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글 Sep 08. 2022

미국에서는 명절에 시댁, 친정
어디로 갈까?



곧 추석이고 나는 여느 때처럼 추석 당일 시댁과  친정 식구들과의 모임을 계획했다. 다행히 시댁과 친정의 물리적 거리가 멀지 않다 보니 결혼 후 지금까지 쭉 오전에는 시댁에서, 저녁때는 친정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미국은 땡스기빙 데이와 크리스마스 데이가 그들의 명절이다. 물론 차례를 지내거나 제사를 지내는 등의 의식은 없지만, 그래도 이 날에는 멀리 사는 자식들이 부모를 찾아가 같이 저녁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땡스기빙 데이에는 터키 요리를 하고, 크리스마스에는 쿠키를 굽는다. 이들 요리는 상당히 손이 많이 가고, 준비할 것도 많다. 따라서 그저 방문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도 해야 하기에 어디든 명절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이 시기에는 항공권 가격이 많이 비싸지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공항에 나가보면 타지에 살고 있는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나 서로 반가워하고 기뻐하는 가족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미국인들에게도 명절은 비용이 많이 들고, 번거롭지만 멀리 살아서 그런지 만나면 더 반가워하는 듯하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생겼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너무 커서 시댁과 친정이 같은 지역에 있지 않는 이상, 나처럼 한 명절에 두 군데를 동시에 방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명절에 과연 어느 쪽을 갈 것인가, 시댁으로 갈 것인가, 친정으로 갈 것인가? 

한 영어 선생님이 명확하게 답을 알려 주셨다. 만약 땡스기빙 데이 때 시댁을 갔다면 그다음 크리스마스 때는 친정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물론 여건이 가능할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다. 어찌어찌하다 보면 두 군데 다 가지 못 할 경우도, 어찌하다 보면 두 번 다 시댁에서 혹은 두 번 다 친정에서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웬만하면 두 번 중 한 번은 시댁으로 가고, 또 다른 한 번은 친정으로 가는 게 암묵적 룰인 것 같았다. 여하튼 미국 가족들도 명절에 시댁이나 친정을 방문해 가족과 함께 요리를 하고, 같이 시간을 보낸 다는 것에서 한국이나 미국이나 명절 모습이 공통적으로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는 음식을 주로 어머니와 며느리가 만든다는 것이 다른 점이겠다. 내가 본 미국 가정은 주방을 드나들며 요리하는 데에 남녀 차별이 없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명절을 맞아 어느 쪽 가족을 만나러 갈지 정했다 하더라도 온 가족이 한꺼번에 모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인데, 일부러 다른 형제의 가족을 피해 안 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내가 만난 몇몇 분들은 형제의 정치적 견해가 달라 서로 언쟁이 있은 후부터 일부러 만나지 않는 경우였다. 내 어릴 적 기억에도 명절에 아빠 형제끼리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를 왕왕 보았었다. 미국은 대놓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사인 보드를 집 앞에 꽂아 놓는 나라다. 자가용 뒤에 지지 후보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기도 한다. 그러니 서로 정치적 견해가 다를 경우, 아예 만남을 스스로 차단해 버리는 것 같다. 형제 가운데 정치적 견해가 다른 형제는 아예 따로 날짜를 잡아 부모 집을 방문한다고 했다.  어떤 분도 명절을 앞두고 가족들 만나러 고향 가기가 싫다고 해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만나면 그렇게 가족들끼리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싸워서 가기 싫다는 것이다. 이야기하는 주제도 한국이나 미국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전 18화 미국의 반상회 HOA Meetin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