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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Oct 11. 2023

쇠똥구리

나는 가끔 쇠똥구리를 생각한다. 쇠똥구리는 한마디로 ‘먹고 살기 위해’ 똥을 굴린다. 그렇게 동그랗게 잘 굴려진 똥은 흔히 ‘경단’이라고 불린다. (이 글에서는 앞으로 쇠똥을 경단으로 부르기로 한다) 극소량이지만 배설물로부터 그나마 영양분을 얻기 때문이다. 영양소 섭취 목적 외에는 그 경단은 쇠똥구리의 집이 되어주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어떤 동물이 한 쇠똥구리만을 위해 계속 배설물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잘 굴리고 있는 와중에 경쟁자가 훔쳐 가기도 한다. 그러면 다시 다른 목표물을 찾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경단을 굴린다. 살아야 하니까.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쇠똥구리는 그들의 주식(主食) 특성상 영양소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신체 유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과식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몸집 보다 큰 배설물을 먹어 치우기 위해서는 배설을 하는 동시에 식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자칫 여기 까지만 보면 평범하지 않은 식성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질 수 있지만, 쇠똥구리는 우리 생태계를 위해 큰 역할을 한다. 쓰레기나 폐수뿐만 아니라 쉽게 분해되지 않는 동물의 배설물도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인데, 바로 쇠똥구리가 이를 해결해 주는 것이다. ‘자연의 청소부’라고 불릴 만큼, 박테리아나 다른 미생물이 분해하기 어려워하는 것조차 쇠똥구리는 모조리 먹어 치우거나 땅 밑으로 옮긴다.


언젠가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켠 티비에서, 채널을 돌리다 자연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잠결이라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쇠똥구리 여러 마리가 조용히 각자의 경단을 열심히 굴리고 있었다. 음악이 시끄럽게 깔리지 않았고, 쇠똥구리가 나뭇잎이나 흙을 밟는 소리와 배설물이 굴러갈 때 끈끈한 소리가 극대화되어 들리고 있었다. 다들 잘 굴리며 가고 있다가, 한 쇠똥구리가 굴리고 있던 경단이 나뭇가지에 깊숙이 꽂혔다. 당황한 그 쇠똥벌레는 빼 보려고 이리저리 굴려보지만 더 깊게 박히고 만다. 뒤따라오던 다른 쇠똥구리가 함께 도와주며 낑낑댄다. 나는 숨죽여 그 장면을 보다가 아쉽게도 잠이 들어 어떻게 끝났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그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한 편으로는 인간의 이기적인 입장에서, 그 쇠똥구리가 엉뚱한 방향으로 경단을 굴릴 때마다 답답해서 티비 속으로 손을 넣어 빼 주고 싶었다. 그 쇠똥구리는 자신의 경단을 빼냈을까, 아니면 포기하고 다른 경단을 다시 처음부터 굴리러 갔을까.


잔잔했던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과 함께 새벽의 몽환적인 기억이지만, 난 그 이후로 쇠똥구리가 인간의 군상과 참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게 나일 때도 있었고, 부모님과 겹쳐 보일 때도 있었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서도 보였다. 굴리는 대상이 똥이라는 이유로, 쇠똥구리를 잘 몰랐던 시절의 나는 우스꽝스럽거나 더러운 곤충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쇠똥구리는 누가 뭐라 하든 일단 계속 굴린다. 거기에 알도 놓고 자신의 아이가 자라는 곳이기도 하기에 가장 큰 목표는 안전한 곳까지 자신의 쇠똥을 운반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본 다음날, 쇠똥구리에 대한 정보를 더 찾아보고 나서야 존경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서서 가는 것도 아닌 물구나무서기 자세로 몇 시간을 저렇게 굴린다니. 미련해 보이기 딱 좋지만 사실 그 속에서는 인류의 생태계와 자신의 생계가 달린 막중한 임무를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교 입학 후 처음에 서울에 올라왔을 때, 나 자신도 미련하다고 느껴질 만큼 바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열심히는 하며 아등바등 서울 토박이 친구들을 따라가려고 하는데, 결과가 이상하리만큼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중고등학생처럼 공부만 열심히 해서 되는 곳이 아니었다. 눈치도 빨라야 하고,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몫을 챙겨야 하며, 가끔은 보이지 않게 들어오는 외부 공격으로부터 나 자신을 잘 방어해야 했었다. 이 모든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던 나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미션이었다. 마치 내가 열심히 굴려 놓은 쇠똥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듯했다. 하나는 저기에 꽂혀있고 하나는 오다가 잃어버리고 다른 하나는 열심히 굴리는 중인데 잘 뭉쳐지지 않아 자꾸 바스러지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굴리던 경단도 단단해지면서 원하는 목적지까지 잘 도착하길 바랬던 것 같다. 경단에 조금 흠집이 나거나 뜯겨 나가도 금방 다듬거나 다른 재료로 보충했다. 가끔 그 과정에서 주변인들이 굳이 쓸데없는 짓을 왜 하느냐고 걱정과 쓴소리가 담긴 말을 했고, (비유하자면 ‘다른 것도 아닌 왜 굳이 똥을 굴리냐?’와 같다) 나조차도 이게 의미 있는 건가? 하며 스스로가 의심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건 결국 냄새만 나는 것이 아닌 내가 살기 위해, 영양소를 흡수하기 위해 먹고 굴려야 했던 것이며 좀 더 견고한 미래를 맞이하게 해준 자산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건강한 쇠똥구리라는 생각이 들어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속도도 느리고 방법이 다소 시원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자신만의 경단을 굴려 땅 아래의 터전으로 안착 시킬 것이다. 나는 그걸 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일은 전혀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가 아닌 자신을 위한 투자라는 사실도 많은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한 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멸종된 쇠똥구리를 최근 몽골에서 들여와 태안 신두리에 방사했다고 한다. 아직은 경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내년 봄에 새로운 땅에서 깨어날 쇠똥구리들도 응원한다. 우리 생태계를 위해서도, 또 앞으로 이겨내야 할 관문이 많은 사회에도 꼭 필요한 존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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