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주의자의 일용할 양식

by 풀 문

SKY AD사장님의

핵심 지인 프로젝트이자

초미의 관심 프로젝트.


[와일드 게임 시즌3] 옥외 캠페인 건으로

곧 있을, 제작물 미팅 준비를

가까스로 마친 라유나.


후..........우.........


노트북을 탁 덮고

거북목을 쫙 펴고

몸 안에 며칠 째 갇혀있을지 모를

환기 안된 공기와 가스들을

날숨과 함께 크게 뱉는다.


한편, 근방의 제작팀에

여시 맹은하가 무슨 목적인지 어슬렁 대고 있다.

라유나가 말을 건다.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난다.


“여ㅅ! 아니.. 맹팀장님! 저희 쥑이는 아이디어 나왔는데,

광고주 미팅 시간 픽스됐어요?"


여시의 얼굴에 노골적인 화색이 돈다.

“어머! 뤼얼뤼(really)? 완전 기대돼요! CD님

목요일 오전 10시요! ”


그리곤,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잇는 여시.

“참! 고전무님이 좀 있다 저희 미팅에 들어오신다고...

퀵 뤼뷰(review)라도 꼭 하시겠다네요.

제 선에서 스킵하려 했는데...근데 쥑이는거 있으시다니

노 프롸브름(No problem)인 거죠? CD님?"


라유나 얼굴의 명도, 채도가 동시다발로 떨어진다.

“퀵 리뷰일지, 롱 리뷰일지 함 보자구요.

리뷰 전, 백그라운드 확실히 공유드리세요

도슨트처럼 제작물 히스토리 설명할 시간 없어요. 저"


“그럼요 CD님~ 제가 전방위에서 지원사격 해드릴게요. ”


여시가, 엄지 검지로 빵! 하고 총 쏘는 시늉을 한다.

라유나는 마지못해 웃어주며

살짝 욕스럽고 찰지게 속엣말을 뱉는다.


'아휴, 저저.... 식육목 개과 동물 같으니라고!!!'


그날 오후

16층 기획 본부, 대회의실

제작팀과 기획팀이 마주 앉아있는 가운데,

난데없이 웬 매체팀 한 다발이 우르르 들어온다


조영한의 기습적인 한줄평이 단톡방에 뜬다.

조영한: 밥상도 안 차렸는데, 숟가락들부터 얹는 형국이군요.

김이나: 차장 숟가락 등장!

박수호: 그 뒤에 팀장 숟가락!!


마지막으로 고전무가 들어선다.

한영서: 대왕 숟가락 입장이요!!!


제작팀, 폰에서 고개를 들어 묘한 눈웃음을 주고받는다.

일어나 인사하려는 직원들을 만류하며 고전무가 말한다.

“아~아~편히들 해요.”


특유의 불편한 존재감으로,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며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 가죽 수첩]을 책상 위에 탁 내려놓는다.


제작물 공유를 시작하는 라유나.

첫 문장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검은 가죽 수첩을 열고 뭔가를 적어 내려가는 고전무.


총 3개 라인으로 밀도 높게 구성된 제작물.

라유나의 모든 설명이 끝나자,

살짝 불편할 정도의 살짝 긴 정적이 흐른다.

전무가 입을 연다.

시선은 라유나가 아닌 자신의 수첩에 가있다.


"다 좋은데, 스팟을 좀 좁혀야 하지 않을까?"


라유나가 답한다.

그녀의 시선도 전무가 아닌 전무의 수첩에 가 있다.

“처음부터 접점을 좁혀버리면

확산 가능성을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캠페인일수록 브레이브 하게 가는 게 정설이죠."


“정설? 우리의 대범한 시도에

광고주가 오버 차지할 합리적 가설이 있을까?”


"와일드 게임은 타겟이 브로드 합니다.

뾰족하게 가기보다, 유동인구 많은 곳에 브로드 하게...”


이때, 매체팀장이 불쑥 끼어든다.

그의 시선은 누구에게도 아닌, 전무에게만 고정되어 있다.

“맞습니다. 전무님, 저도 그 지점이 애매했어요

한 달 전 타 캠페인에서도 유사한 매체 진행했거든요.

그때도 전무님 어드바이스 없었으면 매체 효율, 형편없었 을 겁니다. 게다가 이런 건 KPI에도 잘 반영 안 될…”


전무는 매체팀장의 장광설을 표정 변화 없이 듣는다.

