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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다 Dec 19. 2024

椰林晴雨[야림청우] (1)

야자수 숲에서 빗소리를 듣다


1.

나는 허무하게도― 잔잔한 파도에 내동댕이쳐진 후 외톨로 물속에 먹혀들었다. 솟아오른 마루보다 파고가 깊었다. 나는 호흡이 가빠졌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나를 수저 더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는 것만 같았다. 그때, 리시코드가 내 발목을 힘껏 잡아당겼다. 서핑보드가 물면 위로 퐁― 튀어 오른 것이다. 거꾸로 매달린 내 몸이 뒤로 당겨지더니 반도 안 되는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나는 온몸에 죽― 힘이 빠졌다. 더 이상 숨 쉴 필요가 없어진 양 가쁘던 숨이 나른해지더니 안온함마저 느껴졌다. 심해가 끝나는 지점 추근추근한 모래밭에 묻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이대로 가라앉아 내 의식이 그곳에 발 묶였으면 좋겠다고 아주 잠깐 바랐다.


내 전신은 휘휘 말렸다. 그 바다는 코코넛 야자수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초록이 비친 거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발끝이 정수리에 닿는가 싶더니 동그랗게 말린 몸이 물살을 따라 뱅글뱅글 돌았다. 일명 통돌이였다. 휘말리면서 나는 과연 몇 바퀴를 도는지 세어보기까지 했다. 하나, 둘, 셋― 위기 속에서 이렇게 태만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게 괘씸했는지 바다는 품의 바깥으로 나를 뱉어냈다.


빗물과 바닷물과 이도저도 아닌 것들이 섞여 입안으로 들이닥쳤다. 온도가 높은 짠맛이었다.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의 귀결로 나는 곁에 있는 보드를 꼭 끌어안았다. 망망대해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한참을 혼자서 낑낑 대다 겨우 보드 위로 올라와 엉덩이를 붙여 앉기에 성공했다. 혼자이지 않았던 적은 없던 터인데 서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뜨끈하게 젖은 눈가를 닦아 냈다.


 *


나는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열여섯 살 차이가 나는 언니와 같은 방을 썼다. 언니와 나는 나이 차만큼 평행하는 이층 침대에 누워 닿을 수 없는 각자의 밤을 보냈다. 내 기억이 더듬어지는 순간부터 언니는 아래층 침대의 주인이었기에 나는 위층의 객이 되었다. 객은 주인에게 함부로 말을 걸 수 없었다. 내가 거는 대화가 괴로움 자체인 누군가를 마주한다는 건 생각보다 쓰라린 일이었다.


언니의 머리맡에는 붉은색 카세트가 놓여 있었다. 그래, 말린 장미색. 그렇네. 꼭 시들어 부스러지기 전 큼큼한 내음만이 조금 남아있을 것 같은 메마른 색. 언니는 한동안 라디오의 말소리를 카세트 테잎에 녹음하는 데에 거의 미쳐있었다. 언니는 맥락 없이 흩어지는 말의 조각들을 이어 붙였다. 버튼을 누르는 딸깍딸깍 소리가 바쁘게 움직일 때 이층 침대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언니는 무인도에 홀로 남겨져 조난신호를 보내는 사람 같았다. 절박해 보였다. 부감으로 바라보게 되는 그런 언니의 모습은 어쩌면 영화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밤이면 나는 레코드와 플레이, 스탑 버튼이 튕겨 나오는 소리와 테잎에 기록된 내용이 수시로 감기는 구간들을 반복적으로 들어야 했다. 나는 그 시끌벅적한 밤들로부터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가 가장 고독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카세트 테잎을 반대편으로 뒤집어 함께 노래나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언니가 만들어내는 백색잡음들을 듣다 보면 나에게 언니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더 정교하게 각인되었다.


