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들이 '좋아 죽겠는' 일

by 정혜영


"엄마, 너무 기대돼!"


좀처럼 감정을 숨길 줄 모르는 아들 녀석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방 벙싯거렸다.

녀석이 작년까지 참여하던 미술 프로그램이 하반기에 코로나로 취소되었다. 초등학생까지만 운영하던 프로그램이라 중학생이 되면서 이제 안녕, 이라고 아들이 매우 서운해했었다. 그런데 기관에서 작년에 못다 한 프로그램을 올해 연계해 운영하기로 결정을 했나 보다.


그러다 보니 아들 녀석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최초이자, 아마도 최후가 될 중학생이 될 예정이다. 작년에 할 때도 6학년은 자신을 포함하여 2명밖에 없었다고 하니, 이 두 학생이 이 프로그램의 유사 이래 유일한 중학생이 될 터다.

다시 프로그램을 재개한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녀석은 그렇게 좋은지 며칠 전부터 기쁨과 설렘 속에 고조되어 구름 위를 걷는 상태였다.


이제 중1이 된 아들 녀석이 가진 유일한 재주가 '그리고 만드는' 거다. 아직 손 소근육 발달이 원활하지 않았던 서너 살 때, 연필이나 색연필을 손에 쥘 수 있던 시기부터 아들 녀석은 그렇게 뭔가를 그려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모두 예술가로 타고나는 것이니, 그쯤이려니 생각했다. 일과 육아, 가사를 병행하던 시절에 매일 수십 권의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던 첫 아이에게 그만 질렸던지,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먼지를 골똘히 쳐다보고 만져보다가 결국 입으로 가져가며 혼자 놀던 둘째가 마냥 고마웠다.


'네가 벌써 효도를 하는구나!'


나에게 숨 쉴 틈을 주는 아들 녀석의 혼자 놀기를 내 좋을 대로 그렇게 해석했다. 아이가 혼자 놀면 놀수록 그냥 기특하게만 바라봤다니, 이런 미련한 엄마 같으니라고.

취학 전 유아기 아동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짝이 없는 엄마였다. 그러다 아이가 3살이 넘어도 할 줄 아는 말이 "엄마", "아빠" 외에 몇 마디 없다는데 뒤늦게 심각성을 느꼈다.


아이의 말귀를 터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부랴부랴 녀석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결국 성공하진 못했지만.

아들 녀석은 책에 관심이 없었다. 그 대신 다른 데 관심이 있었으니, 그것은 음악이 나오는 'CD 플레이어'나 '진공청소기', '선풍기', 그리고 '자동차'류 였다. CD 플레이어로 시작해서 청소기와 선풍기로, 자동차로 옮겨가는 수순이었다. 매일 이것들을 그리고 또 그리는 것이었다.

아들이 4살 때 그린 그림들이다. 진공 청소기 그림 겨우 찾았네..^^ ©그루잠

처음엔 아이가 가전제품에 관심이 있나 보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녀석은 냉장고, TV, 전자레인지 등엔 관심이 없었다. 녀석이 관심 있어하는 전자 제품은 상대적으로 생김새가 역동적이고 소리를 내는 것들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했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은 그림책을 읽고 엄마와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수많은 어휘력을 흡수하던 시기에 녀석은 전자 제품을 관찰하고 제품의 몸체 한 부분, 한 부분을 그리며 많은 시간을 그리고 또 그렸다. 1만 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굉장한 시간에 걸쳐 같은 그림을 계속 그려댔으니 당연히 그림은 진화할 수밖에 없었다.


한글 공부를 따로 시킬 생각 없이 책으로만 자연스럽게 글과 친해지게 하겠다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그런 나의 계획 안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녀석에게는 한글을 따로 가르쳐 주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책을 싫어하는 아이가 한글도 못 떼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초등학교 선생인 엄마가 좀 창피하겠다는 걱정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자 글을 싫어해도 사람은 좋아하던 녀석이 친구들 신발장에 적혀있던 친구 이름 글자와 친구를 연결시켜 몇 번을 반복해 읽더니 알아서 한글을 뗀 것이었다.

아들이 한글을 익힌 과정을 보고 표음문자인 한글의 우수성을 또 한 번 깨달았다. 그렇게 한글을 읽게 되자 글자를 유창하게 읽을 줄은 아는데 뜻은 모르는, 녀석은 책 안 읽는 한글 터득아가 되었다.


한글을 읽고 소리 나는 대로 쓸 줄 아니, 초등학교 1학년 때 받아쓰기에서 거의 100점을 받아왔다. 받아쓰기 점수만 본다면 이 아이는 굉장히 한글을 '잘' 터득한 아이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들을 아는 나는 아이가 100점 받아 온 그 문장들의 뜻은 정확히 다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 교사들이 받아쓰기 등으로 놓칠 수 있는 맹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읽고 쓸 수 있어도 이해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그래서 녀석의 상황을 잘 아는 나는 그렇게 매일 밤 베드타임 스토리(bedtime story - 침대 맡에서 책 읽어주기)를 했던 것이다.


베드타임 스토리 관련 글:

https://brunch.co.kr/@gruzam47/72


올해 중학생이 된 녀석은 여전히 책을 읽고 이해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스스로 읽고 이해하는 것을 늦게 시작했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이로 인해 중등 과정의 학습에 더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먼저 시작한 다른 것으로 인해 많은 시간을 행복해한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나는 여전히 미련한 엄마일까.

아이들은 타고난 대로 배운다. 스스로의 방식대로 배워간다. 때로는 가르치지 않았는데 알아서 배우기도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더 못 가르쳐서 안달하는 것일까.

집도 하고 옆 집도 하는데 나만 안 하면 내 아이만 뒤쳐질까 봐 걱정하는 것은 엄마의 걱정인가, 아이의 걱정인가?


이것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질문이었다. 아들 녀석은 미술로 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공부를 많이 할 필요가 있냐고 묻는다. 그러게나 말이다. 엄마도 잘 모르겠다. 미술을 하는데 과연 미적분이 필요한 것인지.

그래도 공부가 안되면 예고고 뭐고 없다, 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녀석은 오늘도 엄마가 끊어 준 학원에 간다. 대한민국에서는 미술을 해도 공부를 잘해야 한다니, 가진 것 없는 평범한 부모인 나는 우선은 공부하라고 채근할 수밖에 없다.


그럼 우린 언제가 되어야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마음껏 하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아이가 좋아서 미치겠는 일을 미뤄두고 지금은 이차방정식 문제를 먼저 풀 때야, 라는 게 맞는 건지.

대한민국에서 교육계에 몸 담은 시절이 꽤 되었어도 모르겠다. 자식 교육은 어렵기만 하다.


아들, 엄마도 잘 모르겠으니, 오늘은 그냥 네가 좋아 죽겠는 일을 먼저 하자. 내일 걱정은, 그냥 내일 하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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