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현 Oct 05. 2023

간극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써내려 가기 위해선 솔직해져야 하므로 한없이 깊은 땅굴을 파고 들어간다. 그와 반대로 한 회사에 적합한 인재가 되기 위해 이력서를 쓸 때면 한없이 상공으로, 멀리 올라가서 나를 내려다봐야 한다. 이 두 개를 병행하고 있는 지금, 나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상승과 하강을 반복한다. 그래서일까, 글을 쓰기 위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가 곧바로 이력서로 넘어오지 못한다. 단단한 모습이 돋보여야 할 소개서에 연약한 살이 삐져나온, 지나치게 진실된 일기가 될까 봐. 마찬가지로 자기소개서를 위해 최대한 주관적인 목소리를 배제한 날이면 반대로 지극히 주관적이어야 할 에세이로 넘어오지 못한다. 이건 마치 전혀 다른 영역의 뇌를 쓰는 일이라고 느낀다. 두 개 중에 하나의 정의가 변하지 않는 이상 평생 좁혀지지 않을 간극.


간극은 일상 속의 나를 가끔 고장 나게 만든다. 간극이 맞는 말일까, 괴리가 더 적당한 말일까. '주파수가 맞지 않다'는 표현도 적당한 듯하다. 눈앞에서 어떤 둘의 틈이 점점 벌어져 가는 게 보이면 안타까울 정도다. 그게 꼭 사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일지라도. 내면을 비집고 들여다보는 글과 잘 갖춰진 나를 봐주길 바라는 글, 꿈과 현실의 괴리, 도통 맞춰지지 않는 너와 나의 주파수, 가치관이 너무 다른 사람들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각자만의 이해폭과 서로 다른 마음 그릇의 넓이 등등. 정말 세상에는 변치 않는 절대적인 간극이 존재할까?


난 그렇다고 생각한다. 상호 간의 이해의 간극. 아무리 내가 이해해 보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나 어떤 현상들. 혹은 처한 상황의 간극.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내가 혹은 네가 이미 수십 수백 미터를 앞서 있는데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평생 하느냐 하지 않느냐 조차도 간극이다.


꿈을 너무 깊게 꿨다가 일어난 그 순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일순간 멈춰있다. 꿈속의 사람들이 나에게 했던 말들, 얼굴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흐릿한 인물들, 꿈에선 너무 당연해서 허무하게 놓쳐버린 것들, 현실에서 우려한 것들이 꿈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서 경악을 금치 못했던 그런 장면들. 그런데 어쩜 그리 잠에서 깨기만 하면 꿈속의 세계가 우스워지는 것 마냥 안도와 함께 허탈함이 몰려올까. 나는 왜 그렇게 바보처럼 꿈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어쩌면 몇 시간도 아닌 몇 분 새 일어난 연극 같은 장면들로 애를 쓰거나 눈물을 쏟거나 행복해했을까. 눈을 뜨자마자 이질적으로 밀려오는 햇살과 시치미를 뚝 떼는 안방의 풍경은 날 멍하게 만든다.


그럼 너와 나는 어떨까. 우리는 정말 서로를 좁힐 수 있을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행동과 말을 가지고 있는 서로의 모습이, 남극에서 깊은 바다를 두고 동떨어진 빙산 조각에 서서 바라보는 듯하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이라는 전제를 붙여서. 만약 우리가 조금 더 성숙했더라면, 만약 우리가 조금 더 서로를 받아들일 여유가 있었다면, 만약 우리가 그런 편협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그런데 아무리 상상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거스를 수 없는 무엇인가 있는 것처럼. 애초부터 우리의 간격은 좁힐 수가 없게끔 세팅이 되어있는 것이다.


나와 나 자신 사이의 거리를 좁히지 못할 때도 있다. 그때는 정말 괴롭다. 직장에서,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친구와 함께 있을 때, 연인과 함께 있을 때 내 모습은 모두 다르다.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로 응축시켜 보려 하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를 정의하기가 나조차도 어렵다. 중식당 회전 식탁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나를 세워둔 채 빙글빙글 돌린 후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것처럼. 이렇게 나와 내 모습과의 간극이 너무 크게 느껴질 때면 쉽게 지치곤 한다. 어떤 모습일 때 나는 가장 안정적일까? 어떤 내 모습일 때가 가장 이상적일까?


하지만 이 글을 배설하고 나면, 나는 또다시 현실에 녹아들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생각할 것이다. ‘간극’이라는 단어나 개념조차 떠올린 적이 없는 사람처럼.

이전 02화 오전 10시 37분, 카페 출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