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죄는 살인이다. 이유 없이 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살인자다. 그는 그것이 우발적인 일이라고 했다.
27세, 강승도 씨는 수면제를 먹어도 잠들 수 없는 불면증을 앓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받은 이력이 있다고 했다. 잦은 지각을 이유로 아르바이트에서 해고되자 그는 칼을 준비해 편의점 주변을 맴돌고 있었는데, 유도 전공자라는 점주의 우람한 체격에 포기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주머니엔 지각한 시간만큼 제하고 정산받은 17만 4천 원이 전부였다. 하루 5시간씩 딱 4일 했다. 지각으로 인해 그마저도 제대로 시간을 채우지 못했다. 이 상태라면,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은 물 건너갔다. 부모님은 용돈 일체를 끊었기 때문에 이걸론 핸드폰 요금도 간당간당하다. 짜증이 솟구치는 날이었다. 대로변 과일가게의 과일들이 탐스러웠다. 순간, 단맛이 확 당겼다. 그러나 과일 가격은 지나치게 비쌌다. 낱개론 팔지도 않을 듯 해 낱개 가격은 묻지도 않았다. 생수 한 병 구매해 마시고 나니, 온 세상이 적으로 느껴졌다. 지들만 좋은 세상이지... 분노가 솟구쳤다.
그때 서재훈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두 손 가득히 과일을 들고, 환하게 웃음 띤 얼굴로 그를 지나쳐갔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살인의 이유였다. 법정에서 그는 의도된 살인이 아니었으며, 순간적으로 저지른 실수라고 진술했다. 평소 조울증도 있었고, 불면증 치료를 위한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정신적으로 몹시 불안한 상태였다는 의사의 소견서도 제출했다. 청년 실업과 아르바이트 실직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있었으며 평소, 범죄가 없었던 점을 참작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뼈저리게 반성한다며 눈물을 흘렸고, 변호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이는 분명, 청년 실업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빚어낸 한 순간의 실수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잘못이 전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변호사는 살인의 죄가 중하기는 하지만, 사회적 스트레스로 극심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던 한 젊은이의 앞길을 열어달라며 변론을 마무리지었다. 1심에서 징역 5년이 구형됐고, 2심에서 징역 4년으로 형이 확정됐다.
정신질환, 반성, 청년 실업...
그게 양형 사유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서재훈 할아버지가 왜 그의 정신질환을, 죽음으로 배려해야 하는가?청년 실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왜 서재훈 할아버지가 죽음으로 책임져야 하는가? 살인자의 반성을, 왜 피해자가 아닌 사회가 용서하는가?
어쩌면, 김이분 할머니도, 서재훈 할아버지도 그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져 선처해주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 그 누구에게도 용서한다는 의사표현을 한 적은 없었다.
그 후, 살인자는 착실한 수감생활로 3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수감 생활 내내 숙면을 취하던 그는, 사회로 나오자, 또다시 밤낮없이 게임에 빠졌고 불면증에 시달렸으며 수면제를 처방받고, 불성실한 태도로 세상의 외면을 받자, 또다시 분노가 솟구쳤다. 그렇지만 그는 자유다. 세상을 활보한다.
의사에 의하면 향후 기대수명 20~30년, 신에 따르면 남은 수명이 32년쯤 됐던 서재훈 할아버지는 땅 속에 갇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