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정말 반가워요! 왜냐하면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은 보기가 드물었거든요.
아무렴, 여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는 여름을 아주 많이 좋아해요. 그런데 이유를 물어보면 뾰족한 답을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냥... 여유로운 분위기가 좋아서요” 정도로 대신했어요.
그래서 이번 여름동안, 제가 왜 여름을 좋아하는지 하나하나 파헤쳐 보고 싶었어요.
우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복작복작함이 좋아요. 꼭 페스티벌을 앞둔 잠실종합운동장이나 주말의 성수동까진 아니라도, 거리에 사람이 많다는 점이 좋아요. 마냥 걷는 사람,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 앉아서 통화하는 직장인, 양산을 쓰고 다니시는 할머니, 아스팔트에 늘어지게 누워있는 고양이들까지. 지난 계절동안 숨어있던 정체가 하나둘씩 드러내는 모습이 꼭 연극 속 한 장면 같아요.
그리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재밌어요. 구경하는 재미가 다른 계절보다 확실히 더 쏠쏠하달까. 남의 옷 구경은 좋아하지만, 저는 늘 입던 스타일을 추구해서인지 단조로워요. 그래서 본인만의 개성이 확실한 분들을 보면 존경스러워요. 저는 옷에도 그 작은 변화를 어려워하는 사람인 걸 비로소 최근에 깨달았어요. 사려고 하는 옷의 상세 페이지에 실린 모델을 보면서 감탄하는 것처럼, 눈이 즐거워지는 건 언제나 신난답니다.
해가 길어지는 것도 좋아요. 저는 아직 밤보단 낮을 더 선호하는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어요. 여름 아침의 어슴푸레한 빛과 식은 땅의 온기가 좋고, 한낮은 조금 더운 것만 참으면 여름다운 뜨거움이 좋아요. 늦은 저녁시간까지 지지 않는 해 너머로 보라색과 분홍색 그 사이의 하늘색도 좋답니다. 아마 제가 제일 사랑하는 시간대가 바로 이쯤이지 않을까 싶어요. 여름날의 오후 4시~7시 사이 정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다 이야기는 지금까지 안 나왔네요. 물놀이는 정말 좋아하는데 “바다를 볼 수 있어서 여름이 기다려진다”와는 다른 문맥인 것 같아요. 저는 울산의 작은 바다 동네에서 나고 자라서 바다는 언제든지 볼 수 있었거든요. 한 때는 지겹다고 생각했을 정도로요. 언제나 가까이 있었어서 그런지, 저의 여름과는 거리가 멀어요. 그런데 서울에 사는 요즘은 바다도 시간을 내야 겨우 볼 수 있어서 꽤 그립기도 해요.
그리고, 옷이 얇아지고 짧아진다는 것도 좋아요. 한겨울의 패딩 속에서 누에고치처럼 꿈틀거리는 것보단, 겨드랑이나 목뒤처럼 살이 접히는 곳이 축축해지더라도 옷이 가벼워지는 건 들뜨는 일이에요. 가끔 여름을 제대로 즐기고 오신 분들의 반소매, 반바지 사이로 보이는 서로 계절이 다른 살 색깔까지요. 사실 '반소매'는 몇 달 전 알게 된 언어 감수성에 대한 인지를 확실히 하고 싶어서 문장에서 괜히 한 번 활용했어요. 부끄럽지만 ‘반팔’ 대신 ‘반소매’ 단어를 권장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게 되었거든요.
저에게 여름은 늘 설레는 계절이었어요. 눈 감으면 귀에 들리는 매미 소리,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옷이 흠뻑 젖을 때까지 뛰놀던 나날들, 작은 선풍기 하나 앞에서 온 가족이 수박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던 기억, 방학 마지막 날 일기를 몰아 쓰느라 진땀을 뺐던 일, 설레는 마음으로 캐리어에 짐을 차곡차곡 쌓던 장면, 예상하지 못한 인물과의 조우, 그리고 짭조름한 바다 냄새와 덜 마른빨래에서 나는 쿰쿰한 향까지-.
이렇게 하나하나 적고 보니까, 여름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이제야 이유를 명확히 알게 되었는데 벌써 시원해진 찬바람에 괜히 서운한 오늘이에요. 잡는다고 잡히는 것이 아니라서 더 서운하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마음 한구석에 품은 그 계절만의 향수와 향기에 잠깐 행복해지곤 한답니다. 그래서 저는 또 내년 여름을 기다리며 남은 계절동안 지난여름을 그리워할 거예요.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저를 스쳐 지나간 사람, 동물, 나무, 바람, 모든 것을요.