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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Apr 09. 2023

벚꽃이나 목련보다 진달래가 끌리는 이유


누군가는 생기발랄한 개나리를, 다른 누군가는 화려한 벚꽃과 탐스러운 목련을 선호할 테지만, 난 소박한 진달래파다.

마지막 추위를 밀어내며 샛노란 개나리가 봄의 입성을 성대히 알려도 벚꽃보다는 진하고 철쭉보다는 연한 진달래 핑크빛이 눈에 들어올 때에야 난 비로소 진정한 봄을 만끽한다. 이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맞닿아 만들어진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진데도, 진달래를 보지 못하면 난 봄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한 것만 같다.


어린 시절 살던 곳은 집에서 나와 조금만 걸어도 이내 산자락과 이어졌다. 따사로운 봄날, 엄마, 동생과 함께 오른 산길에서 진달래 무더기를 만나면 오랜만에 찾은 아지트를 만난 듯 신이 났다. 엄마가 진달래 꽃잎을 한 아름 따서 챙겨간 비닐봉지에 한가득 채울 때, 어린 나는 용도도 모르면서 어여쁜 진달래꽃을 손에 넣는다는 기쁨에 헤벌쭉해졌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진달래꽃을 물에 여러 번 씻어 투명한 유리통에 그 위로 청주를 부으셨다. 맑은 술에 담긴 진달래꽃잎이 너무나 고와서 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술, '두견주'라 부르던가.

엄마는 그렇게 담근 술을 얼마간 숙성시키면서 절대 손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으니, 아름다움에 금기까지 더해진 대상에 어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을까.


숙성되어 가며 점차 핑크빛이 진해짐에 따라 만들어내는 고운 술 빛에 홀린 어린 눈이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참는다는 건 고문이었다. 저렇게 예쁜 색을 띤 액체는 무슨 맛일까? 당시 내게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맛이었던 '독사탕'도 그냥 하얀색일 뿐인데 저렇게 고운 색이라면 얼마나 신비로운 맛일까?

절대 안 된다는 엄마를 조르고 졸라 마침내 한 모금 얻어먹을 수 있었던 것은, 금기에 도전하는 어린 딸에게 '어디, 혼 좀 나봐라.'라는 젊은 엄마의 장난스러운 호기였을 게다.


그렇게 엄마가 작은 숟가락으로 한 숟가락 떠준 진달래주를 마침내 맛보던 날. 한 모금 맛보고 나서야 한껏 부풀었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맛에 절로 오만상이 지어졌나 보다. 그것을 보고 깔깔 웃으시던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그런 고약한 쓴 맛을 어른들은 왜 구태여 만들어 먹는 것인지 어린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모금만 맛보았을 뿐인데, 진달래주 한 통을 들이켠 양 온몸이 짙은 진달래빛이 되어 헤롱거리다 결국 기력을 뺏겨 실신하듯 잠들고 말았던 듯하다. 그때가 여섯 살 때쯤이었으니, 내 생애 처음 맛본 알코올은 그렇게 강렬한 맛으로 남아 지금까지도 나를 알코올과 영영 친해지지 않은 사람으로 남기고 말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봄꽃이 주(酒)의 세계를 모르는 멋없는 삶을 살게 한 주범일지도 모르니 내게 진달래는 모순의 꽃이다.


그럼에도 나는 왜 벚꽃이나 목련보다 진달래꽃을 더 좋아하는가. 아마도 벚꽃이나 목련의 만개했을 때와 꽃이 지고 난 뒤의 대조적인 모습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전자의 꽃들이 화사하고 화려한 만개의 기쁨을 주지만 꽃잎을 떨군 후 추레해진 모습이 주는 실망감도 그에 못지않게 크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가로수와 공원에서 흔히 만나볼 수 없는 진달래꽃은 어쩌다 찾은 숲에서 피어난 모습을 만난다면 행운이요, 꽃을 떨군 후의 모습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벚꽃과 목련은 사람과 가까이 있어 더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만, 가까이 있기에 사람의 발에 밟히고 초라해진 뒷모습마저 만인에게 들키고 만다. 그래서인지 나 여기 피었소! 하고 요란하게 떠들지 않고도 수수한 아름다움을 피우고 거두는 진달래꽃의 성정에 마음이 기우는 것이다.


진달래를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때가 되면 조용히 피었다가 는 소박한 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북한산에서 만난 진달래는 생각보다 화사했다. 오르는 길 내내 길 양편에 활짝 피어난 진달래꽃 무더기에 산길은 말 그대로 '꽃길'이었다. 낮은 곳에서는 키를 높이고 높이에 따라 키를 낮춰 피어난 진달래를 보며 어릴 적  내 키를 훌쩍 넘어 피어나던 진달래를 떠올렸다. 어린아이 눈에 비친 키 큰 진달래가 저 정도 크기였겠구나.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이 실제와 얼마나 다른지 안다는 것은 왠지 섭섭한 일이다.


화려하진 않더라도 자신만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피워내는 꽃. 번잡한 세상사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피고 지며 생의 절정과 마감을 쉬이 들키지 않는 꽃. 만인의 눈에 띄지 않기에 더욱 자신만의 생을 충실히 살다 가게 될 꽃.

그렇게 진달래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핀 북한산 산행에서 소망해 본다.


사진은 2주 전 북한산 의상봉 길이에요. 지금은 다 졌겠지요? by 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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