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 5분만 빨리 시작하면 10분이 여유로울 텐데. 이런 생각을 매일 하면서도 일어나자마자 딴짓에 먼저 손을 대다 또 허둥지둥 출근길에 오르기를 반복한다.
아무리 그래도 내게는 출근 준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의식'이 있으니, 그것은 아침 출근 복장과, 혹은 그날 아침 나의 기분과 어울리는 모양과 색깔로 정성 들여 고르는, '귀고리 장착식'이다.
오늘도 이미 5분이나 늦었는데 귀고리를 고르고 있다.
크림색 따뜻한 앙고라 소재의 상의를 입었으니, 색깔은 같은 계열로 맞추면 좋겠다. 크리스털 소재는 자칫 너무 추워 보일 수 있으니 그것들은 제외하고.
그러다 보니 결국 내 귀에 꽂힌 것은 하얀 진주 귀고리 한 쌍이었다. 모난데 없이 둥근 모양에 상아빛 흰색은 겨울철에 입는 도톰한 소재의 옷들과 잘 어울리는 데다, 연령의 구분 없이 출근 복장을 단아함으로 마무리 해 주어 자주 이용하는 겨울철 아이템이다.
일 분, 일 초가 아쉬운 아침 출근 시간에 무슨 소가 풀 뜯어먹는 한가한 소리인가, 싶지만, 귀고리를 착용한다는 것은 내게 출근 복장 이상의 의미가 있는 행위이다.
뭐랄까. 이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시든 꽃이지만 꽃이었던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은 자부심이랄까, 한때는 화사하게 피어났던 만개(滿開)의 기억을 놓치고 싶지 않은 자존감이랄까. 아무튼 귀고리는 내게 있어 만추(晩秋)의 여성으로서 가지는 '마지막 자존심'같은 존재인 거다.
그래서 매일 아침, 이미 늦어버린 출근 시간에도 정성 들여 골라 귀고리를 장착하면, 빨간 슈트를 입고 슈퍼 파워를 갖는 아이언맨처럼 당당히 현관문을 박차고 출근길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학교 정문에서 항상 학생들에게 아침맞이 인사를 하시러 나와 계신 교장 선생님과 마주치는 순간, 그 당당함은 순식간에 쪼그라들지만, 그 찰나의 순간만 참으면 또 하루의 슈퍼 파워를 발휘할 수 있으리.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9년.
초등교사를 대상으로 한 6개월간의 영어심화연수 과정에 참여했었다. 5개월 간의 국내 연수와 1개월 간의 국외 현지 연수 과정으로, 이전부터 얼마나 소원했던지 모를 연수였다. 번번이 나보다 경력과 실력이 우수한 사람들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해에는 '특별 연수'라는 이름으로 많은 인원을 선발해서 참여하는 행운을 얻었던 것이다. 계속 두드리는 자에게 마침내 문은 열리리니.
어찌나 참여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이었던지, 둘째가 배 속에서 8개월째 일 때인 만삭의 몸으로 신청서를 제출하자, 교감 선생님께서 가능하겠냐며 만류하신 것을 고집했던 연수였다. 그때는 그게 내가 가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만 같았다. 그때 꼭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일이 있지 않은가. 그때 그 연수가 내게는 '그런 일'이었다.
연수를 신청하고, 둘째를 낳고, 조리원에 들어간 얼마 뒤부터 시작된 원격 연수.
조리원 휴게실에 놓여 있었으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컴퓨터 앞에서 아이 모유 수유를 하며 원격 연수를 듣기 시작했다. 조리원에서 나와 집에서 몸조리를 하면서도 출산 휴가 기간 동안 연수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데에 얼마나 행복해했었던가.
그렇게 5개월 간의 국내 연수를 마친 후, 태어난 지 갓 4개월이 지난 둘째를 시형님께 맡기고는 출산 후 부기가 채 빠지지 않은 몸으로 캐나다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창 추웠던 1월 말, 2009년 새해에 떠난 1개월의 연수는 내 생애 주어진 최초의 '자유'였다(둘째가 나쁜 엄마라 욕해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보낸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했고, 더 열심히 임할 수 있었던 것이었으리라.
별다른 사건이 생기지 않는 한, 정년까지 교실을 지키게 될 선생에게, 가정을 가진 두 아이의 엄마에게, 다시는 못 올지도 모르는 시간들일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한 달 간의 국외 연수를 마치고 맞이한 마지막 주. 다른 연수생들과 함께 떠난 여행길 끝자락에 닿은 곳이 나이아가라 폭포였다.
때로는 영하 30도까지도 기온이 떨어진다는 캐나다. 그 나라의 한 겨울에, 무릎까지 오는 새하얀 눈의 세상 속에 피어나던 장엄한 광경과 천지를 뒤흔들던 폭포 소리에 심장이 벌렁대던 꿈결 같은 기억. 나이아가라의 그 웅장함에 혼이 나가 소리를 질러대도 거대한 폭포는 모든 달뜸을 품고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거기였다. 내가 소중히 여겼던 귀고리 한 짝을 잃어버린 곳은.
고대했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챙겨간 소품 중 가장 애정 하던 것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내 '자유'의 대미를 장식해 줄 마지막 여행길에 아끼던 소품을 착용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나이아가라 폭포에 정신이 팔려 뛰어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과 사진을 찍어대느라 귀고리 한 짝이 빠진 줄 몰랐던 것이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그렇게 아끼던 귀고리 한 짝을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 눈 속 어딘가에 떨어뜨리고는 한참을 아쉬워했더랬다.
지금은 그 귀고리가 어떤 모양이었는지, 어떤 색깔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때는 잃어버리고 그렇게 한참 동안 마음에 남았었는데.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나. 그때 그것이(혹은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만 같아서 나를 휘둘리고 사는 때. 그 휘둘림이 옳았던 것인지, 무모했던 것이었는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명확해진다.
그때 용기 내어 젖먹이 아이를 맡기고 떠난 1개월 간의 캐나다 연수는 휘둘려 마땅한 것이었고, 잃어버리고 내내 마음 상했던 귀고리 한 짝은 지금은 생각나지도 않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