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왔지만, 봄이 오지 않았다. 할머니의 삶에 봄은 없었다. 바싹 말라 물기 하나 없는 식물처럼 메마른 삶을 살던 김이분 할머니는, 더 이상 연명하기를 포기했다. 커다란 꽃화분 같았던 할머니네 집은 사람의 손길이 사라지자 금세 폐허처럼 황량해졌고, 시들어갔다. 할머니는 마루에 송장처럼 누워 이대로 집과 함께 시들겠다고 생각했다. 흙이 되어 어서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었다.
ㅂㄴㅈㅅㅇㄷㆍㄱㅅㅇ
그런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환청처럼 계속 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할머니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방문자는 있을 리 없다. 이웃들은 할머니가 먼 친척 집으로 떠났다고 알고 있을 터였다. 실제로 조카네가 집 주변으로 이사오지 않겠냐고, 서로 의지하며 살자고 제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체취가 남아있는 이 집을 떠날 수 없어 거절했다.
소리는 계속됐다. 할머니는 아기 고양이라도 숨어 들어온 것인가 싶어 물그릇을 들고 여기저기 찾아 헤맸다. 집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할머니였지만 끝내 고양이는커녕 쥐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누가 부르는 듯한 웅얼거림이 계속해서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할머니는 귀를 탁 틀어먹었다. 귀신인가? 도둑인가? 나에게 또, 더 나빠질 일이 있단 말인가! 귀신이거든 어서 나를 데려가고, 도둑이면 전부 다 가져가시오. 다만, 정체불명의 이런 끔찍한 소리는 내지 마시오. 제발, 제발, 제발... 할머니는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또옥, 똑똑...
한 방울, 두 방울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후드득 비가 한바탕 쏟아진다. 마루에 쓰러진 할머니 얼굴에 빗방울이 튀기 시작한다. 할머니가 눈을 떴다. 목이 탔다. 고양이를 주기 위해 떴던 물을 할머니가 벌컥벌컥 마셨다. 떨어지는 비를 보며 할머니는 펑펑 울었다. 빗소리가 울음소리를 삼켜주었고, 흐르는 눈물은 빗방울이 가려주었다. 할머니는 맘 편히 오열하며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나자, 딱딱해진 심장이 부드러워졌다. 할머니는 밥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