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질하는 마음
아이가 종이를 조각낼 때는 이유가 있다
4교시, 짝 활동 시간이었다.
한 사람이 장면을 행동으로 보여주면 짝이 무슨 장면인지 알아맞히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교실을 빙 둘러보고 있는데 태민(가명)이 머리 위에 하얀 뭔가가 반짝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잘게 자른 종이 조각들을 머리 위에 뭉치로 올려놓은 것이었다. 태민이 책상 위에 아침에 나눠 준 안내장 테두리를 가위로 잘디 잘게 가위질 한 조각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태민아, 이거 왜 자른 거야?"
"……."
대답이 없다. 대답을 안 한다는 것은 답하기 곤란하다는 뜻이다. 태민이도 빠져나갈 구멍이 필요할 것이다. 곤란한 상황에 빠진 아이를 다그치는 것은 하등의 도움의 안 되는 일이다.
"역할 놀이 소품이 필요했던 거니?"
전혀 소품으로 사용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활동과 관련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래도 태민이가 "네." 한다.
"그럼, 활동이 끝났으니까 이거 치우자."
머리에 소복이 얹어진 종이 조각들을 털어 주었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 조각들로 태민이 자리는 정신이 없었다. 깨끗이 치우고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해도 태민이는 대충 한 번 손으로 쓸어 담기만 할 뿐,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종이 조각들을 깨끗이 치우려 하지 않았다. '자기 자리는 스스로 깨끗이' 하기로 되어 있는 우리 반 약속을 안 지키는 것 같아 재차 치우자고 했지만 웬일인지 태민이는 완강히 버텼다.
"태민이, 오늘 엄마하고 얘기 좀 해야겠구나."
했더니, 갑자기 태민이가, "으앙-!" 몸을 젖히며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었다. 울먹울먹 우는 소리에 하는 말이라 무슨 말인지 정확하진 않았지만,
"엄마.. 한 테.. 말.. 하지.. 말란.. 말이.. 에요."
라는 말과 함께였다. 청소를 마친 다른 아이들은 줄을 서서 점심 먹으러 가려고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데 선생님이 나오지 않고 있으니, 아이들은 밖에서 어수선해졌다. 엄마한테 말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서야 태민이는 한참만에 겨우 줄에 가서 섰다.
태민이는 몇 달 전에 전학 온 아이다. 1학년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유난히 작고, 마른 체구이다.
처음 전학 온 날, 작은 체구의 아이가 유난히 움츠러든 표정이길래,
"태민아~ 만나서 반가워~ 너, 우리 반에 진~짜 전학 잘 온 거야. 선생님이 2학년 선생님들 중에 제일 좋은 사람이거든~"
하고 농을 건넸었다. 정작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아이는 웃지 않고, 함께 온 태민이 엄마, 아빠만 웃으셨다.
태민이는 표정이 별로 없고 (엄마 말씀에 따르면) 내성적이고 예민한 아이 었다. 그래도 필요한 것이 있거나, 준비물을 가지고 오지 않은 날엔 내게 와서 스스럼없이 먼저 얘기를 해서 그 정도까지로는 느끼지 않았었다.
그렇게 감정의 내색이 별로 없던 아이가 왜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을까. 가위로 조각조각 잘라낸 안내장이 걸렸다. 아이들이 하교한 후, 태민이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어머니, 태민이가 스트레스가 있나 봐요."
한마디에, 어머니는 주말 동안 태민이가 엄청나게 야단을 맞았노라고 하셨다. 반성문도 쓰고 손도 들고, 회초리까지 들었다고 하셨다. 수업 시간에 집중을 잘 못하는 것 같다는 나의 말을 듣고 단단히 습관을 잡아줘야겠다고 생각하셨단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라서 너무 오냐오냐 했더니 안 되겠다 싶어서 처음으로 되게 혼내셨노라고 하셨다. 다시 선생님한테 그런 말이 들리면 그땐 엄마가 너무 힘들어질 것 같다고까지 하셨단다.
내게서 '엄마랑…'이란 말이 나오자마자 태민이가 경기하듯이 울어버린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이는 제일 사랑하는 엄마에게 처음으로 호되게 야단을 맞고 풀어지지 않은 마음으로 학교에 온 것이었다. 그 마음은 다시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고, 갈 데 없는 마음은 엄마에게 보여주어야 할 안내장을 조각조각 내는 것으로 풀어보려 했던 것이리라. 태민이가 얼마나 스트레스 상황이었을까 싶었다.
"어머니, 태민이는 사는 곳, 친구, 선생님, 학교가 모두 바뀐 것이잖아요. 태민이에게는 '세계'가 바뀐 것과 같을 거예요."
라고 말씀드리고,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적응할 수 있도록 서로 돕자고 했다. 등교 전에 아이에게 예민한 상황이 있을 시 문자로 알려 달라고도 부탁드렸다. 어른들도 아침에 집에서 마음 상해 나오면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잖은가 말이다.
교실 바닥 좀 더러우면 어떤가.
아이 마음은 그것보다 더 엉망이었을 텐데….
전화를 마치고 태민이가 자른 종이 조각을 쓸어 모으면서 참 많이 자책했다. 상처 받은 태민이의 마음 조각을 쓸어 담는 것 같아 많이 미안했다. 내일은 그 마음을 한 번 더 들여다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