

가난하다고 꿈조차 버린다면 그건 너희들의 미래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의 삶마저도 송두리째 버리는 것과 같은 거야. 우리는 서로서로에게 희망이며 꿈이라는 걸 가슴에 새기고,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앞만 보고 가거라."

그날 우리 가족은 서로 안아 주고 보듬어 주며 눈물에 젖은 밥을 먹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다시 힘을 얻을 수 있게 해주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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