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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Sep 14. 2023

꽃바위(化巖)

꽃바위라는 예쁘장하면서도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동네에 10년을 살았다. 그리고 다니던 초등학교, 중학교, 분식집, 미용실 등등 모든 곳에는 꽃바위 또는 화암(化巖)이라는 이름이 공식처럼 붙었다. 20년 전엔 동네에 초등학교가 하나뿐이라 한 반에 학생이 약 40명까지 있었다. 그중 나는 키가 작고 성이 ‘김’ 씨라 항상 3번 정도 이거나, 남-여 순으로 순번을 배정받았을 땐 33번이나 37번 그 사이 어디였다.


3학년이 끝나던 해에, 신설 중이었던 초등학교가 완공되었고 이름 투표도 이루어졌다. 당시 최종 후보로 ‘미암 초등학교’라는 이름이 올랐는데, 나는 그 이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해서 한 표를 던졌다. ‘화암’보단 ‘미암’이 더 세련되고 덜 촌스러웠다. 그런데 미암의 ‘미’가 꼬리 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그 이름은 무효가 되고 다른 이름으로 결정되었다. 난 바뀐 그 이름이 싫었다.


그렇게 나는 신설된 초등학교로 배정되었고 나를 포함한 절반의 친구들이 4학년 때부턴 함께 학교를 옮겨서 다니게 되었다. 싫었던 학교 이름과 달리, 새로 지어진 건물의 맛은 달콤했다. 넓은 운동장과 정문 앞 큰 문방구, 드라마에서만 보던 예쁜 교정이 갖춰진 학교가 마음에 들었다. 같은 동네였지만 전학 간 느낌이 설렜고, 그곳의 첫 4학년 학생이라는 점이 자랑스러웠다. 수업이 끝나고 큰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우리 집이 나왔다. 집은 언덕 위에 있었고, 밑 동네에선 멀었다. 밑 동네에 살던 친구들은 집으로 가기 위해 내려가면 됐었지만 나는 반대 방향으로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가파르고 힘들었다. 그땐 지금보다 몸이 절반 크기라서 집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그 점을 빌미로 캐리어 책가방을 조를 수 있게 되었고 나는 매일 아침 여행을 떠나는 심정으로 바퀴를 덜덜거리며 언덕을 오르내렸다.

대부분의 놀거리나 잘 노는 친구들이 밑 동네 아파트 단지에 몰려 있었다. 그곳은 번쩍거리는 유흥거리와 유명한 체인점들이 몰려 있었고, 왠지 그쪽에 사는 친구들은 빨리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반면 우리 집 바로 앞엔 고등학교 하나, 조금 더 멀리 걸으면 오래된 교회 하나, 그리고 더 많이 걸어가면 무거운 크레인 하나가 떡하니 서 있고 그 주변에 아주 큰 배가 떠 있던 아빠의 회사가 있었다. 가끔 땡땡이를 치는 고등학교 언니, 오빠들 이외엔 거리에 사람이 잘 없었고, 밤에는 깜깜했다.


나는 당시 공부에 욕심 있는 애들이 간다는 옆 동네 모 여중이나, 기 센 애들이 주로 간다는 모 중학교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다행히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동네의 중학교에 배정되었고, 역시나 꽃바위의 정체성이 가득한 이름이 붙어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이름보다 교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TV에 나오는 체크무늬 짧은 치마에 커다란 리본이 달린 교복을 입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정말 거리가 먼 디자인이었다. 대신 얇은 줄로 리본을 할 수 있는 옵션이 있어서, 나는 졸업할 때까지 그 리본이라도 충실히 하고 다녔다. 적어도 주변에 나처럼 그 리본에 진심이었던 친구들은 거의 못 봤다. 치마 길이나 머리 규제에 큰 불만이 없었던 수더분한 성격 덕에 학생주임 선생님께는 나를 온 교실에 데리고 다니며 모범 복장으로 알리고 다녔다. 그러다 너 때문에 내가 더 혼난다는 눈빛으로 아래위로 흘겨보는 몇몇 무리의 아이들과 마주치는 날엔 괜히 쉬는 시간에도 복도로 나오지 않았다.


학교나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거실의 큰 창문이나 방의 창문을 열어 두는 걸 좋아했다. 이상하게 집 앞마당은 어두침침하고 바람이 심했고, 뒷마당은 볕이 짱짱하고 햇살이 항상 내려앉아 있었다. 그래서 꼭 다른 세상 같았는데 어느 날은 이 괴리감이 낯설고 싫어서 앞마당을 바라보는 창문이 있는 곳은 애정을 주지 않았다. 대신 오목렌즈로 보듯 바다가 넓고 작게 보이는 뒷마당을 바라보는 베란다 창문에 서서 한참을 서 있곤 했다. 가끔은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없어져서 마치 커다란 해일이 우리 집을 삼켜버리는 상상을 한 날이면 그날은 꼭 무서운 꿈을 꿨다.


고등학생이 되고선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차로 한 시간도 더 가야 하는 산자락의 기숙사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성인이 된 후에는 그보다 더 멀리 떨어진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예전부터 촌스러운 그 동네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멀어졌고, 내 모습에서 이제 꽃바위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직도 언덕 위 그 집과 바다 근처 회사에서 머무는 부모님에게서는 꽃바위의 흔적이 짙고, 이제 막 스물두 살이 된 동생에게도 희미하게나마 아직 꽃바위가 남아있다.


그토록 멀어지고 벗어나고 싶었던 곳인데 하루가 벅찼던 날이면 이상하게도 촌스러운 그 이름들이 나를 두드린다. 그럼 나는 하나씩 그 이름들을 마음속으로 불러본다. 꽃바위 종점, 화암초등학교, 내가 다닌 초등학교, 중학교를 똑같이 다닌 동생, 여전히 꽃바위에 사는 아빠 그리고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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