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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Sep 16. 2023

잠들기 싫어하던 아이

나는 어렸을 때 왜 그렇게 잠들기 싫어했을까.


기억을 곱씹어 보면, 피부에 내려앉는 햇살과 모두가 깨어 있는 낮을 극도로 좋아했던 나는 밤과 잠을 거부했다.

바깥에서 즐겁게 웃고 떠들다가 ‘자, 이제 마무리하자’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하루와 작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떠들썩하고 시끌벅적하던 공간이 점차 사그라들고, 아직 들떠 있던 마음을 억지로 종이접기를 하듯 접어야 하는 순간이 야속했다. 그 말은 곧, 나에게 충분히 뛰어놀 낮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과 같다.


엄마는 지금 내 나이쯤 나를 낳았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28살의 지음 씨는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이나 직장인도 아닌, 이미 세 살배기 아이가 있는 엄마였다. 그러니까 내가 카페에서 글을 쓰면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실 때, 지음은 엄마로서 경력을 쌓고 있었다.


원체 빈약한 체질이었던 그녀는, 내가 배 속에 있던 열 달 내내 입덧으로 먹는 것마다 웩-웩 토해냈다고 한다. 말랐던 지음은 가시처럼 앙상해지고 더 뾰족해졌다. 실제로도 유년기 기억 속의 엄마는 대부분 누워있거나 아파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첫째였다. 어리숙했던 지음은 육아든, 엄마 노릇이든, 시집살이든 모든 게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눈치도 없이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보챘다고 한다. 엄마는 새벽 내내 그 꼬챙이 같은 몸을 땀으로 적시며 나를 업고 둥기 둥기 구름을 태웠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어딜 데리고 갈 때마다 내가 그렇게 뛰어다녔단다. 당시 살던 집이 1층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정도였다고.


그만큼 에너지 넘치고 활동적인 나를, 엄마는 버거워했다. 그래서 내가 시야 밖으로 벗어나거나 혹시라도 사고라도 날까 봐 걱정되는 마음을 도저히 감당해 낼 자신이 없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설거지하다가, 요리하다가도 어디서든 나를 볼 수 있게 얌전한 화초처럼 집 안에 뒀다. 그게 엄마로서 최선의 보호라고 생각했단다.

그런 걸 알 리가 없었던 어린 수현은 밖에 나가고 싶다고, 놀이공원도 매일 가자고, 그러다 갑자기 동생 낳아달라고 칭얼칭얼-. 온갖 야단법석을 피웠다. 명절에는 더 심했다. 아빠 쪽 할머니 집으로 가면 묶여 있는 강아지며 송아지며 불쌍하다고 풀어주고, 마을 회관 마이크에다 대고 <꽃바람 여인>을 부르거나, 달력 뒷면에 어른들 초상화를 쓱쓱 그려서 동네 게시판에 허락 없이 붙여놓기도 했다. ‘드디어 내가 밖으로 나왔다’라는 일종의 시위였다.


‘그 집에 그림 잘 그리는 손녀 딸래미 눈 교?’ 혹은

‘말 똑 부러지게 하는 야시 같은 딸랑구는 눈 교?’


처럼 어르신들이 나를 궁금해 하시는 질문을 던지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 문호 큰딸래미 아인교’라며 은근히 자랑했다. 하지만 내가 진돗개 목줄을 풀어주거나 사촌들이 나를 따라나섰다가 별안간 진흙에 빠지는 등 크고 작은 사고를 치면


‘여자 아가 와 저래 대장질을 하노! 참 별난 아 아인가!’


하면서 엄마를 단속했다. 부모님으로서는 얼마나 난처한 아이였을까 싶다. 그렇게 잠들기 싫어하고 다루기 난처했던 아이는 일순간 기절하듯 곯아떨어지는 어른으로 훌쩍 커버렸다. 잠을 자지 못하면 예민해지고 주말에는 미룬 잠을 자느라 12시를 훌쩍 넘겨서 일어나는 나날의 연속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잠을 잘 자는 나를 보며 오히려 눈물을 뚝-뚝 흘린다.


“아이고, 내가 니를 너무 가두고 키운기라. 그렇게 뛰어 노는 걸 좋아했는데…. 그때 뭐든 욕심내서 시켰으면 춤이든 그림이든 더 잘했을낀데….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였다 바보.”


그러면서 자꾸만 내 등을 쓰다듬고 손이 꼭 자신처럼 애볐다면서, 그러면 안 된다고 밥을 남기면 혼낸다. 그러다가 또 미안하담서 우신다. 아무리 갱년기가 찾아온 탓이라고 해도, 울어도 너무 운다. 그러면 나는 엄마를 빼닮은, 손목뼈가 유독 튀어나오고 푸른 정맥이 잘 비치는 얇은 손으로 엄마를 다독여 준다.

이젠 잠들기 좋아하는 28살의 수현 씨가 28살의 새내기 엄마 지음 씨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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