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0.1톤 막내

족발엔 생굴이지

by 정혜영

아내에게 금요일은 저녁 식사 준비에서 해방되는 날입니다. '열심히 일한 아내, 걸러라(저녁 준비를)!'인 거죠. 금요일 저녁에는 배달 요리와 함께 가족 모두 여유로운 주말 이브를 맞이하기. 가족 중 아무도 먼저 제안하지 않았지만 아내는 그렇게 믿으며 성스러운 주말 맞이 준비를 합니다.

마침 남편이 몸살기를 핑계로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저녁 메뉴 선택 및 주문 업무(?)를 맡겨둔 터입니다. 아내는 덜 마무리된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여유롭게 퇴근하기로 합니다.


평가의 시기인 12월에 들어선 데다, 요즘 코로나 상황이 하 수상하여 화상 회의가 잦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평소 같으면 깔끔하게 모든 일이 끝났을 시각에 일을 계속하고 있으려니, 아내는 몸도, 마음도 분주하기만 합니다. 그때 남편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자기 굴 좋아하잖아.

"그런데?"

전화로 주문하려고 했더니 너무 비싸다. 자기 먹으라고 시키려고 했는데.

"괜찮아. 나 안 먹어도 돼."

아니야. 자기 좋아하는 거니까 사야지.

이 인간이 오늘은 굴이 당기나 봅니다. 남편은 자신의 욕망을 다른 식구들에 빙의해서 그들의 욕구로 둔갑시키는데 천재적인 분입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큰 머리로 잔머리 쓰느라 성장기가 어느 적인데 머리 크기는 여전히 미-세하게 성장 중입니다.


"나 안 먹어도 된다고. 괜찮아."

아니야. 내가 괜찮아.

아내가 괜찮다는데 왜 남편은 자기가 괜찮다, 고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하는 건지, 아내가 그 시커먼 속을 모를 리 없습니다. 아니, 그렇게 아내의 입맛을 생각하시는 분이, 점퍼만 걸치고 5분만 걸어 나가면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구매 가능한 마트 출입을 이렇게 아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이 이날 이때까지 한눈팔지 않은 것은(일단 공식적으로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가진 게 많지 않기도, 보기와 달리 성격이 예민하기도, 웬만한 여자는 예쁜 축에 안 넣어 주기도 해서겠지만(아내는 예외입니다. 세상은 '여자', '남자', '아내'로 구성되어 있으니까요), 가장 큰 이유는 남편의 '움직임 포비아' 증세 때문일 겁니다(검색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만들어낸 말입니다). 이 증상은 특히, 집 안에서 집 밖으로 이동시 극에 달해서 한 번 집 안에 들어온 남편을 집 밖으로 끌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내는 그분에게 기꺼이 500원 플렉스 해 드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남편이 뜬금없이 아내의 핸드폰이 낡았다고, 액정 깨진 지 언젠데 그렇게 계속 쓰는 거냐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하기 시작하면, 자기 핸드폰을 바꾸고 싶다는 신호입니다. 괜찮다는 아내를 기어이 설득해서 새 핸드폰을 주문하고 아내 것이 배송되기도 전에 남편의 핸드폰은 이미 새 폰으로 바뀌어 있겠지요.

딸이 기말고사에서 전 과목 올 A를 받으면 상금과 딸이 좋아하는 회를 사주기로 엄마와 약속이라도 할라치면, 시험 보기도 전에 회가 배송되어 옵니다. 남편은 시험 전에 먹던지, 후에 먹던지 같은 거 아니냐며 딸 격려 차원이라고 합니다. 그럼 딸을 좀 많이 먹이던지요. 아내는 남편 입으로 더 많이 들어가는 회를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는 마음으로 관용을 베풀어야겠지요.


아들, 딸이 게임 깔기에 컴퓨터 사양이 너무 낮다고, 모아둔 용돈으로 컴퓨터를 통째로 바꾸겠다고 했을 때였습니다. 엄마는 안된다고 하는데 아빠는 말리기는커녕, 한 푼, 두 푼 모아놓은 아이들의 통장을 탈탈 턴 돈에 아빠 돈을 약간, 벼룩의 간만큼 보태서 컴퓨터 방을 PC 방으로 만들어 놓았다죠. 그리고는 거기에서 딸과 마주 보며 하는 '철권' 게임에 혼신을 다하는 모습은 참 가관이었더랬죠.

흐음, 가관이다, 가관이야!


아내는 결국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굴을 만 원 조금 안 되는 돈으로 사 옵니다. 남편의 말대로 아내는 생굴을 족발과 함께 오는 보쌈용 김치에 싸 먹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생굴을 사들고 집에 들어오니 전날 저녁부터 감기 기운이 있던 남편이 피로했던 지, 소파에서 자고 있습니다. 식탁에는 주문해 둔 족발도 이미 놓여 있는데 남편은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먼저 먹으라 하고 다시 잠이 듭니다.


한 주 동안 남편도, 아내도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과 부대끼기도 하고, 마음 상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일로 허둥댔을 지도, 잘 처리했다 생각한 일이 틀어졌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래도 어김없이 주말은 다가와 주었고 노곤해진 몸을 누일 소파와 일주일에 한 번, 저녁식사 준비에서 해방시켜 주는 배달 족발이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이번에는 남편이 정말, 오로지 아내만을 위해 아내가 좋아하는 생굴을 주문하려고 했다고, 아내는 믿어보고 싶어 집니다. 우리 집 0.1톤짜리 막내가 하는 말이니 조건 없이 믿어주기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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