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우리집 값

아이들도 보는 아파트 매매가

by 정혜영
엄마에게 50억짜리 아파트와 천만 원짜리 에르메스 가방을 사 줄 거다.

'꿈 프로젝트'라는 교육과정 계획에 따라 미래의 꿈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시간이었다. 미래의 꿈에 대해 그림을 그리고 글로 써 보라는 학습지에 민호(가명)가 쓴 내용이다. 설명 위에는 커다란 집과 반짝반짝 빛나는 가방을 든 여자의 모습도 그려져 있었다.

민호는 50억이라는 돈이 얼마나 큰돈인지 알기나 할까. 명품 브랜드 이름을 잘 모르는 내가 2학년 아이 입에서 '에르메스'라는 이름을 듣고 검색해 볼 줄은 몰랐다. 요즘 애들은 모르는 게 없다. 아이들은 어디서 저런 이야기를 듣는 걸까.




학교 바로 옆 아파트에서 사시는 동학년 선생님 중 한 분이 들려주신 이야기다. 아이랑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엘리베이터 내벽에 '1층 6억, 4층 6억 5천에 매매되었음. 입주민들은 정확한 사실을 인지하시기 바람.'이라는 종이가 떡 하니 붙어 있더라는 것이다. 급매로 더 싸게 내놓은 집들이 아파트 단지 가격을 떨어뜨릴까 봐 붙여놓은 문구였다. 아이랑 같이 보게 되어 민망해서 혼났다고 하셨다.

학교 바로 옆이니 우리 학교 학생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다. 내가 사는 곳이 아니어서 처음엔 잘 몰랐지만, 아이들이 들려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통해 그 아파트 4층에만 요즘 유행한다는 '테라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수업 시작 전에 주말 지낸 이야기를 잠깐 나눌 때, 테라스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네, 테라스에서 아빠가 만들어준 풀장에서 물놀이를 했네, 하는 말을 몇몇 아이들에게서 들었던 터다. 그땐 별생각 없이, 우와~ 좋겠. 선생님도 집에 테라스가 있었으면 좋겠네~ 하고 지나갔는데, 이 말을 듣고 보니 그렇게 반응할 게 아니었나 보다.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었다면 입주자 주민 대표회에서 붙였을 테고, 그 선생님이 탄 엘리베이터 한 곳에만 붙여 놓은 건 아닐 텐데... 그것을 보는 우리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종이를 어른들만 볼 거라고 생각한 것일까. 아파트 놀이터에서 같이 놀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그 종이를 보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상상하기 싫어진다.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때, 살던 곳이 지방 소도시라 아파트라는 주택 구조가 흔하지도 않았고, 지금처럼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서던 때도 아니어서 '아파트에 살면 부자'라고 생각할 때다. 우리 학교 근처에 아파트 단지가 한 동 있었는데, 언덕배기에 위치해 있는 높은 건물이 낮은 다른 집들을 다 내려다보고 있는 모양새로 위치해 있었다. 학교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살던 나는 등굣길에 학교에 가까워 올 수록 함께 가까워지는 그 아파트가 햇빛을 역광으로 받을 때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에 눈이 부시곤 했다.


국민학교 6학년 막 올라갔을 때였다.

학급 임원 선거를 하는 날이었다. 민주적인 투표로 학급 임원을 뽑는다고는 하나, 임원 후보는 성적순이었던, 참 이상한 민주주의 시대였다. 하고 싶은 학생이 손 들거나, 친구의 추천으로 후보가 되는 요즘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성적순으로 남자 1, 2, 3등, 여자 1, 2, 3등, 이렇게 6명의 후보들 중 이미 남학생 1명이 반장으로 선출되고, 부반장을 선출할 차례였다. 부반장은 남, 여 각 1명씩 뽑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자 셋 중 한 명은 무조건 뽑히게 되어 있었다. 각자가 나와서 간단한 후보 연설을 하고는 투표에 들어가기 직전, 선생님께서 한 말씀만 하신다며,

"우리 학급을 대표하는 학생을 뽑는 중요한 일이니 신중하게 생각하고 투표를 해야 하는 거야. 대표를 하려면 공부도 잘하고 모든 면에서 모범적이어야 하지만, 대표 엄마께서 학교에 오실 일도 많고 학교 일에 협조할 일도 많으니까 가정 형편도 고려해야 돼. 그런 것을 생각해서 투표하도록."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학생 후보들 중 나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이 그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몰랐다면 더 나았을까. 학급 임원들 가정에서 학기초에 교실 화분이나 청소용품도 들여주고 소풍 가면 선생님들 점심도 바리바리 싸들고 따라오던 시절이었다. 우리 엄마는 혼자 아이 셋을 키우시느라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셔서 학교 일에 신경을 쓰기 어려우신 분이셨다. 그래도 내가 속이 없었던 것인지, 난 우리 집이 다른 친구들보다 형편이 어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 날 명확히 알았다. 내가 학급 임원이 되면 선생님이 곤란해질 수 있다는 것을.

차라리 애들이 아파트에 살 던 두 여자 아이들 중 한 명을 뽑았다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텐데, 내 표가 더 많이 나와 버렸다. 선생님 얼굴 표정이 어땠는지 모르겠다. 1학기 내내 선생님 심부름을 더 열심히 하고 공부를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보답(?)은 그것뿐이었으니까.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다행히 성적순으로 후보가 되지도 않았고, 선생님께서 가정 형편 얘기를 하시지도 않았지만, 그때 이후로 난 어딘가의 대표가 되는 게 싫다. 내가 대표가 되어 곤란해질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까.




요즘은 너나없이 네모난 아파트 단지에 살아서 외형적으로는 그런 구분이 잘 안되어서 오히려 좋겠다,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서로를 구분 짓는 방법은 참 창의적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내벽에 붙은 메모가, 내가 사는 4층은 네가 사는 1층보다 5천만 원 더 비싸다는 것을 명심해, 라고 말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아파트 가격은 아파트 단지 사이트에서나 공유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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