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혜영 Apr 06. 2024

우리 반 금쪽이도 움직이게 하는 마법의 주문

지지 않는 삶의 자세


1학년 담임이 처음인 는 1학년 아이들을 보며 매번 놀란다. '1학년 아이들인간 이전의 단계라던데 것도 있어?' 하는 한,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날, 아이들의 몸집이 너무 작아서 놀라고 그 작은 몸으로도 무엇인가를 결국 해내는 것에 놀란다. 이틀 연속 5교시가 날, "선생님 너무 피곤해요. 오늘은 4교시만 하고 집에 가면 안 될까요?" 하던 해맑은 여자아이의 질문엔 놀라다 못해 웃음이 나왔다. 아, 1학년은 저런 질문 수 있는 학년이구나!

작은 아이들이 4, 5교시까지 교실에서 수업을 해내고 늘봄, 각종 돌봄(돌봄 교실 유형이 얼마나 여러 개인지 교사도 어렵다) 프로그램방과 후 수업에 학원 일정까지 해내야 하는 일과를 따져 보노라면 아이의 피곤의 이유는 투명해진.  


자기 몸집만 한 가방의 무게에 헉헉대며 등교하던 아이들이 이제 그것에 익숙해진 한 달 동안, 아이들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아이들의 한 달은 어른들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시간. 매 순간을 기억하는 아이들의 뇌에 이 달은 얼마나 긴 시간으로 저장되었을까.


한 달 동안 아이들에게 들어간 정보의 양은 펼쳐놓으면 실로 어마어마해서 그 작은 몸 구석구석에 다 담기엔 벅찰 다. 앞으로도 더 많은 것들이 담기겠지만, 학기 초 한 달은 일 년을 잘 내기 위한 기초 공사를 다지는 달이라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하물며 맨땅을 파고 기본 골격을 튼튼히 심어 올려야 하는 초등 1학년에게 이 시기의 중요성이란 다시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러니 어떤 교실에서는 이 시기가 더 요란하게 지나 수밖에.


저학년 아이들은 새것을 가르칠 때 30번 이상 반복해야 겨우 알아듣고 해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지도하고 있지만, 나고 자란 7년 동안 몸에 밴 생활습관을 고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1학년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사회적 기술들을 '바르게' 해내는 방법을 배우는 시기여서 "바르게"라는 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입에 다음과 같이 오르내린다.

"연필을 바르게 쥐어요."

"자세를 바르게 앉아요."   

"친구와 선생님을 만나면 바르게 인사해요."

"친구가 불편한 행동을 할 때 내 마음을 바르게 전달해요."

온갖 '바른' 행동 방법을 배웠지만, 배움이 앎과 일치하려면 굉장한 연습의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런 말들을 입에 올리게 되는 것이다.


필라테스 강사님도 항상 말해요. '빠르게' 하려 하지 말고 '바르게', '제대로' 하라고. (사진 출처: 이파 필라테스 블로그)


그런데 최근 마법 같은 주문의 말을 터득하게 되었다. 아무리 "000 하세요" 해도 꿈쩍 않던 우리 반 금쪽이도 움직이게 한 말이니 마법의 주문이 아니면 무엇이랴. 

우리 반 금쪽이는 "바르게 해"달라는 어떤 요청에도 먼저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아이다.  말을 들을 때마다 일부러 반대되는 행동을 고 선생님의 요구에 결코 따르지 않겠다는 뜻을 온몸으로 필사적으로 표현하는 청개구리 같은 아이. 그 아이의 그런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참을 忍'자가 머리 위에 둥둥 떠다닌다.


그런데 "바르게 라"는 말은 '지금 네가 바르게 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는 걸, 말하는 이는 크게 식하지 못한다. 그러니 말에 부정의 뜻은 없지만 그런 의미로 받아들인 아이가 기꺼이 몸을 움직이는 데는 굉장한 마음의 의지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놓치는 것이다.

이래서 관성이 무섭다 했던가. 다른 대다수의 아이들이 내 말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주니 금쪽이의 고유하고 개별적인 마음까지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


바르게 앉아 보자, 는 말에 꿈쩍 않던 금쪽이는 "배운 대로 앉아 볼까요?"라는 말에 거짓말처럼 자세를 고쳐 앉았다. 처음에 고쳐 앉지 않을 때, "배운 대로 앉는 방법을 아직 모르는 학생이 몇 명 있네?"하고 학생 이름을 특정하지 않고 전체에게 말했더니 금쪽이를 비롯하여 자세가 틀어진 아이들이 금세 스스로 고쳐 앉았다. 이러니 '배운 대로 하기'는 30번의 잔소리를 1/3로 줄여주는 마법의 주문일 수밖에.


우리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성 덕목과 사회적 기술을 초등 교육에서 거의 다 배웠다. 유치부 교육을 받았다면 그때 이미 60퍼센트 이상 마스터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은 힘든 것일까?

난 그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여긴다. 배운 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거나 배운 것을 왜곡되게 써먹거나, '제대로' 배우지 못했거나(건강상의 이유 같은 인간의 의지를 넘어서는 일은 제외하자). 그러니 삶이 힘든 것은 이렇게 배움을 실현하는 서로 다른 삶의 태도들이 서로 부딪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 청개구리 정신이 필요한 때가 있다. 다른 많은 이들이 이렇게 사는 게 최고라고 무수히 건네는 말들, 내 고유한 삶이 그들의 판단에 휘둘리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는 삶의 자세. 이런 진정한 청개구리 정신은 내가 정말 갖고 싶은 삶의 태도다.


때로 배운 대로 산다는 것이 매번 지는 것 같아 억울할 때가 있다. 김연수 작가'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진다'는 말이 꼭 '졌다'는 뜻은 아니리라. 제대로 배우고 배운 대로 제대로 살아가는 것. 작가가 <지지 않는다는 말>에서 건넨, '아무도 이기지 않았지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은 삶'이란 그렇게 제대로, 기본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초등 1학년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 이겁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