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2학년도 담을 줄 아는 '말의 온도'

2학년 아이들의 마음과 태도를 닮을 수만 있다면

by 정혜영


민지(가명)는 계속 생각해야 하는지, 내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네가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는 선생님이 먼저 와서 도와주지 않을 거야."


지난주부터 민지에게 단호하게 말해 두었기 때문에 무작정 울기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다. 그래도 민지는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내어놓는 일은 어려운 듯하다. 교실 전체를 순시하고 있지만 내 눈은 민지의 모습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잠시 후, 다가가 보니 자신의 생각을 써넣어야 할 자리가 여전히 빈칸이었다. 빈칸으로 둔 채, 다소 시간이 흘러서인지 민지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눈빛이 일그러져 있었다.


"선생님, 뭘 써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더니 울기 일보직전이다. 민지는 신학기 첫날부터 간단한 활동에도 마주하자마자 울기 시작하더니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활동에서는 여지없이 눈물부터 보였다.


"우는 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고 선생님이 말했지? 민지, 선생님 눈 쳐다봐봐. 민지 할 수 있는 거야. 선생님은 네가 할 수 있다는 거 알아. 여기 정답은 없어. 민지 생각이 답이야."


그래도 민지에게는 먼저 물어보는 조차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다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갈 줄도 알아야 한다. 오늘 먼저 와서 물어본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민지는 오늘도 한 발 용기를 내어 본다.


답이 열린 서술형 학습 과제를 마주칠 때마다 주저하는 민지는 답이 정해진 연산 문제 해결 같은 과제 수행에 칭찬 피드백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수학 시간에는 절대 우는 법이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누가 민지에게 스스로 상황을 파악하고 결정을 내려보는 경험을 앗아간 것일까. 민지는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해 보는 경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이다. 여태까지 그 아이의 경험 범위 내에서는 울면 문제가 금방 해결되는 일이었을 테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갈 수는 없다. 이제 우는 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때다.


민지는 처음엔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선생님의 친절한 듯, 친절 아닌 친절 같은 단호함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을 것이다. 분명 화를 내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무조건 자신을 받아주는 것 같지도 않은 나의 태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계속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선생님,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는 도와주지 않겠다는 나의 말에 자리에 앉아 무턱대고 울지 않고 내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민지가 도움을 요청하러 오면 나는 매우 기쁜 표정으로 다가가 기꺼이 다시 설명해 준다. 활동 전에 이미 들어준 예시를 민지의 경우와 엮어 다시 한 가지 들어준다. 그럼 보다 강력한 힌트를 얻고 한, 두 가지를 더 생각해 낸다. 그렇게 민지는 '스스로가 내린 결정'을 믿고 조금씩 성장해 나갈 것이다.


타고난 성향이 다른 아이들이 함께 하는 학급 환경에서 조금은 더 교사의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알아서 잘하는 아이들의 부모 입장이라면 하나뿐인 담임교사의 시간과 관심을 내 아이가 덜 받는 역차별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나보다 뭔가가 부족한 사람을 보면 안도하게 되고, 마음을 놓는 법이다. 잘하는 친구들은 자신감을 얻고, 조금 느린 친구들은 선생님의 시간을 조금 더 얻는 것뿐이다. 렇게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다.


무엇이든 열심히, 적극적으로 하는 아이들은 내가 아닌 그 누구를 만났더라도 잘할 아이들이다. 관심이 더 필요한 아이를 만났을 때, 그때 비로소 '나'란 존재와 직면하게 되는 때이다. 나는 어떤 유형의 인간인가. 어떤 선생인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간단한 그림과 함께 목록을 써 보는 수업을 했다.

열심히 그리고 적고 있던 지혜(가명)가 내게 말한다.


"선생님, 너무 고민이에요!"

"뭐가?"

"저는 좋아하는 것에 선생님을 썼는데 선생님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처럼 예쁘게 그릴 수가 없어서 너무 고민이에요."


이 말을 들은 주변 친구들이 와하하- 웃는다. 이런 눈치 100단 같으니라고. 선생님이 좋아할 만한 말로 쏙쏙 골라 얘기하는 법을 너는 누구한테 배운 거니?


스스로 가족을 도운 경험을 이야기 나눴을 때, 성민(가명)이도 그랬다.


"할머니가 소파에서 낮잠을 주무시고 계셔서 베개를 가져다가 베어 드렸어요."


그 베개를 베고 꿀잠을 주무셨을 할머니를 생각하니 내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말에 '온기'를 담을 줄 아는 2학년 아이들 덕분에 한없이 따사로운 가슴이 된다.

이렇게나 반듯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2학년이라니. 난 올해도 2학년 담임이어서 행복하다.




학부모 상담 주간이라 연일 상담하며 말을 고르는 작업이 녹록지 않다. 얼굴 표정이 보이지 않는 말에는 그 함의를 다 표현해 내는데 제한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2학년 아이들의 말처럼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태도와 진심을 담다면, 말은 서로에게 가 닿을 줄 믿는다.


우리 아이들을 바른 방향으로 성장하도록 이끄는 것. 담임교사와 학부모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협력 공동체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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