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설 때는 호기로웠다. 생각보다 바람이 조금 찼지만 그래도 좋았다. 딸이 따라 나서 주니 더 흥이 났다. 그렇게 나의 봄맞이 쑥 캐기는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친구들이 톡으로 날려주는 봄의 전령사들의 사진을 방구석에서 보고만 있으려니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유난히 봄을 좋아해서 봄을 많이 타는 내가 홍매화, 개나리, 진달래 등의 봄꽃 사진을 핸드폰으로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쑥 캐러 가자~!"
어릴 적, 봄이면 엄마가 당신 자식들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내 아이들에게 목청 돋워 보았다. 사춘기 10대 아이들이 따라나설까 싶었는데 다행히 딸아이가 동행해 주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봄이면 함께 쑥을 캐러 갔던 것 같은데 어느샌가 그것도 옛일이 되어 버렸다. 작년 봄은 말이 봄이었지, 바깥출입을 억제하며 그냥 흘려보낸 계절이 아니었던가. 봄을 그냥 창 너머로 '봄'만 하다 흘려보낸 나의 최애 계절을 올해는 그냥 지나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었다.
집 근처에 '산'이라고까지 부르기엔 민망하지만 나지막한 언덕배기가 있다. 높은 경사는 아니지만 제법 소나무, 떡갈나무도 우거지고 4월이면 등선 따라 철쭉이 만발하는 곳이다. 도심 속에서 나무 사이 흙 길을 밟을 수 있는 곳이라 동네 주민들의 발길이 제법 잦은 곳이기도 하다.
새벽이슬처럼 작게 맺힌 철쭉 꽃망울을 보니 봄기운이 훅- 들어오는 것 같았다. 왠지 오늘 우리의 쑥 캐기 이벤트에 상서로운 기운을 돋우는 듯했다.
"엄마, 쑥으로 전도 부쳐 먹는대. 국 끓이고 남으면 전도 부쳐 먹자."
"어이구~ 쑥을 그렇게나 많이 캐려고? 국 끓여 먹을 정도만 캘 거야."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벌써 쑥전이 그려지고 있었다. '쑥'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색감 때문인지, 톡 튀어 오르는 어감 때문인지, 쑥을 캐러 가는 발길이 한껏 들떴다.
아이가 어릴 때 함께 쑥을 캐곤 하던 자리에 가보니 과연 쑥 더미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래도 아직 때가 이른 것인지 쑥이 잘고 많이 올라오지 않아서 정말 한 번 국 끓여 먹을 정도의 양만 캘 수 있었다.
쑥이 쑥국이 되기까지. 실제보다 사진 상으로 쑥 향이 더 짙게 느껴진다니ㅠ ⓒ 그루잠
풀어놓은 된장을 한소끔 끓인 뒤, 여린 쑥이라 제일 마지막에 넣어 살짝 끓여 저녁 식탁에 내었다. 된장국물과 어우러지며 온 집안에 퍼질 쑥 향과 더불어 집안 가득 봄 향이 그윽하게 채워지길 기대하며.
그런데 웬일인지 쑥향이 하나도 안나는 것이었다!
원래 후각이 덜 예민한 편이라 내가 냄새를 제대로 맡지 못하나 했는데, 개코인 남편도 쑥국을 먹어보더니 쑥 향과 맛이 하나도 안 난다는 것이었다. 오늘 캔 것이 쑥이 맞긴 하냐는, 다분히 놀림 가득한 질문에는 부아가 치밀었다.
뭐가 문제지? 너무 어린 쑥은 향이 안 나나? 쑥이 향을 충분히 머금으려면 어느 정도 자라는 기간이 필요한 것인가? 예년에는 4월 경에 쑥을 캤던 기억이 나서 아직은 덜 자란 쑥을 캔 것이 원인인가, 막연하게 짐작할 도리밖에 나로서는 알 재간이 없었다.
저녁을 먹은 후 경험 많으신 친정 엄마께 전화를 걸어 어린 쑥은 향이 안 나는 거냐고 여쭤보았다. 엄마도 그런 건 금시초문이라 하셨다. 쑥한테 배신당했다고 하니, 친정 엄마가 그러셨다.
"야야, 네가 너무 기대가 커서 실망도 큰 거다!"
그거였을까? 한 움큼 정도밖에 안 되는 쑥을 캐놓고는 쑥떡 같은 거라도 먹을 줄 기대한 것이었나.
그러고 보니 3월도 3주가 흘러가는 마당에 우리 반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벗은 온전한 내 얼굴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얼굴의 2/3를 마스크로 가린 채 눈만 보는 상황에서는 상상력이 발동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들의 기대가 커질까 봐 걱정이 되었다. 마스크를 벗은 온전한 담임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우리 반 아이들이 실망할까 봐. 마스크에 가려진 깊은 팔자 주름을 모르고 담임을 젊고 예쁜 사람으로 기대하고 있으면 어쩌나, 하고.
여태까지는 아이들의 식습관 관찰 및 급식실 식사예절 교육 차원에서 아이들이 급식을 다 먹은 후에야 점심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마스크를 벗은 내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드디어 오늘, 급식 시간에 용기를 내어(!) 아이들과 함께 급식을 먹었다. 마스크를 벗고 아이들 옆에서 밥을 먹는 담임을 처음 보니, 아이들이 신기했나 보다. 흘끔흘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밥을 다 먹은 여자 아이 하나가 다가오더니,
"선생님, 마스크 벗은 모습 처음 봐요."
하는 것이었다.
"그래? 생각했던 거랑 많이 다르니?"
내심 조마조마해하며 물었다.
"아니요! 제가 생각했던 얼굴이랑 똑같아요!"
하며 아이는 웃어 주었다. 그 말이 고맙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참, 이게 뭐라고.
나이를 먹으면서 이제 '타고난 생긴 것'으로서의 나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옅어진다. 그래도 예뻐 보이고 싶을 때가 있다. 학부모 공개수업에 참석할 때 내 아이에게만은 예쁜 엄마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반 아이들에게도 예뻐 보이고 싶다. 학교에 와서 매일 보는 담임 선생님이 예뻐서, 좋아서 매일 학교 오는 게 즐거운 발걸음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예쁘다는 말을 들었던 것도 아닌데, 생각했던 거랑 똑같다던 아이의 말에 용기가 생긴다. 그 말을 하던 아이가 함박웃음을 보여 주어서 더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결국 생소한 된장국 안의 쑥을 거부하는 내 아이들 덕분에(?) 된장국에 겉돌던 쑥은 모두 내 차지가 되었다. 기대했던 쑥 향이 1도 안 나는 쑥 된장국 한 대접은 실망 한 대접이었지만, 마음을 고쳐 먹는다.
그래도 내가 생각했던 쑥이랑 똑같지 않았냐고. 덕분에 봄날의 오후를 만끽하지 않았냐고. 덕분에 친정 엄마랑 통화 한 번 더하지 않았냐고. 덕분에 난 오늘 글 하나를 써낼 수 있지 않았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