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년 맞이 전날, 나의 모든 유년 시절의 기억 속을 채우던 감정들이다. 보통 어른이 되고부터는 같은 감정일지라도 상황은 변화하기 마련이다. 축복인지는 모르겠지만, 교사인 내게는 여전히 어른이 되어서도 새 학년 전날의 설렘과 긴장감이 함께 한다. 교직에 발을 들여놓은 지 20여 년 이건만, 새 학년을 맞이하기 전 내 온 마음은 평상심에 균열을 내며 파동이 일곤 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일렁임은 찾아왔고, 카페인 섭취 후 조금 더 빨라지는 심장 박동처럼 가벼운 흥분감에 하루를 보낸 후 새 학년, 새 아이들을 맞았다. 이런 걸 20번 정도 겪은 나도 이런데 2학년 아이들은 얼마나 떨리고 긴장했을까. 2/3를 마스크로 가린 채 눈만 빼꼼 내어 놓은 조그마한 얼굴에서도 고스란히 그 느낌은 전달되어왔다.
코로나로 인해 작년 내내 공교육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1학년 아이들이 2학년이 된다면, 그 아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어린 학생들에게 일수록 시간이 미치는 영향력은 더 크기 마련이다. 무엇이든 빨아들이는 스펀지 같은 1, 2학년 아이들에게 1년이라는 시간은 '천둥벌거숭이'를 공동체 사회를 살아가는 '새싹 시민'으로 거듭나게 하는 놀라운 시간이다. 그 황금의 시간을 놓쳤으니,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내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듣기는 하려나? 한글은 제대로 떼었을까? 또래끼리 서로 의사소통은 할 수 있으려나?
매년 긴장보다는 설렘의 강도가 약간 더 앞서긴 했지만, 올해는 걱정이 더 앞선 게 사실이었다. 작년 한 해 동안의 적은 등교일수는 전반적인 아이들의 학습상태를 가늠하기 어렵게 했다. 잦은 화상 수업과 원격 수업으로 대체한 학교 생활로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릴 줄 아는 적응의 기회를 잃었다. 2학년 아이들에게는 올해가 본격적인 공교육의 시작일 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걱정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교육'은 '만남'이자, '실재감'
아니다. 걱정을 도리질해 치운다.
'교육'은 '만남'이다. '만남'은 '실재감'이다. 만나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일이 생길지. 너와 내가 어떤 에너지를 주고받을지,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만나보기 전에는.
긴장한 빛이 역력한 아이들의 눈동자가 시종일관 나의 표정과 손짓을 살핀다. 잘해 보려는 의욕이 앞선 학생들일수록 더 긴장하기 마련이다.
첫날, 간단히 자기를 소개하는 활동조차도 버거워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학생이 있었다. 올해 처음으로 과밀학급에 대한 보조교사 지원으로 함께 하게 된 협력 선생님께서는 깜짝 놀라 하셨지만, 나는 안다. 그 아이도 금방 적응할 것임을. 첫 만남의 긴장감은 아이의 몸속에서 복통으로 드러나기도, 두통으로 올라오기도 한다. 마음 상태는 그대로 몸에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오늘 긴장감으로 잔뜩 쪼그라든 심장 주변 근육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면 그 아이는 평상시의 해맑은 웃음을 자연스레 드러내 보일 거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내가 너희들을 많이 만나보아 너희들 마음을 '아는' 선생이어서 참 다행이다. 근심과 걱정 때문에 드러난 너의 울음에 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너를 대하지 않을 수 있어서. 괜찮다, 고 말해줄 수 있어서. 또 금방 괜찮아질 거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이틀 째 날에는 우리 반 이름 짓기를 했다. 아이들은 첫날의 긴장감을 날려버리고 내가 읽어주는 그림책에 눈을 반짝, 귀를 쫑긋하며 집중했다. 그리고는 그림책에 숨어있는 갖가지 보석 같은 '인성 덕목'을 발견해 주었다. 얇은 그림책 안에서 14~5가지의 덕목을 찾아내는 아이들에게 칭찬 샤워는 당연한 결과였다.
2학년 아이들과 배운 씨앗 덕목으로 반 이름 정하기 ⓒ 그루잠
아이들과 나는 그림책을 통해 배운 덕목을 활용하여 '내가 바라는 우리 반'을 적어 내었다. 그래서 탄생하게 된 우리 반의 이름은, '행복하고 배려하는 정직한 2학년 *반'이 되었다.
1학년을 공치고 올라왔으리란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알맞게 펼쳐진 배움의 운동장을 마음껏 넘나들었다. 손하트와 칭찬 멘트를 엄청 받고도 아이들은 할 말도, 궁금한 것도 많은, 호기심 화수분들이었다.
오늘은 아이들과 평소에 듣고 싶은 말과 듣기 싫은 말을 나누며 '나 전달법' 의사소통 말하기를 연습했다.
아이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은 참 다양했는데, 듣고 싶은 말은 몇 가지로 모아졌다. "(그림을, 축구를, 공부를) 잘한다!, 친하게 지내자, 고마워" 대략 이 세 가지 정도였다.
2학년 아이들이 듣고 싶은 말, 듣고 싶지 않은 말 ⓒ 그루잠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 하나는, 우리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말은 여러 말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 아이들은 '잘한다'라는 말에 참 많이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이다. 잘한다, 는 말을 들어야 제대로 칭찬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정에 최선을 다했다면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 이것을 올해 담임으로서 아이들에게 알려줄 최우선 목표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