말 엉덩이 안쪽에서 극소량만 채취 가능해

보통 한 마리 말에서 수첩 두세 권 분량도 나오기 힘들다는

가죽계의 다이아몬드, 코도반 가죽으로 만든

자신의 수첩만이 유일한 대화 상대인양

고전무는 회의 내내, 죽은 말의 엉덩이에게만 시선을 보낸다.


매체팀장의 말은, 한동안 끝날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시대 이후, 요즘 광고주들에게 어필하는 건

‘모험’보다 ‘확신’이죠. 지난번 피티에서 얻은 레슨이....”


라유나는 가슴께가 조여드는 걸 느끼자,

도망가듯 널찍한 바깥 유리창에 시선을 던진다.

근데 그때, 그 안에 매체팀장의 실루엣이 기괴하게 비친다


'또야? 그래!! 어디 한번 해봐!!!

이번엔 어떤 빌어먹을 짐승 놈이지?'


그의 눈, 코, 입이 화약약품을 끼얹은 듯
서서히 녹아내리듯 물러지더니 형체 없이 무너진다.

표면은 축축한 막을 형성해

이내, 서서히 찢어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얼굴의 절반이 쩍-하고 벌어진다.


거대한 원형 흡착체.

람프레이(Lamprey)


안쪽으로는 날카로운 이빨처럼 생긴

수십 개의 돌기들이 겹겹이 빽빽하게

흉물스러운 몰골로 박혀있다.


사냥법도 공격법도 모르고

오로지 다른 생명체에

흡착하는 기술로만 생존하는 존재.

힘의 흐름에 따라 달라붙어

그 힘을 조용히 쪽쪽 빨아먹음으로

자신의 질긴 생명줄을 조금씩 연명하는 존재.


그는, 아니 그것은

이내 고전무의 몸 근처로 가더니

돌연 그의 얼굴에 ‘처억‘하고 달라붙는다.


케라틴 이빨로 피부를 긁고 찢어

날카로운 혀로 살을 파낸 후,

전무의 몸속 피와 체액을

서서히 그러나 야무지게 쪽쪽 빨아 삼킨다.


여실히 드러난 전무의 핏줄은

색을 잃은 먹줄에 가까워지고

그의 살갗은 죽은나무 껍질처럼 뻣뻣해지고 있다.


'뭐야!!! 이건 또!!'


아무 때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곤 하는

라유나의 상상력이

이인증과 결합이라도 한걸까?


아님,

이 모든 게 현실인 걸까?


어느 쪽이 사실이 든 간에 그녀의 이인증은 이제,

한층 더 자극적이고 기발하며 BGM까지 흐를 만큼

크리에이티브하게 변종되고 말았다.



라유나는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모든 감각이 선로 밖으로 폭주하고 있지만

조금만 버텨낸다면

여느 때처럼 원복 할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독종 라유나에겐 있다.


하지만 여기는 망할 회사고, 지금은 젠장할 회의 중이다.

즉, 도망차처럼 뛰쳐나갈 수 없다.

람프레이는 곧 자신의 말을 마무리 지을 것 같고

그렇다면 자신도 곧 의견을 내놓아야 할 상황이다.


분하지만 하는 수 없다. 딱 오늘만이다.

가방 속에 손을 넣어, 알프라졸람 한 알을 급히 건져 올려

라유나는 아무도 모르게 입안에 넣고 꿀꺽 삼킨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고

모든 행동이 찰나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상황을


누군가가 봐버렸다.



람프레이의 별 영양가 없는 의견은 일단락되고

라유나의 위기도 한층 수그러 들었다.

전무의 몇몇 질문에 라유나는 즉답을 주고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다.


"기술적으로, 치밀하게 설계만 된다면,

굉장히 큰 이슈가 될 겁니다."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으니, 제작물 완벽히 준비하고,

매체적용한 성공사례로 광고주 안심부터 주자구. "


라유나의 확신 그리고

고전무의 형식적인 덕담과 함께.


라유나의 예언대로, 유난히 길었던 회의.

회의실을 나서며 다들 피곤한 표정을 하나씩 꺼내 짓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여시만이

묘한 웃음을 꺼내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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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프레이(Lamprey) #에어리언이랑 쌍둥인줄

#라유나의 직업병 #이인증도 크리에이티브하게

#여시의 육감 발동 #고전무_ 이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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