긴 밤 동안 나만의 섬을 만드는 법을 배워 나갔다. 온 힘을 다해 몸을 활짝 펼쳐보아도 손끝 하나 침대 테두리에 닿질 않는 게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나는 또래보다 몸집이 작은 아이였다. 마음을 걸칠 곳이 없을 때는 손가락 하나라도 얹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나마 낮은 천장에 닿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손톱으로 벽지를 꾹 누르면 생기는 홈을 따라 의미 없는 모양들을 그리곤 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나는 줄곧 바다를 그렸던 것 같다. 내 작은 몸 하나로도 가득 차는 작은 배에 올라타 나는 그 밤들을, 어딘지 모를 어디론가를 표류했다.



*


- 헤이!


다급한 소리가 나를 향했다. 안개처럼 내리는 비의 장막에 가려져 잘 알아보지 못했지만 소리의 주인은 나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달달하고 간지러운 귤꽃 향기도 함께 풍겨왔다. 시야로 불쑥 들어온 손바닥에 나도 모르게 손뼉을 맞췄다. 서핑보드에 앉아 얼결에 하이파이브를 성공한 게 뿌듯해 싱겁게 웃어버렸다. 그리곤 기쁜 감정이 부질없어 고개를 숙였다. 물에 비친 얼굴마저 멋쩍어 괜히 젖은 얼굴을 다시 한번 적시려는데 큰 너울이 보드를 꿀렁였다. 하마터면 또 한 번 물을 먹을 뻔했다.


손을 내민 건 난하이였다. 난하이가 방금 전의 하이파이브를 칭찬하듯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보드를 끌고 내 옆을 지나갔다. 근두운을 모는 손오공처럼. 난하이의 웃음소리가 귤꽃 향기를 타고 바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후해의 서퍼들은 닉네임을 이름처럼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소년이라는 뜻의 난하이라 불리는 그는 웃음소리가 정말 소년 같다. 악의 없는 악동 같다. 난하이는 세상의 어떤 무게도 펼 수 없는 근사한 주름을 지으며 멋지게 웃는다. 보드와 보드 간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냉랭한 바다 위에서도 그 온기가 전해질만큼.


  - 헤이!


이번에는 바다의 오른쪽, 야자나무 숲을 돌아 나오는 리프 포인트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말린 장미색 보드를 탄 서퍼가 난하이의 새파란 보드로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한쪽 보드가 누군가의 보드를 타고 넘을 것 같았다. 혹은 딩이 나거나 반파가 되거나 누군가 다치지 않는다면 싸움이 나거나. 나는 공존하는 관계에 대해 서툰 사람이라 한쪽이 한쪽을 먹는 방법 외에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난하이는 넉살 좋게 웃으며 말린 장미색 보드를 탄 서퍼와 바쁘게 수신호를 주고받았다. 둘은 우왕좌왕하는 듯 보였다. 말린 장미색 보드를 탄 서퍼가 난하이의 한 팔 간격 안에 들어왔을 때 둘은 노즈를 스윽 돌리더니 평행으로 맞춰 달렸다. 난하이가 건너편 보드 위로 뛰어올랐다.


말린 장미색 보드 위에서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맞잡고 중심을 잡기 위해 흔들렸다. 탱고를 추는 것 같기도 하고, 개다리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파도 위를 달렸다. 길지는 않았다. 곧바로 둘은 물에 빠졌다 나오더니 바닷물과 폭소를 동시에 입에서 뿜어냈다. 우중에도 구름 뒤로 해가 나왔다. 물비늘이 찬란했다. 빗발이 간결해져 두 사람의 곁으로 빗물의 결너비가 무늬처럼 깔렸다.


두 사람은 밀려나간 보드를 주우러 뭍으로 헤엄쳐 나갔다. 파도는 끊임없이 바다를 떠나 모래밭에서 하얗게 부서졌다. 그곳, 뭍을 향해 각자마다의 파도를 영유하는 후해 서퍼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거품처럼 몽글몽글한 눈을 하고 파도와 사람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나는 파도를 잡을 생각은 않고 한참 그들을 바라보았다. 내 삶과 달리 서핑을 할 때 바라보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취할 만큼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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