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글빙글의 이유

by 하늘위로

김이분 할머니가 다시 밥을 지어 식사를 하고, 마당을 쓸고, 화단에 물을 뿌리고 다시 집 가득히 꽃을 피워냈을 때, 이웃이 소식을 가져왔다.


그놈 나왔어요!


겨우 3년 남짓한 시간이다. 서재훈 할아버지의 목숨 값이 너무 쌌다. 할머니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분했다. 살인자가 사는 집은 이곳에서 멀지 않다고 했다. 눈물 흘리며 사과하던 살인자의 어미가 생각났다. 김이분 할머니는 가슴을 툭툭 두드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겠지,

그런다고 돌아올 할아버지도 아니고...


그럼에도 할머니는 그의 소식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그런 억울한 죽음은 할아버지가 마지막이길 원했다.


강승도의 삶은 살인 전후로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살인을 하고도 3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뿐이다. 그의 손은 이미 살인을 경험했고, 수십, 수백의 사람을 죽이는 게임을 하면서 그날의 흥분을 되새겼다. 그럼에도 따분한 삶이다. 그는 서랍 속에 숨겨둔 칼을 보았다. 이 참에 유도 유단자였던 그 점주도 죽여봐? 승도는 계획만 잘 짜면 불가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단, 그를 죽이게 되면 계획범죄를 의심받게 되고, 이미 전과가 있어서 가중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뭐, 그래도 무기징역이나 사형은 쉽게 주어지는 게 아니니, 만일을 대비해 그럴듯한 정신과 상담을 미리 받아놓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일 딱히 할 것도 없는 무료한 삶, 취업은 더 어려워졌고, 가족들마저 그와 대화하는 걸 꺼린다. 그의 세상은 현실에선 소멸되었다. 그는 인터넷으로만 세상과 만났다. 게임을 하면서 느끼는 흥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의 마음을 끄는 누군가를 만나게 됐다. 정모에서 실제로 만난 그녀는 그녀의 닉네임처럼 빛나는 별이었다.


강승도의 이름이 연일 신문 지면에 올랐다. 피해자는 23세 한영지. 가정 형편이 어려웠지만, 밝고 책임감 강한 20대였다. 입학금을 구할 수 없어 어렵게 붙은 대학교 진학을 포기했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았고, 그 후에 열심히 돈을 모아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했다. 학업에, 돈벌이에, 집안일에 지쳤을 땐 한두 시간씩 온라인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게 그녀의 유일한 취미생활이라고 했다. 게임을 하면서 마음 맞는 친구들이 생겼고, 처음으로 정모에 참가했다. 그리고 그곳에 강승도가 있었다. 그게 그녀의 불운이었다.


가난이 그녀의 불행이라고 생각한 적 없던 밝은 20대 청년은 그렇게 짧은 생을 마감했다.


법정에서 강승도는 또다시 심신미약과 정신질환을 호소했다. 그녀가 자신의 호의를 무시했으며, 그 점이 결국 자신의 심리상태를 악화시킨 거라 했다.


소식을 들은, 김이분 할머니는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어쩌나, 어쩌나... 끙끙 앓으며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운 할머니는 유족을 찾아갔고, 용기를 내 법정에 섰다.


... 범죄자를 제대로 벌하지 않으면, 그는 흉기가 되어 또다시 세상을 활보하게 됩니다. 그는 두 번의 살인으로 자신이 달라질 수 없음을 증명하였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가해자의 반성으로 달라질 그의 미래보다 어찌해볼 도리 없이 도륙당한 피해자의 미래를 더 헤아려주셨으면 합니다.


사회적 이슈도 되었기에 그는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그럼에도 김이분 할머니의 분은 풀리지 않았다. 그가 제대로 처벌 받았더라면 두번째 희생자는 없었겠지. 정신질환으로 감형을 받는다면, 그건 감옥 대신 범죄자 전용 정신병원에 수감되는 것을 전제로 해야한다. 김이분 할머니는 답답했다.


그날 이후 김이분 할머니는 가슴이 옥죄이듯 답답해졌다. 때론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였다. 갑갑함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할머니는 집밖으로 나갔다.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가슴이 조금이라도 풀릴 때까지 몇번이고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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