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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글 Sep 30. 2022

그래도 정의감이 살아있는 사회


<등장인물>

픽업트럭 운전자 - 덩치 큰 노인

목격자 - 시민 정신의 소유자

라틴청년 - 정의감에 불타는 청년

아들, 아들 과외 선생님, 그리고 나


<사건 경위>

아들 영어 과외를 위해 나는 아이를 태우고 도서관에 가서 주차를 했다. 피곤해했던 아이는 뒷좌석에 타고 있었고, 나는 파킹 후 다 왔으니 내리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가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아 나는 운전석에서 내려 차 앞쪽으로 빙 돌아 오른쪽 뒷문 옆에 서서 얼른 내려.. 말하고 있었는데..

그때, 주차된 내 차가 앞으로 움직였다가 뒤로 돌아왔다. 마찬가지로 뒤에 앉아 있던 아이의 몸도 차를 따라 앞으로 갔다 뒤로 돌아왔다. 순간 나는 누가 내 차를 박았구나 알았다. 따라서 재빨리 차 뒤로 돌아가 보았더니 픽업트럭이 뒤로 차를 뺐다가 내 차 옆 주차공간에 주차를 했다. 나는 그 차가 내 차를 살짝이나마 박는 현장을 잡았으므로 당연히 픽업트럭 운전자가 내리기를 기다렸다. 그는 바로 차에서 내렸고 나를 보자 무언가 안도의 눈빛을 띄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 왜? 무슨 일 있어?"라고 내게 물었다. 어이가 없었다. 사실 주차를 하다가 아주 살짝 박은 것이라 내 차에 크게 손상된 부분은 없었고, 그가 미안해하는 태도를 보였다면 사건은 여기서 종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했던 태도는 없었고, 나는 그 사람의 실수를 짚어주고 싶었다.


나 : 너 내 차 박았어.

픽업 운전자 : 내가? 나 안 박았어.

나: 내가 봤는데..

픽업 운전자 : 뭔 소린지.. 나는 안 박았어.

보고 있던 아들을 등판시켰다.

나 : 내 아들이 차 안에 있었어. 

아들 : 어. 내가 차 안에 있었는데, 네가 우리 차 박아서 차가 움직였었어.

픽업 운전자 : 무슨 소리야, 나는 차 안 박았어.


이렇게 같은 대화가 계속 반복되니 난 이 일을 어찌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덩치가 크고 키가 커서 위에서 나를 고압적인 자세로 위에서 아래로 나를 내려다보았고, 나는 고개를 들어 위로 그를 올려다보아야만 했다. 지나가던 모르는 사람이 볼 땐 덩치 큰 사람이 조그만 아시안 여자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내가 불쌍해 보였을 지도, 보호 본능이 일어났을지도 모르겠다.

차의 손상을 살펴보았다. 손톱만 한 덴트가 나 있었다. 그냥 재수 없었네 하고 돌아가야 하나 생각하는 찰나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격자 : 내가 다 봤어, 픽업트럭! 네가 저 여자 차 박았잖아. 내가 다 봤다고!


할렐루야!


목격자가 나서니 나는 다시 힘을 얻었다.


나 : 거 봐. 본 사람도 있잖아.


픽업트럭 운전자는 그 목격자에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가만히 있으라고...

그리고 나한테는 고압적인 자세였지만 그래도 소리는 지르지 않고 말했다.


픽업 운전자 : 아니야, 나는 너 차 안 박았어.

나 : (덴트를 가리키며) 이것 봐, 네가 이렇게 했어.

픽업 운전자 : 아니야

나 : 어디 너 차 좀 보자. (하고 픽업트럭 앞 범퍼를 봤더니 범퍼가 덜렁덜렁 매달려 있다. 이건 내 차랑 부딪쳐서 생긴 건 아닌 듯)

픽업 운전자 : (조금 당황) 이건 옛날에 어디서 사고 난 거지, 지금 그런 건 아니야. 언제 그랬는 진 기억 안 나. 여하튼 지금 그런 건 아니라고. (하며 똑바로 내 앞에 서니.. 나는 난감할 뿐이었다. )


그때, 갑자기 지나가던 한 라틴청년이 소리를 질렀다.


라틴청년 : (픽업 운전자에게) 너 지금 위협하는 거니?

픽업 운전자 : (화남) 넌 또 뭐야? 왜 끼어들어?


그러자 멀리 떨어져 있던 라틴청년이 어느새 픽업 운전자와 내 사이에 들어와 서서


라틴청년 : (내게) 물러서 있어. 쟤가 너 위협했니?

