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목걸이와 프랑스혁명이 무슨 관계?
한 왕비를 죽음으로 몰고 간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있다. 프랑스 역사상 희대의 사기 사건이자 프랑스혁명을 점화시킨 역사적 사건에 연루된 다이아몬드 목걸이다. 왕실 보석상인 뵈머가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다이아몬드 647개를 모아 만든, 총 2800캐럿짜리 목걸이. 그 목걸이가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무슨 사연일까.
마리 앙투아네트는 14세 때인 1774년,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비 자리에 등극했다.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인 그녀는 ‘작은 요정’이라 불렸다. 사교·관극·수렵·미술·음악 등의 모임에 아름다운 외모를 드러내며, 검소한 국왕 루이 16세와는 달리 사치를 즐겼다.
사건의 발단은 1772년 루이 15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루이 15세는 자신의 애첩인 뒤바리 부인을 위해 왕실 보석상인 뵈머에게 최고의 다이아몬드를 모아서 목걸이를 만들어 오라고 명했다. 그러나 그만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 줄 사람이 없어져 버렸다.
뵈머는 새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이 목걸이를 사달라고 간청했다. 비록 ‘적자 부인(赤字夫人)’이라는 빈축을 사기도 했던 앙투아네트지만 목걸이가 너무 비싸다고 거절했다. 프랑스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알았고 그녀가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던 것 같다. “목걸이를 스카프 같다”라고 평했다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