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여지없이 정신없는 출근 준비다. 5분 꾸물거림의 나비효과는 현관문을 박차고 나갈 즈음엔 3배는 더한 재앙으로 다가온다. 매번 나를 질책하면서도 일어나자마자 내 마음이 향하는 방식대로 움직이는 본능은 뇌로 제어가 안된다. 인간은 '생각하는'동물이라 하신 아리스토텔레스 엉아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마음이 향하는 대로 하는' 동물이다.
이번 주 내내 엄청 추울 예정이라는 일기예보를 들었으면, 그 일주일의 첫날에 대비 없이 나갔다가 꽁꽁 언 운전대에 식겁해 봤으면, 그날 저녁에는 장갑을 준비해서 식탁 위에 곱게 놓아두어야 할 것이 아니던가. 마음이 향하는 대로 사는 난, 전날 저녁에도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느라, 어딘가 곱게 모셔놨음이 분명한, 작년 겨울 내내 내 손을 첫사랑 그이보다 따습게 데워주던, 멋들어진 까만 가죽 장갑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수고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미 출근 시간은 늦었고, 오늘은 어제보다 더 추울 것이라는데. 내 멋진 까만 장갑은 애타는 주인의 마음을 알아서 스스로 나타나 주지는 않을 것이고. 이대로 현관문을 나서기는 두렵고. 이 일을 어쩐다? 순간, 아리스토텔레스 엉아께서 내게 친히 영접하시어 '생각'이란 것을 하게 하시었다.
2년 전인가, 3년 전인가. 가물가물 더듬어 생각해보니, 딸아이가 5학년 때였던 4년 전의 성탄절이었나 보다. 그 해 성탄절을 앞두고 딸아이가 다*소에서 엄마, 아빠 선물이라고 사다 준 장갑이 퍼뜩! 생각난 것이었다.
각각 3천 원, 5천 원씩 주고 샀다며 엄마에게는 털장갑을, 아빠에게는 목도리를 선물 상자에 곱게 담아 건넨 딸아이 앞에서 우리 부부는 표정 관리하느라 꽤 힘들었었다. 평소에도 눈치가 몇 프로 부족한 남편이 선물 상자가 더 비싸 보인다고 하는 걸 옆에서 쿡 찔러 말려서 그 난감한 상황을 무마했었다.
미래의 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커서 엄마에게 천만 원짜리 에르*스 가방을 사주겠다던, 당찬 포부(?)의 우리 반 초등 2학년 아이도 있었는데, 그때 5학년 우리 딸아이는 이런 방면으로는 참 철이 늦게 드는 듯하였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중2인 딸은 지금도 그 상태 비슷하다).
그 정성이야 고맙기 한량없지만, 나와 남편의 사회적 지위(?)와 나이를 고려하여 포장 상자가 본 선물의 절반값인 그 물건들을 침대방 통 거울 서랍에 고이 모셔두었음이 '생각난' 것이다.
후다닥 달려가 서랍을 열어보니 과연, 우리 집에 들어온 뒤로 3번이나 계절이 지났음에도 햇볕을 못 보고 동굴과 같은 그곳에서 긴긴 겨울잠을 자고 있었을, 장갑이 첫날밤 맞은 새색시처럼 얌전히 놓여 있었다.
손에 끼어보니 보통 사람보다 작은 내 손에 신데렐라 구두 한 짝이 똑 맞아떨어지듯이 들어맞는 것이었다. 추워 죽을지도 모르는데 소재의 질감이나 가격과 브랜드가 주는 선입견 따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생각보다 따뜻하고, 손가락 끝에 스마트폰 터치용 처리도 되어 있는 것이, 3천 원 받아서 업자에게 남는 게 있겠나, 싶을 정도였다.
작년까지도 나의 겨울 손을 '격조'와 '품위'로 감싸주던 까만 가죽 장갑은 핸드폰을 터치할 수 없어서 매번 좀 불편했었다. 이왕 나왔으니 말이지만, 어쩌다 전날 하차할 때 깜빡 잊고 차 안에 두고 온 날 아침엔, 영하의 차 안에서 마치 살아있는 가죽처럼 긴장한 상태로 뻣뻣하게 내 손을 맞이하던 아이였다. 다시 그 격조와 품위를 되찾기까지는 감내해야 할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던, 좀 까칠한 아이.
그 아이 역시 돈을 더 주고 나의 수고로움을 자처한 아이러니한 소비의 결과물인 것이었다.
이날 아침 딸아이의 다*소표 장갑은 혹한의 전쟁터로 향하는 나의 맨손을 단단히 지켜준 천군만마였다. 몰라보고 홀대했던 주인에게도, 장갑은 본분의 소임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그 역할을 충실히 다해주었다. 값비싼 종이 상자로 포장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아이였다.
장갑이야 감정 없고 말 못 하는 미물이니 이런 주인을 위해서도 충성을 다해 주었지만, 상대가 감정이 있는 존재였다면 어땠을까.
걸친 옷의 무게가 가볍다고 옷을 입은 사람마저 가볍게 본 적은 없었는지, 이제는 안중에도 없어진 나의 멋진 까만 가죽 장갑 너머로 나의 오만한 생각들을 밀어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