나 : (당황) 그.. 그건 아니야.

라틴청년 : (픽업 운전자에게) 너 이 여자한테 왜 그래? 가까이 오지 마 (하며 두 손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는데)

픽업 운전자 : 넌 뭐야? 왜 끼어들어? (하며 라틴청년의 손을 쳤다!!!!!!)


그러자 라틴청년이 흥분했다.......


라틴청년 : 너, 내 손을 쳤어! 여러분, 이 사람이 내 손을 쳤어요! (나를 보며) 빨리 경찰 불러, 빨리.


그때부터였다. 덜덜 떨리기 시작한 것이. 그러고 보니 과외 시작 시간이 지났다.. 나는 아들에게 과외선생님 불러오라 시키고.. 목격자 아저씨는 어느새 뛰어와 일촉즉발의 싸움 사이에서 중재를 시작했다..


목격자 : 워워... 진정해 다들.. 내가 처음부터 다 봤어. 진정하라고!

라틴청년 : (흥분이 안 가심) 쟤가 날 쳤어. 나는 경찰 올 때까지 여기서 안 갈 거야.

픽업트럭 : (완전 화남) 우린 그냥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네가 끼어들었어, 너 뭐야?


이들 대화 속에 완전 욕이 난무했다. 서로 주먹만 나가지 않았을 뿐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다. 곧 아들과 과외선생님 그리고 도서관 직원 4명이 달려 나왔다. 목격자 아저씨가 사건을 설명하는데 라틴청년은 자기는 죽어도 경찰 오기 전에 가지 않겠다고 경찰 불러 달라고 주장했다. 결국 도서관 직원이 경찰 부르고 기다렸다. 그 사이에 과외선생님과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했다.

경찰차는 바로 출동하지 않았고, 그 사이 바쁜 목격자 아저씨는 경찰 리포트해주겠다며 연락처를 남기고 가셨다. 20여분이 지나자 경찰차가 2대나 왔다.

미국 경찰이 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경찰, 도서관 직원, 픽업 운전자, 과외선생님과 윤재, 라틴청년과 몇몇 구경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것도 무섭기로 소문난 미국 경찰에게, 그것도 영어로 리포트를 했다. 접촉사고의 경위를 더듬더듬 말했다.  그리고 경찰과 함께 차를 살펴보았다. 아들이 차 안에 있었고, 픽업 운전자가 자긴 안 했다고 계속 오리발을 내밀었다고 하니 그때, 경찰의 눈빛과 태도가 바뀌며 픽업 운전자를 범인처럼 대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라틴청년과 이야기했다. 그리고 목격자 아저씨와 전화 통화를 했다.

그 사이 나는 과외선생님과 이야기했다. 나는 이게 이렇게 커질 일이 아닌데 하며 사실 수리도 필요 없다고 말했다. 과외선생님이 중재해 볼까 해서 픽업 운전자와 이야기를 시도했다. 그런데 그 운전자가 너는 또 뭐냐며, 왜 끼어드냐며 화를 냈다.

경찰은 리포트 쓰겠냐 물어봤고, 과외선생님은 내게 픽업 운전자가 너무 무례하니 예방의 차원에서 리포트를 쓰라고 하시다가 결국은 과외선생님이 자기가 써주겠다며 개인 정보를 제외한 사건 경위를 다 써주셨다. 과외선생님도 많이 놀라셨는지 리포트 쓰는 손이 내내 덜덜 떨렸다.

그렇게 경찰 리포트를 하고 경찰은 보험회사에 연락해 차를 고치라고 하며, 이제 가도 된다고 했다. 과외선생님은 경찰이 있을 때 가는 게 좋겠다고 했고, 그래서 경찰이 도서관 주차장에서 사건 마무리하고 있을 때,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목격자 아저씨와 정의감에 불탄 라틴청년, 그리고 과외선생님께 감사하다. 한 편으로는 너무 떨렸지만, 한 편으로는 약간 흥분되기도 했던 사건이다. 무슨 사건인가 지나치지 않고 도와준 사람들을 곱씹으며, 이곳이 어떤 사회인가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도 대다수 사람들은 정의롭고 착한 시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주에 들었는데, 그 픽업 운전자가 뇌 수술을 3번이나 받은 사람이라 자주 뭘 잊어버리고 무례하기 짝이 없어서 원래 도서관 직원들도 모두 아는 유명한(?) 사람이란다. 그런 사람이 운전을 하고 다니다니 무섭다.

아...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이와 같은 사건이 또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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