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싫어하는 남자아이, 책과 친해지려면

엄마와 아이가 함께 행복해지는 베드타임 스토리

by 정혜영


한 아이 어머니로부터 상담 요청이 들어왔다.

내용인즉슨,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면서 하는 말이 거칠더라는 것이었다. 아이보다 윗 학년 아이들과 축구교실을 계속 다니다 보니, 형들로부터 거친 말을 듣고 배우는 모양이라고, 학교 와서도 반 친구들에게 그럴까 봐 걱정된다고 하셨다.


외동아들로 구김살 없이 자란 밝고 명랑한 아이였다. 형제간 서열 다툼 없는 아이 치고는 예의도 바르고 싹싹하기가 이를 데 없는 아이이기도 했다. 주변 어른들과 대화를 많이 해서인지, 2학년 아이 치고는 또래보다 말도 잘했고,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아이였다.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은 티가 뚝뚝 묻어나는 그런 아이 말이다.


다만(선생이 사용하는 말은 이 '다만' 뒤의 말을 하기 위해 서두가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오지랖이라고나 할까, 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다 참견하려 드는 것이 동네 통장 저리 가라다. 말 많고, 참견이 많다 보니 득보다는 실인 경우가 많고, 본인 의도의 순수성을 떠나 일이 꼬이면 자신의 무관을 드러내느라 변명이 길었다.


아이 엄마가 걱정하시는 바를 잘 알고 있지만, 장점과 단점이 없는 아이가 없고 타고난 기질을 바꿀 수도 없는 것이다. 어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의 기질을 180도 바꾸어주는 일이 아니라, 그 기질을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향하게 돕는 가다.


이 아이는 타고난 호기심으로 주변의 모든 상황과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그렇다 보니 또래 간 관계 형성을 빠르게 진전시키고 그 속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려 든다. 아이가 평소 어른들과의 대화를 많이 하는 가정환경에서 자라면, 또래보다 사용하는 어휘나 문장의 수, 말의 속도 등에서 또래 친구들을 앞선다. 말을 잘하는 아이가 주도권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호기심의 발로에서 좀 더 말을 많이 하던 아이가 주도권을 갖는 것은 중학년 때까지다. 다소 말이 느린 것 같고 그래서 어눌해 보였던 또래 친구들이 중학년 이후 밸런스가 맞춰지기 시작하면, 저학년 때 말을 잘해 주도적이었던 아이가 설 자리가 좁아지는 시기가 오게 된다. 그래서 내 아이가 그냥 말이 많은 아이인지, 논리적으로 적절하게 의사 표현을 하는 아이인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아이 어머니께 아이가 평소에 책을 잘 읽느냐고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그것도 걱정이라고 하시며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학교에서도 도서관을 꼭 친구들과 다녀오는데 집중해서 책을 읽지는 않아 보였다. 아이는 친구들과 도서관을 다녀오는 길, 장난치며 말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좋은 것이다. 책을 빌리고는 통 읽지 않다가 다른 친구가 반납하러 갈 때 따라가서 읽지도 않은 책을 반납하고 다른 책을 대여하는, 일의 악순환이었다.

어머니께서 책을 읽어 주시나요?


여쭤보니 읽어주고 싶어도 아이가 다른 일에 관심이 많아 옆에 앉아 있지를 못한다며,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요즘 젊은 어머니들은 아이들 조기 교육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시다는데,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방법에 대해 왜 더 고민하지 않는지, 나로서는 참 의아한 일이다.


가족이 나오는 외국 영화를 보면 자주 나오는 장면이 있지 않은가. 침대 옆에서 함께 책을 읽어주는 일명, '베드타임 스토리' 말이다. 영화에서는 아빠가 읽어주는 모습이 우리 현실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어머니가 아니던가. 아빠가 안되면 그 자리에 엄마가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아빠가 가능하다면 금상첨화다. 이 글을 읽는 이가 어린 자녀의 아빠라면 꼭 그대가 하시라, 당부드린다.

책을 읽기 싫어하는 남아인 경우,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베드타임 스토리'는 웬만한 요인을 모두 극복해 준다. 아이가 골라온 책이면 더 좋고, 아이가 선택권을 엄마에게 맡긴다면 엄마가 골라주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읽어주는 기간이 지나면 아이 스스로 원하는 책을 골라보게 하는 것이 아이가 책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지름길이다. 아이가 저학년일 때만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거부감을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6학년이 되어도 읽어주라고 하고 싶다.

그런데 이것을 엄마가 꾸준히 실천해서 결국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게 하려면. 엄마가 책에 관심 갖고 읽기를 좋아해야 한다는 뻔한 결말이 되고 만다(안다, 우리 엄마들이 얼마나 바쁘신지, 마음이 아프다, 흑).




우리 집 둘째 녀석(당연히 아들)이 그렇게 책을 싫어했다.

아무리 무릎에 앉혀 놓고 읽어 주어도, 놀고 있는 아이 옆에서 CD 틀어놓은 듯 읽어주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두 살 터울인 첫째 아이(딸)는 나를 너무 가만히 두지 않아서 피곤하게 하더니, 둘째는 나를 너무 놔두길래, 아싸, 하고 혼자 놀게 두었더랬다. 그랬더니 이 아이가 3살이 되도록 '엄마, 아빠' 외에 딱히 사용하는 어휘가 없음을 뒤늦게 알고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었다.


늦게서야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으니 효과가 빨리 나타나는 게 이상할 일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이 '베드타임 스토리'었고, 둘째가 5학년, 큰 아이가 중1이 될 때까지 이런 방식으로 매일 책 읽기를 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큰 아이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책의 수준은 항상 둘째에게 맞춰졌다. 일한다고 바쁘다는 핑계로 다른 건 빵점인 엄마였지만 이것 하나만은 해 주리라, 마음먹고 시작했던 일이었다.


너무 피곤한 날은 30분도 못 채우고 끝날 때도 있었지만, 많은 날들은 읽어주다가 오히려 내가 재미 붙어 1시간이 훌쩍 지날 때까지 읽고 있는 날도 많았다. 아이들은 이미 꿈나라로 간 지 오랜데 말이다.


그때 어릴 적 읽었던 추억의 책들을 다시 만나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어린 왕자>는 얼마나 아름다웠으며,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어주다 혼자 얼마나 자주 먹먹했었는지. <오즈의 마법사>가 어른의 마음에도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이야기라는 것을 소리 내어 읽어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이 책은 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두 번 읽어 준 책이다). 그렇게 읽어주다 보니 내 아이가 모험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아이 혼자는 읽기 힘들어했던 책, <15 소년 표류기>의 모험담을 얼마나 흥미진진해하며 들었던가.




스펀지처럼 학습하는 시기인 저학년 남자아이는 새로운 거친 용어에 당연히 관심을 보인다. 이 아이가 거친 말에 관심을 갖고 사용하려 한다면, 그때가 주저 말고 양질의 어휘 샤워를 해 줄 때이다.


말하는 것에 관심이 많은 아이이니 더 빨리 습득할 거라 말씀드렸더니, 아이의 어머니는 밝은 목소리로 '베드타임 스토리'를 꼭 실천해 보겠다, 하셨다. 어머니께 건투를 빈다.


책을 읽지 않는 아이라고 걱정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내 아이의 기질을 받아들이고 좀 더 책과 친해질 수 있도록 부모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보면 만나는 기쁨과 행복은 읽어주는 자, 만이 누릴 수 있는 확실한 보상이 되어 줄 것이니, 거듭 말하지만, 아빠여,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시라.

keyword
이전 04화초등 2학년도 담을 줄 아는 '말의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