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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Oct 15. 2023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어떤 사람에게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고작 입 밖으로 내뱉는 행위지만, 그 말이 목구멍에 한 번 걸리고, 혀를 거쳐 숨과 함께 토해낼 때까지 수많은 생각을 거친다. 아주 사소한 음식 메뉴부터 사람에 대한 감정까지 모든 범주에 해당한다. 과연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맞을까? 이 마음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건가? 진심은 맞을까? 잠시 저울이 기우뚱-기울었을 뿐 시간이 지날수록 증발하는 얼음 같은 마음이면 어떻게 하지-


결국 내가 찾은 가장 좋은 변명거리는 ‘아무거나’였다. 아무렴, 아무거나 다 좋지요. 저는 뭐든 상관없어요. 다 괜찮아요. 나는 이 대답이 그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나 대답을 강요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가장 유용하게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강하게 선호하는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강하게 부정하거나 싫은 것도 없는 그런 회색 인간, 그게 나였다. 억지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닌, 정말 특별히 좋거나 싫은 게 없는데, 어떻게 그중에 하나만을 선택하라는 말인가!


어렸을 때 진로에 대해 정하게 되는 순간이 가장 괴로웠다. 안타깝지만 이 점은 지금도 그렇다. 꿈과 진로는 엄연히 다르다. 나는 초등학생 때는 누군가를 치유해 주는 일에 관심을 느껴 의사가 되고 싶었고, 중학생 때는 만화 그리는 것에 빠져 만화가나 웹툰 작가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생 때는 여전히 타인의 마음을 돌보는 일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심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맙소사,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갔더니 더 넓은 세상에 던져진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관심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춤을 배울 때는 잠깐 뮤지컬이나 무용을 겸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보고, 글을 쓸 때는 또 작가 쪽으로 눈을 돌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말하는 대로’가 아니었다. 내가 나열한 것은 이상이나 꿈에 가까운 것들이었고, 현실적으로는 한 가지 길을 정한 후 시간 투자 대비 가성비 좋은 효율을 냈어야 했었다. 그래야 사회에서 안정적인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의사를 제외한 내가 좋아하거나 하고 싶다고 말한 것들은 ‘나중에 취미로도 할 수 있으니…’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으며 자랐다. 그렇게 난 어느 순간부터 내 기호를 잃고 말았다.


기호를 잃는다는 건, 생각보다 무서운 증세다. 언뜻 보면 자기주장이나 고집이 세지 않아 유순하고 말을 잘 듣는 둥그런 성격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공격적으로 표현하자면, 우유부단하고 줏대가 없으며 생각이나 속을 알 수가 없어 상대방에게 모호한 인상을 준다. 나는 살아오면서 이 두 가지를 모두 들어 보았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기호 설정과 의사 표현이 중요한데, 과거에 스스로에 대한 방향을 잃었던 시기에는 인간관계에서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다. 누군가에게 호감이 생기는 순간도, 비호감이 생기는 순간도 끝까지 나를 의심했다. 내가 지금 든 감정이 정확한 지 누가 정답을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그런 답답한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내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애매한 관계를 이어가거나 혼자 스트레스를 받다가 갑자기 그 관계를 저버리는 선택으로 피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본능적으로 이런 내 모습을 돌파하고 싶었던 내면이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처음엔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조차도 숨겼다. 당연히 나보다 실력 좋고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차고 넘칠 텐데, 감히 내가 글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글의 힘을 빌려 복잡하고 잡다한 나의 생각들을 정리를 해보고 싶었다.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듣게 될 타인의 평가와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두려워 그동안 마음속에 묵혀 둔 생각들을 조금씩 글자 위에 얹어서 꺼내 보았다.


시작은 사소한 상상력으로 써 내려간 A4 한 바닥 미만의 짧은 이야기들이었다. 지금 읽어보면 아주 유치하고 정돈되지 않은 날것의 내용이지만, 그때 그 서툰 글들을 건너 건너 알게 된 작은 글모임에 초대되어 공유했다. 그런 부끄러운 글에도 정성스러운 감상평을 육성으로 전달해 준 언니, 오빠들에게 늘 감사하다. 또 한편으로는 정말 글 쓰는 행위 자체가 좋아서 몰입하여 새벽까지 써보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호기롭게 감상평을 이어간 나의 용기에도 박수를 쳐주고 싶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와 가족,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꺼내고 다시 그것들을 정리하는 것을 반복하며 나만의 철학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철학은 누군가를 따라가거나 누군가에게 보기 좋기 위한 것도 아닌 온전한 나만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도자기가 서서히 구워지는 것처럼 단단해지고 견고해졌다.


나는 이렇게 글과 함께 성장하고, 또 수많은 사례를 겪으며 나의 기호를 되찾았다.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 싫어하는 걸 싫어한다, 애매한 건 애매하다 이렇게 간단한 생각과 표현조차도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최근 퇴사 후 아르바이트와 취업 준비를 병행하고 있는 요즘, 몸은 피곤할지언정 후회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모두 나의 선택과 결정에서 이루어진 일들이다. 내가 더욱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한 진로 재정립과 내가 더 빛날 수 있는 회사를 찾아 떠나는 여정,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따르는 기회비용을 즐거운 마음으로 응대하고 있다. 세상에는 직업이든, 음식이든, 가치관이든 꼭 하나만 골라야 한다는 법은 없다. 오직 한 가지부터 셀 수 없는 N 가지까지, 그 개수에도 정답이 없다. 단지,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일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과 확실한 이유만이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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