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영어 회화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대만 아줌마는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왜 그런가 했더니 오기 전에 교통경찰에게 잡힌 모양이었다. 정지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잠깐 스탑 하고 출발하는 데 갑자기 어디선가 숨어 있던 경찰이 튀어나와 스탑 싸인을 지키지 않았다고 벌금 티켓을 주었다고 했다. 아줌마는 정지했다고 항변했지만 경찰은 정지 후에 ‘하나~ 둘~ 셋~ 넷~ 다~ 섯~ ‘하고 천천히 센 후 출발하여야 한다면서 벌금 티켓을 주었다고, 아줌마는 억울함을 우리에게 토로했다. 정말 성미 급한 나 같은 한국인들에게는 최악의 교통 표지판이 바로 이 정지 표지판이 아닌가 싶다. 주로 차들이 별로 없는 주택가 골목길 교차로에 정지 표지판이 있는데, 아무리 준법정신이 투철한 미국인이라도 아침 등교 시간, 스탑 싸인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서서 정지한 후 출발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 스탑 후 1-2초 내에 출발한다. 물론 아줌마가 등교 시간에 경찰에게 잡힌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트래픽 때문에 등교 시간에는 정지 후 빠른(?) 출발이 용인되지만 그 시간이 아닌 경우에는 잠깐 정지했다가 출발한 것이 교통 위반이라니 억울할 만도 하다.
아줌마는 너무 화가 나서 그 후 그곳 근처에 멈춰 서서 10대의 차를 관찰했다고 한다. 스탑 싸인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정차했다가 가는 차가 있는 지를 확인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열 대의 차 가운데 그 어떤 차도 그렇게 오랫동안 정차했다가 가는 차는 없었다고 했다. 아줌마는 자신이 안 멈추었던 것도 아니고 여느 차들과 마찬가지로 스탑 했다가 출발했기 때문에 이번 교통 티켓은 너무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이처럼 교통 위반 티켓은 복불복의 성격이 강해 운수 좋은 날은 피하고, 혹시 받게 되면 오늘 재수가 없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넓어 운전을 몇 시간 이상 하다 보면 이내 지겨워진다. 특히 크루즈 기능을 사용해서 가다 보면 졸리기까지 하다. 어느 여름,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는데, 미 중부에 있는 몇 개의 주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 가운데 한 주였던 네브래스카는 가도 가도 평원인데, 어떤 시골 길들은 일 차선 길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일 차선 도로에서 여러 대의 차들이 줄줄이 너무 천천히 달렸다. 추월을 잘하는 남편은 한 대씩 한 대씩 반대편 방향 차선을 보며 추월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맨 선두에 선 차를 추월했고, 앞에 가로막은 차가 하나도 없으니 신이 나서 앞으로 쭉 내달렸다. 그런데 아뿔싸, 우리 차가 마지막에 추월한 맨 앞 차는 경찰차였다. 경찰차는 사이렌 소리를 우렁차게 지르며 우리 차에게 한쪽으로 멈춰 서라고 손짓했다. 남편은 찍 소리도 못하고 꼼짝없이 과속 티켓을 받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시골길 1차선 도로에서 그 많은 차들이 그렇게 천천히 갔었던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그 후 경찰차를 추월한 남편의 이야기는 놀림거리로 회자되었다.
그 여행길에 남편은 또 경찰차에 잡혔다. 이번에는 속도위반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딸이 정말로 화장실이 급해 마을을 찾아 달리고 있었던 중이었다. 우리는 경찰에게 화장실이 어디냐, 아이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한다고 했다. 경찰은 힐끗 딸을 보더니 벌금 대신 화장실 위치를 알려주고 우리를 따라왔다. 우리는 최대한 속도를 지켜가며 경찰이 알려준 화장실을 찾아 바로 들어가기도 했다.
대만 아줌마는 어느 날,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날은 경찰에게 잡혔지만 티켓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아줌마는 앞 차를 따라 약간의 스피드를 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아줌마 앞 차가 과속이었고, 아줌마도 사실은 과속이긴 했지만 앞 차와 속도를 맞추어 따라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경찰차가 앞 차는 잡지 않고, 이 아줌마만 잡았나 보다. 아줌마는 경찰에게 당당하게 말했다고 했다.
“나는 앞 차의 속도를 따라갔을 뿐입니다. 왜 저 앞 차는 잡지 않나요?”
경찰은 아줌마 이야기를 듣고 운전면허증을 자세히 살핀 후, 주의만을 준 채로 그냥 보내줬다고 한다.
아줌마는 가끔 경찰들이 유색인종만을 잡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 영어 선생님도 쉬쉬거리는 소문을 이야기해주었다. 교통경찰들이 멕시칸이 운전하는 차가 교통위반하는 것을 포착하면 거의 100% 티켓을 준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소문이고,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굳게 믿지만 이런 소문이 났다는 것만으로도 괜히 찜찜하긴 하다.
어쨌든 미국 교통경찰들의 공통점은 도로 교통 위반을 단속할 때, 후미진 곳에 숨어있다가 위반 차량이 나타나면 짜잔 하고 나타나서 티켓을 발부한다는 것이다. 한 번은 고속도로에서 정말 빠르게 과속으로 달리는 차량을 보게 되었는데, 너무 빨라서 위험하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경찰차가 나타나서 그 차를 따라갔다. 또 어떤 때는 오른쪽 도로 옆 절벽이 너무 멋있어서.. 와 여기 절벽 멋있다.. 하고 생각하는 데, 그 절벽을 지나치자마자 그 뒤쪽에 잠복하고 있는 경찰차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러니 언제 어디서 단속한다며 나타날지 모르니 평소에 신호와 속도를 잘 지키면서 운전하는 게 속 편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미국 사람들은 경찰차가 있다는 걸 뒷 차에 알려줄까? 몇 년 전, 제한 속도 30인 길을 달리고 있었다. 시속 30마일은 대략 시속 48km인데 약간의 오르막길 후 내리막길이 있는 구간에 차도 없고 하니..
거의 항상 35 정도까지 속력이 나게 된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그렇게 달리고 있었는데, 언덕을 내려가는 길,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어떤 할아버지가 내게 업 - 다운 손짓을 몇 번 반복했다. 눈치 없던 나는 무슨 일이 났나? 생각하며 둘러보다가 나도 모르게 속도를 줄여 언덕을 내려왔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경찰차가 나무 뒤에 숨어 있었다. 그제야 아... 저 할아버지가 나한테 사인을 보내신 거구나.. 알아차렸다.
그럼 미국의 도로 위 차 운전자들은.. 경찰차를 발견하고 뒷 차에게 경찰차가 있다는 신호를 보낼까?
복불복이지만.. 한 번 사인을 보내는 운전자와 마주친 적 있다. 어디든 교통경찰에게 잡히는 일은 피하고 싶고, 다른 운전자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가보다.
이런 와중에 몇 년 전, 경찰차 위치를 알려주는 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비게이션 기능과 함께 경찰차가 어디 있는지 위치를 알려준다. 중요한 것은 이 앱이 운전자들의 마크에 의해 경찰차 위치가 표시되는 것이라서 100% 정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경찰차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신호를 서로서로 공유해 모두 같은 마음으로 운수 좋지 않은 날을 피하기 바란다는 점이 인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