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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Sep 18. 2024

우리 가족이 '슈퍼문'에 빈 소원


석 연휴 이틀째, 하루 종일 집에 머무르다 보니 몸 여기저기가 찌뿌둥해졌다. 바이오리듬상 내게 화요일은 필라테스 가는 . 그런데 짐(gym)이 쉬니 연휴에 움직임이 현격히 줄어들어 몸이 참다못해 아우성을 쳐댔다. 제발 몸 좀 움직이라고!


몸의 신호를 무시하면 안 되겠다 싶어 좀 움직여 볼 요량으로 걷기를 하기로 했다. 출발 전, 가장 먼저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 엄마 걷기 갈 건데, 같이 갈래?"

"응, 다녀와."

단칼에 거절이다. 매정한 녀석 같으니라고.


또래 남자아이들은 빠르면 유치원 때부터, 늦어도 초등 1~2학년 때부터 시작하는 축구를 아들은 초등 4학년이 되어서야 갑자기 하고 싶다며 축구 클럽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운동 신경이 썩 좋은 편이 아닌 데다 또래에 비해 늦게 시작해서인지 클럽 아이들과 현격히 실력 차가 나자, 녀석은 간극을 메우고 싶었던지 매주 주말 아침이면 동네 운동장에 축구 연습을 가겠다고 했다.

누군가의 심리적 지지를 원했던 아들은, "엄마가 같이 가서 연습하는 걸 봐주면 안 되겠"냐고 했다. 나도 주말이면 늦잠 좀 자는 여유를 부리고 싶었지만, 기량을 키우고 싶어 조금이라도 더 연습하겠다는 아들이 대견해 한동안 주말 아침 7시면 눈곱만 떼고 같이 따라나섰었다.


그때가 몇 년이나 지났다고, 운동 좀 해보겠다고 같이 가자는 엄마의 요청을 냉정하게 거절하다니. 역시 아들은 키워봐야 남의 집 딸의 남자가 될 '미래의 남'. 정성 들여봤자 부질없다.


역시 기댈 건 딸뿐. 굳게 닫힌 딸의 방문을 똑똑 노크하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딸, 엄마 걷기 갈 건데..."

"엄마, 잘 다녀와."

딸은 따라나설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좌절되자 실망한 내 눈빛을 읽었는지, 대신 딸은 다가와서 나를 꼭 안아주었다. 애당초 수시 접수 후 논술 준비로 편치 않은 휴일을 보내고 있는 고3에게는 무리한 기대였던가.


이제 남은 기댈 곳은 딱 한 사람, 남편이었다. 그러나 내 남편이 어떤 위인인가? 집에서 차로 10분도 안 걸리는 호수공원에 함께 가려면 "일주일 전에 미리 통보해 달라"는 사람. '집 밖은 위험해'를 삶의 모토로 삼고 사는 사람이 아니던가.


20여 년을 함께 산 부부는 웬만하면 각자의 선을 지켜주 노력한다. 그것이 결국 자기 마음의 평화에 이르는 길이니. 그러니 연휴 내내 TV 리모컨과 핸드폰을 손에 쥐고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있는 남편에게 괜히 나가자고 했다가 거절당하고 마음 상하는 뻔한 단계를 진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실망하면서도 또 같은 걸 기대하는 게 사람 마음인가 보다.

"나 걷기 갈 건데, 갈래?"

"응."

뭐지? "응" 뒤에 당연히 붙을 줄 알았던 "잘 다녀와"가 안 붙었다.

"같이 간다고?"

"응."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변한다더니, 그 짝인가?

"근데, 광장까지만 이야."

내 걷기 루틴을 알고 있는 남편은 내 걷는 거리 최종 구간을 두 블록 당긴 곳까지만 다녀오겠다고 했다. 거기까지가 자신의 심리적 한계란다. 참 그 심리적 한계 한번 명확하다. 언제부터 그렇게 심지가 굳은 분이셨다고.


그렇게 남편과 약속하고 걷기에 함께 나섰다. 필라테스를 다닌 지 6개월째. 족저 근막염 때문에 걷기 대신 택한 운동이라 남편과 함께 걷는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0.1톤에 육박하는 남편을 움직이게 하는 데는 온갖 알랑방구가 필요했고 내 알랑방구의 심리적 한계도 명확해서 우리 부부가 같은 운동을 함께 한다는 건 연례행사 같은 일이다.


집을 나서는데, 다른 산책객이 무언가를 핸드폰 카메라로 열심히 찍고 있었다. 뭘 찍나 봤더니, 하늘에 두둥실 뜬 보름달이었다.

오늘이 보름달이 뜨는 추석이었구나! 잔뜩 구름이 끼어 아쉽긴 했지만,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빼꼼드러나는 둥근 보름달이 마냥 신기했다.

남편도 나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핸드폰으로 열심히 보름달을 찍어댔다.

"어? 이상하다. 저렇게 크고 멋진데 왜 사진엔 이렇게 찍히지?"

"그러게. 눈이 담는 걸 카메라는 못 담네."

남편도 내 맘과 똑같았나 보다. 사진을 여러 각도로 찍어 보았지만 눈에 담긴 풍성한 달의 모습은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다.


남편은 자신의 심리적 한계라던 구간에서 한 블록 더 넘어까지 걸어주었다. 토록 습하고 더운 추석은 처음이다. '기상 관측이래 가장 늦은 열대야' 기록을 갈아치운 밤에 땀을 뚝뚝 흘리면서도 잘 참고 걸어 준 남편에게 고마웠다. 약속한 지점까지 찍고 돌아와 남편을 들여보낸 후, 난 만 보를 마저 채우고 들어갔다.


몸에 적당히 땀이 배니 머리가 맑아졌다. 어쩌면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란 내 망막을 통과해 맺힌 실제의 상보다는 내 사고의 렌즈를 통과해 왜곡된 상일지도 모른다. 내 안의 카메라로 색과 구도를 조정하다 보면 있는 그대로의 실체와는 다른 상을 보게 될 수밖에 없다.      


아들은 이제 사춘기를 넘기며 혼자 있기를 선호하는 남자가 되어 가는 중이고, 딸은 지금 무엇을 해도 마음이 널뛰는 고3이다. 남편은 언제나 호불호가 선명해 유리컵처럼 투명한 사람이며 심리적 한계만 지켜주면 한없이 다정한 네안데르탈인이다(호모사피엔스보다 더 우월한 체격 조건을 가진 더 선한 종족이란 의미로 내가 부르는 남편의 별칭. 우리 집엔 여자 호모사피엔스와 남자 네안데르탈인이 산다). 이들을 다른 사람으로 왜곡하는 건 내 마음의 렌즈다. 그것을 늘 맑게 닦아 두어야겠다. 소중한 사람들의 실체를 바르게 볼 수 있도록.


우리 가족들에게 보름달에게 어떤 소원을 빌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남편은 승진을, 딸은 원하는 대학 합격을 바랐고, 아들은 중간고사에 대비해 뇌에 컴퓨터 칩을 내장하고 싶다고 했다. 난? 우선 딸을 원하는 대학에 합격시키고 남편을 승진시킨 후에 아들을 잠시 달나라로 유배 보내고 싶다(요행을 바란 대가다). 그러고도 들어줄 소원이 남아있다면,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올해 보름달은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가 평균 거리보다 가까워 밝고 큰 '슈퍼문'이었다고 한다. 그런 보름달에 소원들이 모두 크게 이루어지면 좋겠다.



구름이 잔뜩 낀 날이었지만 실제로 본 달은 사진보다 훨씬 더 크고 밝았답니다. (사진 by 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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