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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Sep 25. 2023

오전 10시 37분, 카페 출근

출근길에 커피를 사갈 때, 가로수길 카페에서 아침부터 각자의 반려견이나 아이를 데리고 모여 있거나, 야외 테라스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보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얼마나 부지런해야 아침 9시부터 모이시는 걸까? 카페에서 일정량의 수다를 다 채우면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갈까, 아니면 다들 집으로 돌아가서 잠을 청할까? 술도 먹는 걸까? 그러면 그건 낮술이 아니라 아침술이라고 불러야 하나?‘


‘저분은 어떤 일을 하시길래 지금 출근도 하지 않고 책을 읽고 계실까? 아닌가, 일을 안 하시는 건가? 나이가 나랑 비슷해 보이는 데, 부모님께서 부자인 걸까? 집이 여기일 수도 있겠네. 강남에 집이 있으면 꽤 부유한 축에 속하겠다. 아니면 단순히 나처럼 집보단 밖에서 작업하는 걸 좋아해서, 집은 엄청 멀리 떨어져 있다면 재밌겠다. 카페를 좋아하는 그런 결이 비슷한 사람을 발견하면 반가울 것 같아.’


-따위의 생각을 하며 안간힘을 쏟아서 관찰하고, 계산 후 카페를 나서는 그 순간까지 내 부러움과 동경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퇴사를 하게 되었을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퇴사 후 나의 행보였다. 회사에 남게 된 동료들이 물었다. ‘수현 님, 퇴사하면 뭐해요? 어디 여행 가요?’ ‘여행 가면 해외로 가요? 고향 내려가시려나?’ ‘아냐 생각보다 어디 안 가고 늦잠 자는 일이 목표일 수도 있어’ 맞다. 전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었지만 나는 생각보다 싱거운 답변을 내놨다. ‘그것도 다 좋은데요,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일어나서 11시쯤에 카페로 가는 거요!’


퇴사 후 실제로 나는 그것부터 실천했다. 처음에는 동네의 여러 카페를 돌아다니는 것에 흥미를 붙였다. 가는 곳마다의 새로운 디저트와 음료도 함께 탐방을 하는 마음으로 설레었지만, 시간이 너무 여유로웠던 것인지, 아니면 동네가 너무 작았던 탓인지 2주 만에 모든 곳을 들리게 되었다. 결국 내가 정착한 곳은 지나가는 사람과 풍경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버스 종점 옆의 한 카페였다. 공교롭게도 고향 집도 버스 종점 근처라서 늘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곳이 끌렸던 이유도 비슷한 환경이 주는 안정감이 아닐까 싶다. 내가 자리 잡은 카페에 점을 찍고 울산의 그 버스 정류장에 점을 찍은 후 지도를 반으로 접으면 데칼코마니처럼 만날 것만 같았다.


그 카페에서도 특정한 자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는 카페 내부의 전경이 모두 보이면서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통창의 풍경이 보인다.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의 중심에는 작은 버스 정류장이 있다. 가끔은 사람이 꽉 차있고 가끔은 연인이 함께 서서 대화를 나누거나 아주 가끔은 걸음을 잠시 멈춘 할아버지께서 혼자 앉아계시기도 한다.


정면을 바라보면 카운터와 키오스크에서 머무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앞에서 외국인 학생은 영어로 번역된 안내문이 흘러나오도록 세팅 후 한참을 서있다. 신중하게 메뉴를 고르는 일은 중요하기 때문에 나도 함께 숨을 참고 보게 된다. 반면, 대부분의 한국인은 이미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메뉴를 정하는지, 속전속결로 골라버린 후 영수증마저 가져가지 않는다. 이렇게 키오스크 앞에서도 사람들의 모습이 다르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카페의 지하 자리 풍경이 보인다. 그곳은 깊숙하면서도 은밀한 곳이다. 노트북 화면이 노출되지 않길 바라는 어떤 이, 혹은 둘 만의 시간을 조용히 가지고 싶어 하는 커플이다. 그러나 지상층으로 올라올 때 계단과 낮은 천장 때문에 작은 해프닝이 간혹 일어나곤 한다. 그러면 카페에 있는 모두가 마치 공포 영화의 클리셰를 보는 것 마냥, 그런 일이 일어날 법직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깜짝 놀라는 건 어쩔 수 없다는 몸짓으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리고 엉덩이에 목공풀을 붙인 마냥 진득이 앉아 있는 내 자리 양쪽은 항상 누군가가 거쳐가서 그 자리도 마치 정류장과 같은 곳이다.


평일 오전의 카페 풍경은 퍽 낯설었다. 그 시간에 멀뚱하게 앉아있는 나도 어색했고 공기도 어색했다. 심지어 막상 노트북이며 책이며 짐을 바리바리 싸 오긴 했지만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갑자기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순서까지 정해야 할 것만 같았다. 결국 그날은 아침에 집을 나와서 저녁에 카페를 나서는 시간까지 하루 반나절동안 책도 읽는 둥 마는 둥, 글도 쓰는 둥 마는 둥, 공부도 하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보냈다. 유일하게 집중해서 끝을 본 건 주문한 케이크를 해치운 일이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반복하다 보니 그제야 조금씩 주위의 풍경과 소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주 오는 손님의 패턴부터 걸음걸이, 버스 주기, 통학 버스를 기다리는 대학생들의 줄이 길어지는 시간, 점심쯤 카페가 잠시 시끄러워지는 시간 등등 그럴 때마다 나는 또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그런 소재들은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하도록 정신을 쏙 빼놨다.


나는 그 카페의 그 자리에서 하나의 개념을 명명했다. 나에게 공백기는 공식적으로 '방학'으로 지칭하기로. 방학과 휴식의 가장 큰 차이는 끝의 유무이다. 방학은 언젠가는 끝나고, 학교든 집이든 정해진 일상과 장소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나에게 그 시간은 쉼이 아니라, 이 여유롭고도 가끔 숨을 조여 오는 마감 시간이 공존하는, 언제 끝날 지 모르는 방학이었다. 이전의 나는 방학 동안 특정 과목을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을 올리거나, 이를 악물고 다이어트를 해서 개강 후 몰라보게 변신하는 등 또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진화 기간이었고, 그러면 이번 스물여덟의 방학도 알차게 시간을 보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카페에서 가장 처음 한 일은 계획표를 짠 일이다.


~오전 9:30 기상

~오전 10:30 씻기

~오전 11:00 카페 출근 (집에서 카페는 정확히 7분 거리라서, 평균적으로 10시 37분쯤 도착한다.)

~오후 12:00 아침에 할 일 (독서, 문장 수집, 인스타 확인하기 등등)

~오후 13:00 점심 / 코인 노래방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것이다.)

~오후 17:00 저녁에 할 일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하기, 멍 때리다가 글쓰기 등등)

~오후 19:00 저녁 / 찢어지게 늘어져서 놀기

~오전 01:00 오밤중에 할 일 (밤에 집중 잘되는 일하기, 새벽 감성에 심취하기, 미룬 릴스 보기 등등)


초등학생처럼 원판에 그려볼까 했지만 이미 계획을 적어 내려갈 때부터 무의미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유일하게 하루도 빠짐없이 지켜진 건 ‘아침 10시 37분쯤 카페 도착하기’ 뿐이다. 그렇지만 더 이상 가로수길에서 마주친, 아침마다 날 많은 생각에 들게 한 요주의 인물들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그 요주의 인물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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