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40 이후 얼굴은 남편이 만들어 주는 거라고요?

내 얼굴은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by 정혜영


"언니, 고개 숙이고 있는데 언뜻 엄마인 줄 알았어."


가족 일로 동생과 줌 화상 통화를 했을 때 동생이 한 말이다. 5분 전에 미리 오픈하고 오디오를 끈 채 뭔가를 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한 말이었다.


동생이 하는 말에 사람 좋은 웃음을 날렸지만, 어느새 내가 그럴 나이가 되었구나, 50이 멀지 않았으니 그런 말이 그렇게 억울할 일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썩 유쾌한 말도 아니었다.


"언니, 여자 마흔 이후 얼굴은 남편이 만들어 주는 거래. 형부한테 잘하라고 그래!"


동생은 당연히 나를 생각한다고 한 말이었을 거다. 그래도 가끔은 상대방이 나를 생각해 한 말임이 분명한데도 썩 고마운 생각이 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날이 그랬다.


그래서 나는 거울 속의 나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과연 눈꼬리에 가늘게 늘어선 잔주름을 걱정하던 때는 봄바람 불 때였나 보다. 웃을 때 생기는 눈 밑 애교 살 덕분에 그나마 웃는 얼굴이 '호감형' 일지도 모른다, 고 여겼던 것도 이제 과거의 일이다. 눈 밑엔 애교 살보다 더 깊은 주름이 자리하고 앉아 주인 행세를 한 지 오래다.

예전에는 얼굴살은 온몸의 살이 다 빠지고 나야 빠지는 것인 줄 알았다. 적당히 빠질 때 좋아했더니 '적당히'는 정말 종잡기 어려운 말이었다. 적당히 보기 좋게 빠진 시기는 정말 순간이었다. 이제 얼굴에서 살이 빠지면 살이 있던 자리는 주름으로 채워진다. 아쉬운 대로 지금 이 상태만이라도 보존하고 싶어 진다.


그나마 얼굴 부위 중 가장 노화가 더딘 곳을 하나 꼽으라면 '코'인 것 같다. 코엔 본래 근육과 살이 별로 붙어있지 않던 곳이라 세월의 흐름이 잘 드러나지 않아 마음에 든다.

그런데 코 양쪽에서 입 가장자리로 죽- 내려오는 팔자 주름의 깊이는 날로 기세를 더해가는 것 같다. 코는 자신의 노화를 팔자 주름에 내어 주고 강 건너 불구경하는 꼴이다. 코가 중심을 제대로 잡아주었더라면 팔자 주름이 기세를 좀 덜 폈으려나.

거울 속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내 청춘 돌려달라고 남편의 멱살이라도 잡아야 하나, 마음속에 거친 회오리가 움튼다.


그러다 퇴근하여 들어오는 남편의 얼굴을 보았다. 마스크로 얼굴 절반이 가려진 채 들어왔지만, 마스크가 귀밑, 하얗게 내려앉은 새치까지 가려주지는 못했다.

마스크를 벗으니 온전히 드러나는 남편의 얼굴. 먹는 음식이 몸을 만든다더니, 기름기 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은 몸이 참 기름지다(살쪘다는 얘기다). 몸 관리를 자가 격리시킨 지 오래인 남편의 몸을 얘기하자면 오늘 품은 생각이 산으로 갈 수 있으니 정신을 붙들어 맨다. 오늘은 오로지 '얼굴'에 집중하기로 한다.


몸이 기름진데 얼굴이라고 삐쩍 곯았을까. 상대적으로 지방이 적은 내가 외형적인 노화가 먼저 시작되면서 남편에게 가장 부러웠던 것이 '얼굴'이었다. 원래 살집이 많은 데다 지성 피부인 남편의 얼굴에는 도통 잔주름조차 생기지 않았다. 사람이 뻔뻔하니 얼굴에 주름 하나 안 생기는 거라고 놀림을 가장한 시기심을 여러 번 날렸었다.

그런데 어느샌가 남편의 얼굴에도 그 많던 살 대신 주름이 내려앉아 있었다. 속 썩일 때야 주름 하나 없이 반들반들한 얼굴이 그렇게 얄밉더니만, 팽팽했던 양 볼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 모습도 썩 보기 좋진 않다.


대만의 미학자 장쉰의 '자화상 수업'이 생각난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책에 소개된 내용이다.

장쉰은 동료 대신 들어간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거울을 들여다보며 스스로의 모습을 그리게 하고 자신을 소개하는 수업을 했다. 소개가 다 끝나고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은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거울을 보고 자신을 알아가는 경험을 처음으로 한 학생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마주한 것이었다. 보정도 필터도 거치지 않은 '날것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학생들의 마음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생겨난 것이었다. '상유심생(相由心生, 외모는 마음에서 생겨난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여자 마흔 이후의 얼굴은 남편이 만들어 주는 거'라는 말, 별로다. 결혼 후 일과 육아, 가사를 병행하는 과정에서 남편의 조력이 훌륭했더라면 40대 초반엔 조금 덕을 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내가 중년이 되었는데 남편이라고 마냥 청춘일까. 그 역시 만성 대사증후군에 건강 걱정이 앞서는, 중년인지 오래다. 자기 몸 하나 관리도 힘든 사람에게 내 얼굴까지 책임지라고 해 봤자 주름 하나 더 늘 일이다.


40대 이후의 내 얼굴은 내가 책임지겠다.

우린 대한민국 여성사에서 할머니 세대는 못 받고, 어머니는 소수만 받은, 고등 교육을 '대거' 받은 최초의 여성 세대가 아닌가. 우리 세대에겐 그 정도는 스스로 책임질 정도의 '배움'이 있다.


중년 이후의 얼굴은 생기고 안 생기고는 문제가 안 된다. 표정 관리를 잘하여 곱게 얻은 주름과 잘 정돈된 피부를 가졌다면 좀 더 멋져 보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삶에서 얻은 지혜와 넉넉히 품을 줄 아는 여유로운 마음, 성숙한 태도, 이런 자질들 사람을 더 은은하게, 더 오래도록 빛나게 하는 법이다.


우아하게 나이 들기. 오늘 거울 속의 나와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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