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수면스킬, 반뇌수면

by 풀 문

도시의 밤하늘을 밝히는 건

노동자들의 야근이다.


오늘 밤, SKY AD 빌딩에도

환한 인공 별빛들이

총총히 박혀있다.


와일드 게임 시즌 3 프로젝트.

기획과의 제작물 미팅을 하루 앞둔

꽤 늦은 저녁.


회의실 테이블 아래,

5쌍의 다리가 각자의 MBTI에 맞게 떨고 있다.

벽면엔 수십 장의 아이디어가 붙어 있고

그중 두어 개의 아이디어에 포스티잇이 붙어 있다.


“좋은 건 있는데, 죽이는 건 없네.

제발 킬링 아이디어로 내 숨좀 턱 막히게! 안 되겠니?"


동물의 사체 위를 다시 선회하는 독수리처럼,

라유나는 관철되지 못한

아이디어 사체들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스캐닝하고 있다.

'혹시 어딘가, 놓친 실마리가 있을지도 몰라'


매 프로젝트마다,

조바심이 70%이라면 나머지 30%는 평정심으로

자신의 정신세계를 유지 관리 보수하던 라유나,

이번엔 그 30%가

강박, 초조, 불안감으로 모조리 침수되고 말았다.

며칠 전, 여시로부터 들은 '고전무 프로젝트 개입설'이

그녀의 심기를 심하게 건드린 듯하다.


라유나는 최근 며칠간, 매일 반뇌수면

(unihemispheric slow-wave sleep)을 하고 있다.

향유고래, 기러기, 앨버트로스 등이

이 기괴한 수면법을 취하곤 하는데,

뇌의 한쪽 반구만 수면 상태에 들어가고

나머지 반쪽은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가장 편안해야 마땅할 수면 시간조차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온 신경을 부릅뜨고 있는 것과도 같다.


생존을 향한 그들의 본능처럼

매일밤 라유나는 반뇌수면을 자청해

불길한 프로젝트를 어떻게든 풀어내려 하고 있다.

자신의 반쪽 뇌를

단 한숨도 재우지 않으면서.


갑자기 정적을 깨고, '톡!' 소리가 난다.

임현수: 유나야, 얘기 좀 하고 싶은데 시간 되니?


읽자마자, 메시지 하나가 더 뜬다.

임현수: 괜찮으면 너희 집 앞으로 갈게.


대화창에서 도망치듯 나오는 라유나.

휴대폰 전원 버튼을 끄고 피곤한 듯 눈을 감는다.

그 옆, 김이나는 빨대가 너덜너덜 해지도록 씹고 있고

조용한은 텀블러 속 얼음을 입에 넣었다 뱉었다 하며

한영서는 뿔테 안경을 호호 닦아, 눈이라도 말똥하게 뜨고


이수호는 공중을 향해 눈을 요리조리 굴리다가....

입을 연다.


“저... 근데 하나만 말해봐도 돼요?”


눈을 감은 채로, 라유나가 빠른 반사신경으로 말한다.

"두 개 말해도 돼."


얼음을 문 채로, 조영한이 반 박자 늦은 반사신경으로 말한다.

"열 개 말해도 돼."


일제히 '제발!'이라는 표정으로 이수호를 바라보며

클라이맥스로 각자의 다리를 떠는 팀원들.

이에, 살짝 애간장을 태우다가 입을 여는 이수호.


“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다르게 보이는 걸... 뭐라더라”


“렌티큘러?”

김이나가 빠르게 답을 물어다 준다.


“네 맞아요! 그걸 이용하면요?

정각도에선 그냥 사람 이미지가 보이는데

다른 각도에선 와일드한 야수 이미지가 보이는 거죠

장소별 스팟마다 막~버라이어티 하게요.

게다가 사람에 따라

야수 이미지도 변형을 주는 거죠.

묘하게 막~닮은 듯한... 부캐처럼요!

그리고 그때, 메시지가 쓰윽 뜹니다.

네 안의 와일드를 불러내라."


각자의 뇌 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하느라,

회의실은 일순 고요해진다.

조영한은 사색할 때마다 나오는 루틴인

반묶음 머리를 가만히 쓸어내리며

이수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철학가의 시선에 민망해진 이수호는

얼마 전, 해외 직구한 비니를 이리저리 고쳐 쓴다.


가슴에 팔짱을 끼는 조영한,

마침내 한줄평이 완성되었다는 신호다.

"기술의 힘을 빌어, 인간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다.”


김이나가 흥분해 덧붙인다.

"키네틱 아트 같은 거잖아요. 타겟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전 너무 좋아요 CD님!"


감고 있던 충혈된 눈을, 좀비처럼 번쩍 뜨는 라유나.

"죽이네! 된 거 같다! 자, 그럼 시간 없으니까

영한 앤 영서는 완전 죽이는 메시지 붙이고

이나 앤 수호는 비주얼 확 그냥 막 그냥! 오케이?"


"넵!!!!"


반나절 만에 회의실에서 석방된 팀원들.

굳어진 관절을 스트레칭하며 각자 자리로 흩어진다.

누군가의 척추에서 '뚝!‘하는 소리가 난다.


렌티큘러 옥외 광고 케이스를 신나게 모으던 김이나,

근데 갑자기 정지 모드가 된다.

"이거, 문제없이 구현되겠지?

나 한 번도 안 해봐서 말이지...

앵글이며, 구도며 오류 없어야겠지? “

아...겁나 걱정... 수호, 업체 전번 좀!!"


“넵, 지금 공유드렸습니다"


"오케이~광고주 미팅 전에 시뮬레이션 단단히 하고

시안부터 일단 퀵하게 잡아보자."


" 정면부터 잡아볼게요!

다른 각도는... 그러니까 인물 높이에 코싸인 씌우고

거기다 루트 씌워 로그 값 내고

제곱근에 원주율 딱 곱하면

대략, 렌티큘러 각도 나올 것 같습니다."


김이나, 수호의 장난질을 덥석 문다.

"아놔! 루트가 왜 갑툭튀야!

렌티큘러엔 이차 방정식이 정설이지!

수호, 수학 몇 등급이었음?"


한영서와 조영한은 모니터를 응시하며 카피 논의 중이다.

"카피님, ‘네' 띄우고 '안의'일까요.

아님 '네안의' 다 붙이는 걸까요.

그리고 '불러'띄우고 '내라'일까요.

아님 '불러내라' 다 붙이는 걸까요."


조용한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뜬다.

"고난이도의 질문이군. 흠... 약간만 띄우도록 하지.

띄운 듯 안 뛰운 듯, 한 듯 만 듯, 모르는 듯 아는 듯."


"역시...! "

조영한의 동문서답에 흡족해하는 한영서.


자고로 팀원은

약간 거리를 두어야 이상적이기에

팀장의 자리만 저만치 떨어져 있는 걸까.

이토록 1차원적인 대화가 흐르는 줄도 모르고

라유나는 멀찍이서 이들을 보며 흡족해한다.


'정말인지, 듬직한 아이들이야!'



부우우우!!!!

부우우우!!!!

부우우우!!!


회의 후, 전원을 다시 켠 라유나의 전화에

진동이 요동친다.

아까 메시지의 같은 발신처인

'임현수'가 뜬다.


라유나는 그 이름을 잠시 바라보다가

'지금은 통화할 수 없습니다'

상용구를 찾아 전송한다.

그리곤 속엣말을 뱉는다.



'앞으로 너와 나는

영원히 통화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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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왕국_멘탈갑 # 잘하고 있다_라유나

#문화유산 지정 # 몇 안되는 인간계 팀장

#근데_임현수_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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