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출력해 주면 안 돼요?

끊임없이 요구하는 아이

by 정혜영

"선생님, 브롤 스타즈 알아요?"

태양이(가명)가 내게 던진 첫 질문이다. 태양이는 경계선에 있는 아이이다. 인지 능력이 너무 떨어지지는 않으나 학과 수업을 따라가기에는 약간 버거운. 말을 할 때 목소리 강약 조절이 잘 안되어서 작게 말해도 될 것을 큰 소리로 말해서 수업 중에 우리 모두를 종종 깜짝 놀라게 하는 아이다.

태양이는 브롤 스타즈 찐 팬이기도 하다. 등교하자마자 브롤 스타즈로 시작해서 브롤 스타즈로 끝나는 태양이의 끊임없는 이야기. 나는 알지도 못하는 캐릭터 얘기를 아침부터 목에 숨이 차오르도록 흥분해서 얘기하는 태양이의 모습을 보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숭고한 자세가 느껴질 정도다.


2학년 첫날, 올 해는 어떤 아이들이 내 품으로 날아왔나, 쭈~욱 둘러보다 태양이를 발견했다. 낯익은 얼굴이다.




출생률이 점점 떨어져 미래 노년층이 급증할 거라는 우려 가득한 인구 변화 뉴스에도 아랑곳없이 신도시 주변 학교는 학생수가 넘쳐난다. 학생 수가 급증해 교실이 부족해진 학교는 활용할 수 있는 방과 후 수업 교실이 턱없이 부족하다. 어쩔 수 없이 학생들 하교가 더 이른 1, 2학년 교실을 오후에 방과 후 수업 교실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작년에 내 교실에서도 오후 방과 후 수업 하나가 주 1회 운영되었다. 1년 내내 운영되었어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아니고 다른 학년 아이들이 와서 받는 방과 후 수업이라 참여하는 아이들의 면면을 알기는 어렵다.


여느 때처럼 방과 후 수업을 위해 서둘러 교실을 비우고 나갔다가 필요한 것을 놓고 와서 교실에 다시 돌아갔던 날, 조용히 들어가서 그것만 들고 나오려고 조심스럽게 뒷문을 열려고 하는데, 문밖으로 우는 건지, 화내는 건지 구분이 쉽지 않은 아이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도 될지, 망설이며 서 있는데 아이는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당황스러워하시는 방과 후 강사 선생님과 어찌할 바 모르는 다른 아이들, 그리고 소리 지르는 남자아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께 눈짓을 드리고 아이를 밖으로 불러내어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다. 방과 후 선생님이 수업이 있는 날에 수업을 열심히 하는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작은 문구류로 보상을 하시는 모양이었다. 그날 자기가 받고 싶던 물건을 받지 못해서 선생님께 그렇게 달라고 떼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이의 담임교사도 아니고, 무턱대고 아이에게 뭐라 할 수도 없어서 잘 달래서 들여보냈다.




태양이가 그때 그 아이 었다.

태양이는 자신의 욕구를 관철하는데 나름의 방식을 터득한 아이 같았다. 원하는 물건을 달라고 떼를 쓰는 습관은 그날 하루만 어쩌다 생긴 것이 아니었다. 태양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그림을 그리려면 보고 그릴 캐릭터 그림이 필요했다. 태양이는 매일 아침 등교하자마자 내게 캐릭터 그림을 출력해 달라고 했다. 처음 몇 번은 출력해 주다가 개인 욕구와 학교 물건을 구분할 필요는 있을 것 같아서 그림은 집에서 출력해 오라고 했다. 그런데도 태양이는 집에서는 안 가져오고 내게만 출력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1학년 방과 후 선생님에게처럼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것은 아니었지만,

"왜 학교에서 출력해 주면 안 돼요?"

라는 질문을 내가 대답을 해 주고 해 주다 지쳐서 출력해 줄 때까지 반복해 물었다. 태양이는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을 때까지 그것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에 지치는 법이 없다. 요구받는 사람이 어르고 달래고 엄하게도 말해보다가 먼저 지친다. 태양이는 이때가 결국은 올 거라는 것을 아는 아이다.


이렇게 해서는 담임교사가 아이의 요구에 질질 끌려가는 판국이 되고 만다. 다른 아이들과의 형평성에 있어서도 문제다.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묻는데, 교사인 나는 아이에게 대답만 하고 있었다는 자각이 왔다. 나도 이번엔 달리 해봐야겠다.

태양이가 또 출력을 해 달라고 한다. 안된다고 했다.

"왜 학교에서 출력해 주면 안 돼요?"

또 태양이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이번엔 나도 반문했다.

"왜 안된다고 생각해?"

태양이가 예상치 못한 반격을 맞이한 표정이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학교 프린터는 공부할 때 쓰는 물건이니까요?"

내가 그동안 했던 말을 의문문으로 바꿔 반문한다.

"태양이가 잘 아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프린트는 집에서 해 와야 해요."

왓! 태양이가 물음표가 아니라 마침표로 말한다! 마침표로 말을 끝낸 태양이는 다음 질문을 더 하지 않고 순순히 자리로 돌어갔다. 태양이는 자기 욕구가 채워질 때까지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자기 말로 답을 하니 스스로 그만두다니.

태양이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몇 번 똑같은 질문을 했다가 나의 똑같은 되질문을 받고 스스로 답하고는 자리로 들어가더니, 그 뒤로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물어보는 것으로 태세를 전환했다. 태양이가 브롤 스타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에, 나는 태양이가 매일 떼써서 받아가던 브롤 스타즈 그림 출력물을 태양이가 수업에 집중하여 참여한 날의 보상물로 주었다. 그렇게 나는 태양이의 "왜 학교에서 출력해 주면 안 돼요?"라는 질문의 덫에서 놓여났다.




3학년 올라간 태양이 소식을 종종 듣는다. 브롤 스타즈 그림 출력물을 얻어내기 위해 모르는 선생님께도 출력을 부탁한다는. 아니 요구한다는. 한 번 출력해주기 시작하면 그 선생님이 안된다고 할 때까지 그 교실을 찾아온다는.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한 태양이의 끊임없는 도전정신은 따라가기 어려운 자질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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